여성연합 2005.05.31 조회 수 1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 누가, 어떤 여성운동을 말하는가?

흔희 우리는 여성정책(women's policy), 여성학(women's studies), 페미니즘(feminism), 페미니스트(feminist), 그리고 여성운동(women's movement)과 여성단체(women's organization)를 혼재해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하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남들로부터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여성도 만나게 된다. 어떤 여성운동가는 여성에 대한 성의 상품화를 이유로 포르노그라피를 반대하며, 또 다른 여성운동가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의거해서 성 노동(sex work)의 자유를 주장하기도 한다. 낙태와 간통에 대한 찬반대립은 오랫동안 여성들 사이에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이슈이다. 이처럼 여성운동,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존재방식, 입장차이, 그리고 정체성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여성운동가 개개인은 개인의 정체성과 여성정책의 제도화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여성운동은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공유한 여성들에 의해 조직되는 운동,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 성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운동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70년대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 유입된 여성주의 이념은 리버럴(Liberal), 막시스트(Marxist), 사회주의(Socialist), 그리고 레디칼(Radical) 페미니즘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서구에서 개념화된 여성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70년대 이후 조직화된 사회운동과 노동운동 등에 참여했던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지닌 진보적 여성운동 세력은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등 80년대 한국사회의 기본모순의 해결을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까지도 사회적 아젠다(agenda)로 채택되지 못했던 여성문제(여성에 대한 폭력,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모성보호와 육아의 사회화 등)를 사회 전면에 제기하기 위한 독자적인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70년대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을 경험한 여성운동가들이 모여 ‘한국여성단체연합’을 결성하게 되었다. 1987년 결성된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의 연합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창립목표는 ‘성 평등사회·민주사회·평화통일사회’였다. 창립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운동 진영, 그리고 분단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던 통일운동 진영과의 연대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5년 후인 1991년 이후 2년에 걸쳐 진행된 논쟁을 통해 여성연합은 ‘여성운동의 주체를 기층 여성뿐만 아니라 중산층 여성으로 다양화’, ‘여성운동의 과제도 기층 중심성에서 벗어나 시민적 과제를 포괄해야 한다’, ‘전체 사회변혁운동 과제에서도 민주화, 정보화 사회로의 진전에 따른 내용과 전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방향의 일대 전환을 이루게 된다.

계속해서 세기의 전환을 맞이하면서 1999년 여성연합은 ‘한국적 현실에서 페미니즘 정치의 대안적 전망과 실현가능성은 있는가?‘, ’전체 사회운동 속에서 여성운동의 주변화, 부문화 경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1세기 대안세력으로서 여성운동 주체 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의 정치세력화에서 “끼어들기”와 “새판짜기”의 실천적 의미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시민사회운동의 자기성찰 내용과 향후 운동 방향은?’, ’정부와 시민단체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연합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등에 대해 토론하면서 매시기마다 여성운동의 정체성과 진보성에 대해 묻고 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와 함께 한국사회 발전정도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한 편에서는 보수적 저항(backlash)에 맞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국가 및 정부와의 협치(governance)가 강조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지구적 차원의 빈곤의 구조화에 맞서 ‘운동의 급진화’를 통해서 운동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상반되는 주장이 제기되는 속에서, 여성운동의 패러다임과 전망에 대한 고민을 또 다시 시작하였다.

흔히 포스트 모던의 경향이 지배적인 사회분위기 하에서 다양성의 가치가 전면에 부각됨으로 해서, 계급적 차이와 민족모순을 중심으로 여성 내부의 차이를 가름하던 기존의 주류 여성운동의 흐름이 “여성 내부의 또 다른 차이를 간과하거나 억압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다변화되고 있는 여성간의 ‘차이’를 반영하는 여성운동의 존재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던져 주었다. 이는 물론 다양성에 대한 주장은 더 이상은 하나의 이름으로 대표될 수 없는 다양한 여성운동의 흐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주체와 새로운 방식의 여성운동이 태동하는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으로 계급과 민족모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과거의 운동과제는 무조건 폐기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 또한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각각의 존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모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체성과 이를 공동의 요구를 내세우는 여성운동의 흐름은 시대를 달리하면서, 그리고 주체를 달리하면서 계속 진화의 과정을 겪게 되며, 결과적으로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상호 보완적인 서로 다른 여성운동은 현실에서는 서로 단절된 채 진행되면서 상호 이해와 소통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특히 급변하는 사회정치적 변화의 속도, 다변화된 개인의 정체성의 변화,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를 지닌 여성운동 주체 구성의 다원화 등등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변해가는 주변 환경과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소통과 네트워크가 미처 마련되지 못함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는 종종 발생하고 있다.

어느 시대에도 갈등은 존재했다지만, 갈등의 당사자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므로, 언제나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갈등은 새로운 문제이므로, 과거에 이미 경험한 문제라는 식의 권위적 태도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변화하는 관계에 대한 겸손한 인정, 오해하기 이전에 이해하기, 선입견을 굳히기 전에 사실을 확인하기, 상대에 대한 애정과 발전을 염원하면서 비판하기 등과 같은 치열한 관계 맺기는 상처가 되기보다는 힘이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 다양성에 대한 주장이 만발하는 다양성의 사회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그동안 계급과 민족, 성,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흐름 속에서 차이에 근거한 다양한 여성운동을 독자적으로 조직하고 각각 활동해 왔다. 그리고 일상적 소통과 네트워크에 기초한 연대/연합운동의 경험을 오랫동안 발전시켜 왔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더욱 다양화되는 여성운동 진영과의 소통에 대한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변화’에 따른 운동 주체들 간의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와 다양한 여성운동 과제 중에서 무엇을 중심에 놓고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모색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끊임없는 논쟁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여성운동은 더욱 풍부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적 믿음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2. 한국여성운동은 무엇을 이루었고, 또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지난 2005년 3월 뉴욕에서 개최된 제49차 유엔여성지위원회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를 여성문제 해결의 전략적 목표로 제시하였던 1995년 북경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회의 이후 1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는 특별총회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북경여성행동강령의 12개 주요 관심분야와 빈곤퇴치를 전면에 내세운 2000년 밀레니엄 개발목표의 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지난 10년간 이룬 법과 제도, 정책, 여성정책 전담기구와 예산 등 여성발전을 위해 각국이 이룬 성과(gains)를 정리하고, 또한 성 주류화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gaps), 걸림돌(obstacles)을 평가하였다. 특히 성 분석(gender analysis), 성별분리 통계(gender segregated data), 성인지 예산(gender budget), 정책 담당자들의 성인지 의식(gender responsive staff)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여성운동에 대한 역풍(backlash)을 점검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 자유화 그리고 군사주의의 강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최근의 동향(trends)과 이주여성, 인신매매, 여성노인 등 새롭게 발생하고 있는 긴급과제(emerging issues)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라는 대명제를 전 세계적으로 인식시켜 준 북경여성행동강령은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의 여성들은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market driven neo-liberal globalisation), 군사주의(militarism), 근본주의(fundamentalism) 등의 심화로 인해 여전히 아니 더욱 심화된 빈곤과 폭력 그리고 사회정치적 배제(exclusion)를 경험하고 있음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보수적인 부시정권은 '낙태의 권리‘를 포함한 여성의 재생산 건강권(reproductive rights)의 내용을 북경여성행동강령에서 제외시키려는 결의안을 제출하여 여성운동이 지난 10년간 이룬 성과를 오히려 후퇴시키려 하였다. 이처럼 여성운동의 성취한 성과가 때로는 위협을 당하고 후퇴될 우려에 처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여성운동의 성과를 지키기 위한 운동과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제도상의 성 평등 실현이 일상과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은 현실적 괴리(gab)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 나아가 기존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소수자의 문제(minority), 이주여성의 문제(migrant women), 인신매매(trafficking in person), 여성노인문제(women elderly) 등과 같은 사회변화에 따라 새롭게 제기되는 과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여성운동의 필요성이 동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북경여성대회 이후 10년에 대한 각국의 여성정책 이행정도를 평가하는 속에서,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의 여성운동이 정부와 사회를 압박하고 또 설득하면서 이루어낸 법과 제도적 성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눈부신 것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눈부신 법과 제도상의 성과가 100% 성과로 실행되고 있는가의 여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1998년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해 법과 제도상의 평등(de jure equality)과 실제상의 평등(de facto equality)의 괴리가 큰 나라 중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어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성운동이 어떤 문제를 중심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를 시사해 준 바 있다.

지난 90년 이후 제정한 여성관련 법을 보면, ‘영유아복지법’ 제정(1991), ‘성폭력범죄처벌및피해자보호법’ 제정(1994),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및피해자보호법’ 제정(1997),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개정을 통한 모성보호 강화(2001), ‘정당법’ 개정 통한 여성할당제 강화(2002),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법’과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법’ 제정(2004), 민법 개정을 통한 호주제 폐지(2005) 등으로 이어지는 제도개선의 성과를 거두었다.

90년대 여성운동의 흐름 중에서 가장 사회적 충격을 던진 것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와 관련된 여성인권 3법이 10년에 걸쳐 제정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비록 충분하지는 않고 여전히 남성들의 저항에 직면하고는 있지만 법률상으로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는 사회적 범죄로 명시되었으며, 충분하지는 않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책임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2001년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그리고 고용보험법의 개정을 통한 산전산후휴가 90일로의 확대와 추가된 30일분의 비용에 대한 사회분담화 명시는 여성노동자들이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여성의 평생평등노동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으며, 나아가 2005년 현재에는 비정규직으로의 확대를 위한 다음단계의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또한 2003년 ‘영유아보육법’의 개정을 통해 보육비용의 지원 확대와 차등보육료제 도입, 보육예산의 증액을 통해 여성의 가족생활과 직장생활의 양립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들이 실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01년 여성부의 설립과 6개 부처 여성정책 담당관실의 설치, 정부 각 부처 위원회에 여성대표성 30% 보장, 국회 여성위원회의 상임위원회화 등 성 주류화를 위한 국가·제도적 장치와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여성의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무엇보다도 정당법의 개정으로 인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제도 도입에 힘입어 2005년 5월 현재 전체 국회의원 중 13.5%에 달하는 40명의 여성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 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성과로 마련된 법과 제도는 그 실효성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받고 있으며, 수차례 법 개정이 뒤따르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인권 관련 법률은 우선 법의 제정 취지에 맞는 집행과 운영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낳아왔다. 성폭력은 남성 중심적인 사법관행으로 인해 50% 미만의 기소율을 보이고 있으며, 가정폭력은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조에 의해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한계를 보여 왔다. 성매매 또한 성매매를 ‘사회적 필요악’으로 용인해 왔던 오랜 사회적 관습과 법 집행당사자들과 처벌 대상자들 사이의 오랜 유착과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법 집행이 왜곡되거나 저항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성매매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성장 중심주의, 물질 중심주의에 찌든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인권중심의 가치를 세우는 과정에서 제정되었기 때문에 소위 ‘생존권’으로 포장된 저항과 도전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는 법은 제정되었지만, 현실에서의 여성폭력은 크게 감소하지 않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폭력 방지와 예방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종합적으로 수립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출산과 양육으로부터 여성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직장과 가족생활을 양립하며, 나아가 여성의 직장에서의 경력단절 방지하기 위하여 시행되고 있는 보육정책의 강화와 산전산후휴가 90일 확대 등의 정책은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고 따라서 다수의 여성노동자에게 혜택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산전후휴가 90일 보장과 양질의 보육에 대한 지원의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여전히 요구받고 있다. 특히 사회적 공공재(public goods)인 보육을 시장화하려는 정부의 보육정책 기조는 공보육의 기본정신을 훼손시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 설립 및 지원의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대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고, 학령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방과 후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전반적인 보육정책 기조의 전환과 지원 확대가 더욱 요청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여성운동은 국가에 의해 여성의 가족과 직장생활 양립지원 조치가 시급히 확대되지 않을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한국사회가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방기와 호주제의 온존 등 다양하고 평등한 가족관계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가부장적 가족정책의 결과인 저 출산과 이혼율의 증가라는 사회적 현상은 최근 정부 일각에서 추진되고 있는 ‘출산장려운동’이나 ‘건강가족기본법’과 같은 성차별적이고 여성억압적인 정책과 법률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따름이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가족생활과 직장생활 양립지원조치의 강화와 함께 성 평등하고 다양성에 기초한 가족정책을 수립과 지원강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대응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이룬 여성운동의 성과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가 특히 지난 10년간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성차별적인 여성우선정리해고와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된 결과 여성노동자 600만 명 중 70%인 420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420만 여성 비정규직 중에서 98,7%가 임시근로에 종사하고 있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한국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5세-29세를 정점으로 급격하게 하락하는 M자형 곡선을 계속 그리고 있는데, 이 시기가 여성노동자들이 임신, 출산, 영·유아보육, 방과 후 보육 등을 필요로 하는 직장·가정생활을 양립하는 시기이자, 사회적 지원의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임을 볼 때, 여성의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기 위한 조치의 미흡으로 인한 노동시장에서의 단절 이후 비정규직으로의 재진입 현실은 다수의 여성근로빈곤층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최저임금인 641,840원은 노동자의 생활안정과 저임금 해소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너무 낮은 수준이며, 그나마 이 법정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8.8%에 달하고 있어 여성비정규직 문제해결과 여성 일자리 창출, 여성 빈곤층에 대한 사회보장 정책의 확대 등 여성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적 대안 수립 없이는 성 평등의 실현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3. 여성운동 간의 소통과 네트워크 강화로 여성운동의 미래를 발전시켜야...


지난 10년간 한국의 여성운동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인권 3법의 제정과 개정, 산전후휴가 90일 사회보험화 등 모성보호의 강화, 공보육의 확대, 여성의 정책결정과정에의 참여 확대, 그리고 호주제의 폐지로 이어지는 등 여성관련 법과 제도상의 개선에 있어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제도는 정책적,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한계가 동시에 지적되고 있다. 즉, 호주제가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가사와 양육에 대한 부담의 공평한 가족 내 분담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족생활과 직장생활을 양립하기 위한 정책의 대상자는 아직도 여성에게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며, 남성은 성 역할분담의 평등화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면서 성 평등을 실현을 위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따라서 남성들로 하여금 성별 역할분담의 구조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참여하고 책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봄 노동의 사회화와 함께, 남성들의 돌봄과 보살핌 영역에 대한 책임의 강화와 노력을 사회적으로 촉구하는 운동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앞으로의 여성운동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사회, 구조, 남성들에 대해 분석하고 문제점을 밝히면서 동시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다양한 여성운동, 다양한 여성단체, 다양한 여성운동가, 다양한 여성주의 이론들을 어떻게 상호 이해하고 또 서로를 받아들이고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여성운동은 여성 공통의 경험과 여성 내부의 다양성과 차이에 따른 다양한 목소리를 여하히 조정해낼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여성운동이 상호 시너지를 내면서 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인지 아니면 여성운동에 대한 역풍(backlash) 속에서 사라져갈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 간의 자매애에 기초한 소통과 네트워크화가 점차 파편화된 채 상호간의 맥락을 놓쳐버린 채 성 차별적인 사회구조의 전환(transforming main-streaming/structural change)을 실현시켜 나갈 힘을 상실해가고 있는 여성운동가들에게 통합성(integrated), 전체성(holistic), 지속성(sustainable)을 담보해주는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를 여성운동 내부의 운동력과 생명력으로 승화시키는 일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여성운동(女性運動)이 아니라 여성운도(女性運道)’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Board Pagination 1 ... 8 9 10 11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