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09.03.31 조회 수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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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시작됐다. 2009년이 시작된 지가 언젠데 이제와 뒷북이냐고? 그렇다. 여성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에게 1년을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나 남들보다 뒷북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여성연합 사무국 활동가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년 3월,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를 끝내고 나서야 새해가 시작됐다는 것을 실감한다.

3.8 세계여성의 날. 1908년 미국 루트거스 광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최초로 가두시위를 벌였던 것을 기점으로 이후 여성들의 정당한 삶의 요구를 내세우고 실현시키기 위한 장으로, 또한 여성들의 축제의 장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기념되어온 날. 101년이라는 긴 역사가 된 여성들의 날.

지난 한세기 동안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과 배제, 폭력과 편견에 저항하여 여성들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알리고 자매애와 연대의 정신으로 용감하게 싸워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성평등, 평화와 인권신장을 이뤄왔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그 정도면 이룰 것은 다 이루지 않았느냐고. 더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며 이기심이 아니냐고. 그러나 2009년 현재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과연 무엇을 다 이룬 것일까?

얼마 전 친한 친구가 둘째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첫째를 출산하고, 한 번의 실패를 겪은 이후 다시 갖게 된 아이인지라 주변 사람 모두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러나 친구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눈치였다. 두 달이 지나도록 회사에 임신사실을 알리지 못했다며 이제 겨우 정규직이 되었는데 임신이라고 하면 회사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라 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앞으로 두 명의 아이를 양육할 생각을 하니 갑갑하기도 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불행하게도 얼마 후 친구는 유산을 했다. 외부적인 요인 때문은 아니라고 했지만 연이은 야근과 강도 높은 노동, 양육문제로 인한 심적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친구는 유산한지 이틀만에 몸을 다 추스르지도 못한 채 다시 출근을 했다.

너무 극단적인 예를 일반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2009년 여성노동자의 현실이며 우리 여성들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전 세계적으로 경제불황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최저임금 삭감, 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아동복지예산 삭감 등 반서민정책으로 대다수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고 언론통제, 인터넷 감시, 집회시위 규제, 시민사회단체 옥죄기 등 공권력을 통해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활동을 탄압하며 민주주의 후퇴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처럼 경제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고통과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 해고율이 증가하는 등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고, 보육 및 교육은 그 부담을 국가가 아닌 부모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또 최근 벌어진 여성 연쇄살인 사건처럼 많은 여성들이 급증하는 여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여성이 만들어요, 빈곤과 폭력없는 행복한 세상!’ 2009년 3월 8일 열린 제25회 한국여성대회는 앞서 얘기한 엄혹한 현실을 여성들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목소리를 담았다. 매년 여성대회 때마다 한발짝 더 나아간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에 반해 올해 25회 여성대회에 지난 2000년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며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을 외쳤던 16회 여성대회의 슬로건이 다시금 등장한 것은 지금의 현실이 10년 전의 그것과 아니, 10년 전보다도 훨씬 오래 된 그 시절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투쟁으로 이뤄왔던 많은 것들이,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던 민주주의와 성평등, 평화와 인권이 시대를 역행하는 정부와 함께 거꾸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라는 것을 절감한다.

우리는 다시 출발점에 서있다. 오랜 세월 우리가 싸워 얻은 것들을 지켜내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걸음을 내딛는 출발점.

자, 시작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만들어 온 여성의 힘으로, 우리 모두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낼 시간이다. 거꾸로 돌아간 시계를 다시 돌릴 시간이다.


 

 

 

 

 

 

 글쓴이 김미란

여성연합 조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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