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이하‘인권위’) 조직을 축소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인권위를 눈에가시처럼 여기더니 공권력 천하를 만들려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후퇴는 예견된 일이었다. 인권보다 빵이 절박하다는 암묵적인 사회분위기가 우리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보면 국제사회가 합의한 여성폭력 금지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더욱 나쁘다. 지난 10년간 3% 정도 상승한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도로 주저 앉았다. 2009년 2월 현재 47.5%이다. 1월 취업자 현황을 보면 22,861천명으로 전년동월에 비해 103천명 감소하였다. 그 중 남성은 19천명이고 여성은 84천명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4배 이상 많다. 안을 들여다 보면 20-30대 여성들이 더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임신·출산으로 인한 해고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소규모 자영업을 하던 여성들의 폐업도 늘어났다. 문제는 여성의 취업 상황은 상대적으로 더 나쁘지만 정책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위기 상황이 오면 성별 지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문제는 아예 가시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생계보조자라든지, 여성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든지 하는 전통적인 가족담론이 강조되면서 성차별 문제는 감추어진다. 더구나 보수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족안에서 여성의 희생은 더 강조된다. 기업들이 앞다투어 가족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하고 ‘아빠 힘내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맞벌이가 당연시되고 일과 가족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환경만들기가 대세였는데 다시 여성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지금 여성운동은 지난 20년간 만들어 온 인권제도와 가치, 정형화된 성역할 경계 허물기, 정치·경제분야에서 여성참여 확대 등이 허물어지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 일부 여성의 진출이 성평등을 성취한 것으로 과장되고, 경제위기가 인권과 복지라는 사회공동체 가치를 약화시키는 조건에서 여성운동은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지난 20년간 제도적인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여성운동은 더많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현 시기는 보수정권이 등장해 제도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으므로 ‘일상의 정치’로만 보수적 사회흐름을 변화시켜낼 수 없다. 그렇다고 반대행동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보수담론과 정치를 바꿔내기 위한 대안사회 기획과 세력, 자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안사회 기획의 주체는 혁신으로 거듭난 NGO, 실천적 지식인, 지역과 인터넷 공간에서 성장한 새로운 사회변화 주체들이 횡적인 연대를 통해 새로운 담론과 정책, 주체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여성연합은 정책기획위원회와 대안사회연구소에서 위기하의 여성운동 방향, 방식 등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최근엔 사회·경제·정치적 의제를 젠더링(gendering)해야 할 일이 많아지므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습과 연대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우선 2009년 여성연합은 인권이 상실되는 시대에 제도적 차원을 넘어 차별과 폭력없는 세상을 바라는 다양한 주체들이 나설 수 있도록 인권담론을 확산하고 공동행동을 조직화할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에 여성의 삶의 질이 후퇴되지 않도록 성차별적 해고·감원 반대 및 여성일자리 확대, 최저임금 인상 및 실업제도 보완, 무상보육 및 교육 확대, 공공임대주택 확대 및 주거비 지원 등을 요구하는 “(가칭)민생-일자리확대여성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그리고 2010 지방선거를 맞아 부자감세로 줄어든 지방자치 교육·보육예산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를 쟁점화할 것이다. 그리고 풀뿌리 지역여성리더 교육과 풀뿌리 여성후보를 발굴하는 활동도 추진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기회가 되려면 철저한 성찰과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단기적인 대응은 기민하게 하면서 성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대안사회를 향한 장기적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 관점을 기초로 새로운 정치기획, 정책블럭, 풀뿌리조직화, 대안적 소비-생산 시스템 구축, 지속가능한 운동자원 확충 등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