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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온콘' 2014 기획 시리즈_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너와 내가 존중받는 관계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 오래된 친구사이에도 사람 관계에는 권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물며 직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이, 성별, 직급체계 등 수많은 차이 속에서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다양한 여성들이 모이는 한국여성민우회의 박봉정숙 대표를 만나기 위해 821일 목요일 성산동 사무실을 찾았다.


고래)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박봉정숙이고요, 95년부터 민우회 상근활동을 시작해 올해 20년차 정도 됐어요.

 

고래) 민우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첫 직장이신가요?

 

졸업하고 반년정도 일반직장을 다니다가 일 년 후에 민우회 회원활동을 3-4개월 하면서 혹시 상근활동에 관심 있냐는 제의를 받아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일반직장이 적성에 너무 안 맞더라고요. 직장 자체는 괜찮은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라는 고민과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직장생활과 동시에 과외활동으로 청년회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여성이니까 청년회에서 여성분과에 저를 넣더라고요. 사실 그 전에는 여성문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여성분과에 들어가면서 여성문제와 여성주의, 여성학 등에 관심이 생기게 됐어요. 특히 제가 학교 때 활동했던 운동권 문화의 가부장성, 남성중심성이 읽혀지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불편하다고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문제의식을 갖지는 않았는데, 그게 이렇게 해석될 수 있구나 이런 문제였구나라는 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민우회 회원활동을 하기 전, 처음에는 활동가로 지원했었어요. 제가 청년회에서 여성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니까 친구가 한겨레신문에 난 민우회 공채 광고를 보고 저에게 한번 지원해보라고 권유했거든요. 그런데 떨어졌어요. 그때 그 분께, 지금도 계속 얘기하죠. “, 사람을 못 보는 거 같아. 떨어트린 사람 중에 인재가 있었는데 말이야.” ㅋㅋㅋ 어차피 제가 원한 것이 여성운동을 하는 거였으니까 민우회에 회원가입을 하고 회원활동을 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사무직여성분과에서 새로 만들어진 고용평등추진본부라는 기구에 담당 활동가가 필요해서 저에게 해보겠냐는 제의가 왔어요. 제가 회원활동을 좀 잘했나보죠? “쟤가 좀 괜찮은 거 같아,” 이랬겠죠?^^^^^^^ 그렇게 시작을 하게 된 거죠.

 

혜진) 그 이후로 계속 민우회에서만 활동하셨다고 했는데, 한 단체에서 20년 동안 장기근속하신 게 너무 신기해요.

 

그래서 제 친구들이 저보고 게으르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한 번을 안 움직이냐고.

 

혜진) 그게 엄청난 끈기일 수 있잖아요. 그만큼 자기영역을 잘 구축했다고도 할 수 있고.

 

제가 민우회를 하면서 2번을 쉬었어요. 5년차 때랑 14년차 정도일 때. 첫 번째는 안식년은 아니고 제가 그만둔다고 생난리를 쳐서 8개월 정도 쉬었다 왔고. 14년차 때는 안식년을 갔다 왔어요. 힘들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쯤에 민우회에 안식년제도가 있어서 좋아요. 또 안식년을 갔다 오면 그만두기에 약간 미안한 감이 들고.

 

고래) 안식년이 그런(!) 제도였군요?

 

그래서 어떤 조직이든 그런 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활동가들을 쉬게 하고 여유 있게 하는 제도요. 쉬고 오면 단체 활동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또 저희는 2년을 근무하고 나면 무급휴가이긴 하지만 한 달 휴가가 있는데, 활동가들이 한 달을 쉬고 오면 민우회가 좋구나, 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밖에 나가봤더니 세상이 험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ㅋㅋ 그래서 활동가의 쉼이 조직에게 소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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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쉬는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요
. 조직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고요. 조직문화와 관련된 강의를 나가거나 할 때 느끼는 게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한 젠더 관점도 부족하지만, ‘노동에 대한 시각도 많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여성운동가이자 노동자 사이에 간극이 있잖아요. 그 균형을 맞춰가는 게 매우 중요한데 내가 노동자로서 지속가능한 일을 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또는 격려되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무시되는 경우가 간혹 있더라고요.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 없이 헌신과 희생을 전제하면서 너는 활동가야라는 것을 너무나 강조하는 경우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활동가인 건 맞지만 활동의 지속가능성도 중요하니까요.

 

고래) 방금 말씀에서도 느꼈지만 민우회가 조직문화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걸로 알고 있어요.

 

87년에 만들어진 많은 조직들이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민우회는 여성대중운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발한 조직이잖아요. 모든 여성들과 다양한 영역에 걸쳐 대중여성운동을 하겠다는 두루뭉술한 목표와 활동영역 때문인지 민우회는 지금까지도 정체성 논의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왜 정확한 이슈가 없나, ‘여성운동이란 무엇인가 같은 고민을 하기도 하고, 그냥 여성운동을 한다는 것 때문에 여성운동에 대한 일반적 비난을 받거나 남성들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여성들이 민우회에 있는 거예요. 나이, 직업, 성정체성 등 다양한 여성들이 이 안에 있다 보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고 생각하고 토론할 것들이 생겨요. 그래서 더 풍부한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서로를 이해하고 토론할 기회들이 많으니까. 별칭 부르기나 나이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신입회원모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이게 맞다라는 당위에서 시작한 아니라 조직을 만들어왔던 회원들의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예전 노동분과 모임은 직장인 여성들이 구성원인데 대부분 고졸 여성이었어요.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이나 일반 회사에 취직해 사무직여성노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역할을 하거나 사무직여성노조를 지원하는 운동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대학 얘기를 하거나 대졸을 전제해서 얘기하면 고졸 여성들은 기분이 이상한 거죠. 그래서 그런 얘기 자체를 하지 말자고 합의했어요. 이런 식으로 생활에서 만들어진 원칙이더라고요. 성정체성도 민우회에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제 활동 초반에 레즈비언인 회원이 성정체성에 대해 얘기할 수 없는 문화, 너무나 당연하게 이성애를 전제하는 문화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됐어요. 나이에 대해서도 20대와 40대가 같이 얘기하다보면 나이도 어린 것이이런 말이 나오게 되고, 그럼 20대가 문제제기를 해서 , 그럴 수 있겠구나생각하게 되고요. 민우회가 워낙 다양한 이슈를 하니까 다양함이 조직 내에서 훈련되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다양한 차별로 받은 분노나 상처를 최소한 이 공간에서만큼은 발생하지 않도록, 누구라도 진정한 자신들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운동이 아니라 생활에서 나온 노력이 조직문화로 정착되는 것 같아요.

 

고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결국은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바뀌면 그런 가치들도 많이 흔들릴 수 있는데 계속 이어온다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의 활동연차나 지위에 따라 입장차나 말의 영향력이 다를 수 있고 거기서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민우회는 내부에서 입장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애쓴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사안도 한 사람이 단독으로 결정해서 가는 구조가 될 수 없어요. 토론도 많고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고 이런 게 평소에 훈련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토론과 합의의 과정이 없이는 모두가 함께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게 많이 연습된 상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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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외부에
평등한 조직문화에 대해 강의를 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평등한 조직문화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강의할 때도 말하는 건데 평등한 조직이란 없고, ‘평등하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만이 있을 뿐이잖아요. 그래야 되는 거고. 민우회도 마찬가지로 평등한 조직체계를 가지려고 하는 단체지만, 어쨌든 직급체계를 가지고는 있잖아요? 수평적 조직을 만들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직적 조직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평적 조직으로 가기 위해 수직적 조직구조가 가져오는 여파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건가 고민하고 토론하는 거죠. 보통 상근자들이 모두 모여서 하는 토론이 아니면 팀별 토론/회의를 하고 상임집행위라고 해서 팀장들, 소장들, 대표처장 이렇게 모이는 의사결정 수렴구조를 갖고 있어요. 거기서 중간역할을 하는 팀장들이 어떻게 하면 조직 내 의사소통이 잘 될 수 있을까이런 고민들을 하죠. 그런 고민들을 늘 하고,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제기를 하면 서로 토론하고. 그렇게 하는데, 그래도 역시 대표는 있고 1년차라는 건 있고, 이것들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는 거죠. 너무 어려운 문제라 민우회는 이렇게 잘하고 있고요.’ 라고 단언하거나 자만할 수는 없네요. 다들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으니!

 

고래) 활동 20년 하시면서 보람되거나 제일 보람됐거나 기억에 남는 경험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농협 사내부부 해고사건이에요. 해고자 분들이 민우회로 직접 오셔서 사내부부 해고사건이 난 곳에서 연설을 하시는 등 소송부터 시작해서 거리집회까지 모든 일들을 했었거든요. 5년 정도 걸렸는데, 처음 두 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수십 명 정도로 늘어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몇몇 다른 회사 사내부부 해고사건은 해결되기도 했어요. 결국 이 분들은 패소를 해서 복직은 안 됐지만, 되게 길었던 사건이기도 하고 담당자로서 제가 되게 열심히 했던 일이기도 해서. 매년 모여서 소원서 쓰고 그 사건이 승소하기를 너무너무 바랐는데.. 그 분들이 패소의 확정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저희와 계속 만났고 이 분들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사건에 대한 힘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해주시고 그러긴 했는데,.. 어쨌든 그분들은 끝까지 씩씩하시고 발랄하셨지만 죄송스럽기도 했고요. 그 건으로 남녀차별금지법에 사내부부해고는 위법이라는 조항도 들어갔고 한 보험회사 여성노동자분들은 그 후에 소송을 시작하시고 저희들도 지원하여 원칙복직 판결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가장 처음 이걸 시작한 분들이 안 된 거죠. 그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고. ‘여성우선해고라는 파고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분들 사건이 저한테는 너무 상징적이었어요. 여성우선해고 시기 이후에 여성들의 비정규직화이 가속되면서 사실상 고용평등운동은 거의 뭐... 그게 너무 현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약간 후회나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고, 그 분들도 하실 것 같아요. 그 사건이 끝나고 나서 법이 누구의 손에 있는가를 많이 느꼈고, 소송으로 하는 운동의 한계에 대해서도 많이 느꼈고요. 지금까지 해왔던 운동에 대한 평가도 다시 하게 되었죠. 내심 질 거다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이 사건만은 이기기를 바랐는데.... 어쨌든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제 기억에 가장 많이 남고 애정이 많았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고래) 요즘 대표님의 가장 큰 고민이나 생각하시는 어떤 걸까요?

 

요즘 여성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운동들이 영향력도 줄고 관심 가지는 사람들도 줄고, 새로 운동을 시작하는 분들이 민우회 같이 오래된 조직에 발 담고 싶어 하지 않고 스스로 조직을 만들거나 혼자 개별로 운동하는 경우들이 많아졌잖아요. 이렇게 다변화되는 상황에서 민우회는 그것을 인정하는 상태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민우회가 시대와 호흡하면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여성들을 만나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정보홍보활동일 수도 회원활동일수도 있고. 우리가 만나기 어려운 세대들을 더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죠.

 

혜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시민단체, 여성단체 중에서 민우회는 인기가 많잖아요. 제 주변에 민우회에 지원하고 싶어 하거나, 지원했다 떨어졌거나 하는 친구들이 좀 있어요.

 

그 떨어지신 분들한테, 이전의 제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그 분들이 진정 인재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일동웃음) 그게 사실 다 운이고 좀 그렇더라고요. 제가 면접할 때 보면, ‘막상 이렇게 결정되는구나싶을 정도로 정말 다양한 변수가 있어요. 어떤 시기에 이 사람을 뽑고, 다른 시기에는 또 다른 사람을 뽑고.. ‘타이밍인연’(연줄 아님, 오해할까봐..)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혜진) 그럼 민우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중요할까요?

 

제가 그걸 민우회 활동가들에게 물어봤어요. 올해 들어온 활동가랑, 2~3년차 된 활동가에게. 이런 질문이 들어왔는데,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물어봤죠. 그런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일단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활동가를 정말 하고 싶은지)’ (일동웃음) 저는 채용인터뷰 때, ‘민우회가 아니어도 계속 여성운동을 하실 생각이 있으시냐고 물어봐요. 저는 민우회가 아니라도 계속 여성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좋아 보이더라고요. 여성운동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도 중요하고요. 예전처럼 주변에서 시민들에게 격려 받는 일도 아니고. 특히나 요즘에 여성운동이라 하면 욕도 많이 먹어서. ㅠㅠㅋㅋㅋ 그런 게 강하지 않으면 계속 운동하기 힘들고, 동력이 떨어지면 쉽게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여성운동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이 언저리에서 활동하고 있으면 인연이 될 때쯤에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 오래 걸릴 수 있다
.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은 빠르고 편한 길은 아니다. 쉬운 길도 아니다. 그러나 조직의 한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잠깐의 편의와 효율을 접어둘 수 있지 않을까? 거창한 곳에서가 아닌 생활 속 관계에서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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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년 창립되어 성평등한 민주사회와 여성대중운동을 지향합니다.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 여성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동등하게 참여하는 사회,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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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성연합의 '온콘'은 전국의 여성운동가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생각을 바꾼 그녀들 세상을 바꾼 그녀들' 에서

우리 사회 통념을 바꾸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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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박봉정숙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인터뷰어 : 혜진, 고래
기사 작성 : 혜진, 고래
사진 촬영 : 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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