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실습 종합후기>
한국여성단체연합 실습생 임채경
나는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13일까지 약 15시간 동안 여성연합에서 실습을 하는 기회를 가졌다. 실습기간이 워낙 짧다보니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거나 진행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여성연합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여성연합이 하는 일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의 활동을 하였다.
내가 여성연합에서 실습하는 동안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영화 <카트> 특별시사회, 여성노동 대안 모색 토론회, 베이징+20과 post 2015 심포지엄, ‘온라인 여성혐오현상’ 활동가 워크숍이었다. 이 글은 실습 후기이기 때문에 각각의 프로그램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얻은 총체적인 감상을 얘기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연합에서 주최한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있어서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였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의 대사를 따오자면, 지금 우리 사회는 “매트릭스에게 잡혀있다.” 영화 「매트릭스」에 컴퓨터가 만든 꿈의 세계라는 매트릭스가 있다면 우리가 속한 현실에는 주류 남성들이 만든 남녀평등 매트릭스가 있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남녀평등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남녀평등 논의는 필요 없다는 매트릭스. 이는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들어볼 법한 것이며,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가 외면 받는 주된 논리이기도 하다.
나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왠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는’ 사람이었다. ‘김치녀’에 속하지 않기 위해 남성의 시선으로 자기 검열하는 여성이 적지 않은 우리 사회는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이 상황에서 나는 여성연합에서 주최한 프로그램들을 만나게 됐고 남녀평등 매트릭스가 작용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다. 특히 여성연합에서 주최한 프로그램들은 우리 사회의 이상함을 묵인하는 두꺼운 낯가죽보다는 우리 사회의 이상함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두꺼운 낯가죽이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여성연합에서 주최한 프로그램들은 햇병아리 페미니스트인 나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프로그램들의 내용은 나에게 남녀평등이 실현됐다고 믿는 괴상한 현실의 실상은 어떠한지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은 나에게 허위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서 진실을 꿰뚫어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언행을 통해 보여주었다. 나는 여성연합에서 주최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매트릭스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의 연대에서 오는 기쁨을 보았고, 매트릭스가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난 삶이 행복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도 보여주듯이,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택한 사람은 열악한 현실과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매트릭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여전히 뻔뻔스러울 만큼 잘 돌아가고 있는 매트릭스를 보며 절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무지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결코 좋은 행동이 아니다. 특히 매트릭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매트릭스에 대해 “아는 게 약”이다.
여성연합에서 주최한 프로그램들은 나에게 ‘네가 매트릭스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그것을 계속 묵인한다는 것은 곧 여성으로서 경험할 수많은 불평등에 동의한다는 뜻이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져줬다. 비주류인 나에게 있어 이러한 메시지는 정말 유익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여성연합이 ‘모피어스’로서 비주류 ‘네오’들이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닫도록 하는데 더 왕성한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 물론 나 또한 주변 지인들이 매트릭스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함으로써 여성연합의 활동에 간접적으로 힘을 보태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