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리 남편은 3대 독자인 아버지와 맏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손귀한 집안의 장남이자 양가에서 첫 손주였으니 얼마나 귀한 아들이었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임신 당시 목을 못 들 정도로 고생하고 출산시 온 몸을 뒤틀었으나, 의사선생님이 그 난리를 쳤어도 '아들' 낳았으니 내 용서한다고 말씀하셨댄다.
아래로 남동생, 여동생 하나씩으로부터 '엄마는 큰 아들밖에 모른다'는 원성을 들으면서도 시어머니는 "난 큰 아들하고 궁합이 맞대" 라는 말을 입에 수시로 달고 사신다.
이 우리 남편 아주 잘 생겼다. 내 남편이래서가 아니라 잘생긴 건 다들 인정한다.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에 가시가 돋는 그는 31살의 나이에도 어려보이고, 몸매도 쭉 빠졌다. 키는 큰 편에 속한다. 그러면, 머리는? 우리 남편 어려서부터 반장에 1등을 밥먹듯이 했다.
시험운이 좀 없는지라 보통 이상 되는 인서울대 (서울에 있는 대학-우리 때 경쟁률이 높아 이렇게 불렀다.)에 들어가 거의 내내 장학금 타고 학교 다녔다. 대학원도 국책대학원에 가서 미국 연수 한번 안 다녀왔는데, 영어로 수업하면서 레포트 쓰고 꼴찌로 입학해 수위로 오른 인물이다. 총명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하다. 생활은 모범생이요, 감성과 취향은 인기맨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우리 남편하고 결혼할 때 난 너무나 행복했을 거 같다고? 천만에 마지 못해 결혼했다. 정말 결혼하기 싫은데, 울며 겨자먹기로 결혼했다.
일단 우리 남편은 외곬수다. 난 싫다는데 지 좋아서 연애를 강제로 시작해야 했다. 난 맨날 같이 있는 게 싫은데, 수업도 같이, 밥도 같이, 화장실도 같이, 공부도 같이, 등하교도 같이, 내 여자친구 만날 때도 옆에서 조는 한이 있어도 같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우리 남편 같은 성향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스토커다. 결혼도 유학가기로 결정되니까, 요것이 달아날까 싶어 완력과 애원을 고루 사용해 결혼했다.
그런 귀한 아들이라 밥상 차려먹기는커녕 라면 하나 끓일 줄 모르고, 사과 하나 깎을 줄 모르고, 그런 주제에 배고픈 건 못 참아서 미친 듯이 승깔을 부린다. 처음 사귈 때는 맛있는 거 지 혼자 다먹고 내가 기가 막혀 쳐다보니까, 자기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 흐뭇하지 않냐고 한다.
"내가 니 엄마니? 난 같이 맛있는 걸 즐겁게 먹는 게 좋다."
그렇다. 지 좋으면 상대방도 좋은 줄 알던 인간이다.
여러 사람 모인 데서도 음식 골라 먹기, 먼저 먹기를 당연히 했다. 내가 그걸 지적하면 남들은 아무 소리 안하는데 나만 뭐라 그런다고 성질을 부린다. 당연히 남이야 말 안하지. 뭐하러 쓴소리를 해가며 피곤한 일 만드냐. 같이 살 것도 아닌데.
잘나고 영특한 건 좋은데, 저만 잘난 줄 안다. 난 지가 말하면 감동해서 맞장구 쳐야 되고, 내가 다른 견해 말하면 내가 저한테 동의할 때까지 한 말 또하기를 100번이라도 한다. 그래서 맨날 미친 듯이 싸웠다. 내 생각은 내 자유니까 날 내버려 두라고. 시험 준비 때 내 거 다하고도 제 리포트 워드 쳐줘야 하고, 딴 남자랑은 수업 때문이라도 5분 이상을 말하지 못하며, 사랑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고 믿는 남자였다. 내가 뭔가를 하면 다 쓸데 없는 짓이고, 저하고 있어줘야 한다. 오직 나는 지 취향을 따라야 한다.
우리 남편 어떤 남자인지 감이 오시죠?
무남독녀로 귀하게 자란 나는 남자에게 고개 숙여야 한다는 거 모른다. 너 잘난 만큼 나도 잘났다. 난 잘생기고 영민한 남자보다 나랑 말이 통하고 날 존중하는 남자가 좋다. 난 돈없는 건 용서해도, 나에게 휘두르는 남자는 용서 못한다. 난 사랑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꿈속에 사는 여자이기엔, 외가에서 자라면서 종부인 할머니와 며느리인 숙모들의 모습을 보며 이미 현실감각을 키운 여자다. 그런 내가 남편이랑 머리 총 맞았다고 결혼하고 싶었을까?
우리 남편이 100점 짜리가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덕망은 바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다. 우리 남편은 약속을 가능한 지킨다. 그리고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일에는 변하려고 노력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유학을 가고 내 일을 하고 사는 나를 인정하겠다고 한 그는 결혼 후에도 딴소리 하지 않고 나를 성심껏 지원해줬다. 넌 니가 원하는 대로 결혼을 했으니, 무조건 이젠 내 맘대로 하게 해줘야 한다는 데도 동의해 줬다. 애낳기 위해 결혼했다며, 아이 밖에 모르는 내가 자신을 소외시켜도 이해했다. 공부하고 일하느라 힘들다고, 성질을 바락바락 부려도 니가 무조건 참아야 된다는 내 주장에 항상 져주며 지냈다.
내가 수시로 각종 요구를 하며, 말 안 들으면 확 '짤라버린다'는 협박에 항상 매사에 내게 조심했다. 결국엔 내 인생은 다 잃었다며 미친 듯이 울며 분노하고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붓는 나를 들어줬다. 정말 이제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내가 폭군처럼 남편에게 행패를 부리고 구박해도 어떻게 내 마음을 돌려볼까 노력하고 참으며 지냈다.
그런 모든 것을 겪으면서, 여기 다 담지 못할 적응과 이해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내가 결혼 전 남편에게 당했다고 생각한 폭압과 무시와 무례를, 결혼 후 내가 남편에게 강요하며 무시하며 무례하기를 서슴지 않았음을 알았다. 사랑이건 결혼생활이건 한 사람의 일방적 희생만은 있을 수 없으며, 서로 애써 노력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무엇보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았다.
애를 한 번 봐준 적도 없었을 우리 남편은 내가 아일 낳고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해 있는 동안, 멀어서 그리고 장사에 바쁜 두 어머니를 대신해 나를 돌봤다. 예전에 내가 아팠을 때 죽이랍시고 떡밥을 만들어 주는 수준인 남편이,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는 내 수발을 드는 데 온 신경을 쏟았다. 맨 먼저 아일 받아든 사람도 남편이었는데 눈물인지 뭔지 모르지만, 아이 눈가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가슴이 울컥 했다고 한다.
아이를 입원실에 데리고 왔을 때는 태어나서 처음 해본 것이 분명한 기저귀 갈기를 하면서 "우리 딸이 노란 개나리 꽃똥을 쌌네." 그러면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고 좋아했다. 시간이 되면 총알같이 준비해 물의 양이나 온도를 재서 아이에게 우유를 타주는 바람에 나는 젖이 퉁퉁 불었는데도 젖을 줄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남편은 아이를 낳은 데 주는 선물이라며, 애써 연습한 서툰 솜씨로 사과를 깎아줘서 날 감동시키기도 했다.
모범생인 남편은 아이도 얼마나 잘 보는지, 열심히 생각해서 더 좋은 방법을 연구하고 흐뭇해 하곤 했다. 이후에도 밤에 아이를 안아 재우고, 트림을 시키는 것에 관해서는 난 도저히 남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내가 인도네시아에 데려와 키우는 바람에 자주 보지도 못한 딸이지만, 대학원에 방학이 되어 여길 오거나 이후 한국에서 만나 지낼 때 보면 남편은 감동스런 아빠다. 보통 아빠들이 아일 이쁘다면서도 난 잘 못해 라고 엄마에게 떠넘기길 좋아하는데, 우리 남편은 안 그런다. 익숙하지 않아도 아일 목욕시키고 놀아주면서 좀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고 적응을 한다. 잠시를 놀아도 같이 아이랑 뒹굴고 품에 안아주며 제 옆에 데리고 따뜻하게 대해준다.
우리 남편이 그렇다고 아이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길 당연히 여기느냐? 아니다. 우리는 둘 다 아이에게 치이면 지친다고 생각한다. 일부러 꼭 시간을 내지 않아도 내게 영화표 좀 끊어놔라 해서 영화관을 들러 오기를 자주 하고, 필요하면 둘이 바람쐬러 외식하러 가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이 몰리지 않는 때를 고려하거나 괜찮은 이벤트를 생각해서 아이와 같이 놀이공원도 가고 월드컵 응원도 갔다. 우리는 아이만을 위해서 이벤트를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생활에 아이가 있는 상태를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우리가 볼 책을 고르면서 아이가 볼 책도 같이 고른다.
또 우리 남편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여성에 대한 자세다. 남편은 다른 곳에 가서도 내 자랑을 한다.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고, 고집을 꺾지 않는 아내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남편의 회사선배를 만나 같이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는 갓 결혼한 선배에게 딸이 좋다고 자신은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딸이 되었건 아들이 되었건 제대로 키울 수 없다면 자식을 더 갖고 싶지는 않다는 우리 남편이다.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자라 동생들 생각하며 장학금 받는데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았던 우리 남편의 장자로서의 무게감이 그런 생각의 바탕이라 조금은 가엾기도 하다.
나의 남편은 내가 나를 추구하고 살 권리나 한번씩 쉬고 여행을 하는 권리를 인정한다. 여전히 배고프면 정신을 못 차리고 게으른 남편은 내가 밥을 차려주고 옷을 다려주거나 커피를 타주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걸 내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다른 일로 그걸 못해줘도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내가 아프면 물을 갖다주거나 바쁠 때는 주스를 따라서 가져다준다. 내가 좀 혼자 쉬고 여행을 가겠다고 그러면 흔쾌히 허락을 해준다. 나도 남편이 힙합써클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데 아무 불만이 없다.
결혼한 여자와 남자는 사람도 아닌가? 우리는 우리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따로따로 지갑을 관리하는 우리는 서로 각자 번 돈을 쓰는 데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에게 백화점 카드와 신용카드 한 장을 얻어서 아이 물건을 사거나 가끔 내 것을 좀 사기도 한다. 하지만, 큰 돈을 써야 하는 경우에는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내가 돈을 벌면 선물을 사주기도 하고, 내가 식사를 한턱 내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 목돈을 보태주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끔 기분 좋은 일을 해주면서 다독거려주며 산다. 남편과 나는 좋은 친구다.
내가 나답게 살 권리가 있듯이, 남편도 자기 원하는 바를 추구하며 살 권리가 있다. 꼼꼼하고 깔끔하며 꾸미는 걸 좋아하는 남편은 집안 인테리어도 잘 배치하고, 좋은 음악을 고를 줄 알며, 세련된 느낌을 준다. 털털한 편인데다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대신 일에는 꼼꼼하고 계산에는 뛰어난 나는 각종 서류 처리와 현실적 정보관리 등을 전담한다. 부부간의 평등은 모든 걸 똑같이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을 서로에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언젠가는 한번쯤, 100점 짜리 우리 남편이란 얘기를 쓰고 싶었다. 아이를 낳는 일에 관한 글을 쓰면서, 육아에서는 "난 익숙치가 않아서", 혹은 "일이 많아서" 하면서 나몰라라 하는 남편들에게 우리 남편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우리 남편같은 집안일 맹탕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다 노력하고 마음만 있으면 할수 있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난다더냐.
아이가 젖병을 빨 때 공기 순환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걸 내 친구 부부에게 말해 주는 우리 남편은 그런 면에 둔탱이인 나보다 훨씬 낫다. 그렇다고 우리 남편이 사근사근하고 집안일 잘하는 남편도 아니고, 하루종일 애를 봐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기 할 수 있는 만큼 거들어 주면 엄마는 훨씬 편해진다.
오늘 또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는 왜 화가 났을까"란 기사와 기사의견들을 읽고 나서다. 한국의 여성들도 반성할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환상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흔히 신혼이라면 결혼생활이라면 뻔한 남편 뒤치닥꺼리를 당연시하며 그게 알콩달콩한 재미인 줄로만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자니까란 생각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라고 당연히 여기며 지낸다는 것이다. 남편의 직업을 보고 집을 사오길 바라고, 남편의 그늘을 당연히 여기는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도 문제다. 그렇게 꾹꾹 참다가 어느날 보니 이미 남편은 군림하는 생활에 젖어있고 당연시 여긴다. 나는 나를 찾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너무 많은 충돌에 막막하고 지치고, 그러다가는 포기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잘산다는 말만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남들은 좋은 시간 보낼 때, 남편과 나는 둘다 죽도록 고생했다. 우리는 돈도 없고, 여유도 없어 살아내는 것만도 벅찼다. 사람이 하루 아침에 20년이 넘는 세월 몸에 밴걸 바꿀 수는 없어서 서로를 알아듣고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피터지는 전쟁을 했다. 특히 서로가 서로에게 있는 티끌을 보는 건 너무나 힘들었다. 남편은 자신이 뭐가 문제라 내가 화내는 지 몰랐고, 나는 내 독선이나 아집을 알지 못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런 반목과 갈등과 위기가 있은 다음에야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평화가 왔다. 난 이제 전투는 해도 전쟁은 하지 않는다.
나는 100% 완벽함을 보여주지 못해도 열린 자세로 수긍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달라질 준비가 된 내 남편이 고맙다. 자신을 찾느라 힘들어 하는 아내들에게 "나는 안 힘든 줄 알아?" 반감부터 보이는 남성들이여, 자기 속에 내가 깨닫지 못한 '마초'는 없는지 한번 돌아보라.
그리고, 아내들도 그런 남편을 만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란 것도 인정하고, 조금씩 이해를 구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보라. 하루 아침에 되는 건 없다. 한발 물러나 서로 이해해 보기 위해 노력하라는 뻔한 말이 정말 진리다.
남편을 만나 지내온 날이 이제 겨우 7년이다. 앞으로 수십년을 더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생길지 나도 모른다. 지금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지나온 시행착오들이 우리에게 섣불리 단정짓지 않는 인내와 현명함을 주었다는 사실 때문일 게다.
김소연 기자 ellisabet@bclin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