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오마이뉴스 김종철/권우성 기자 jcstar21@ohmynews.com



▲ 방 안에 있던 물건이 모두 새카맣게 타버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눈 딱감고 1년만 고생해서 나가겠노라던 다짐은 또 1년을 더 추가해 버렸다.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 조금 더 고생하기로. 한 1년 더 착실히 벌어서 나가자 결심하구 다짐하지만…자신이 그전처럼 생기질 않는다."(2002년 1월7일, 새벽 6시47분, 박 아무개 씨)

캄캄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게 다 타 버렸다. 시커멓게 그을린 천장과 벽지, 깨진 유리조각, 널부러져 있는 옷들….

화재 현장이 늘상 그렇듯 이 곳 역시 아수라장이었다. 타다 남은 방 한켠, 침대 매트리스에서 한 권의 일기장이 나왔다. 1년만 고생하고 나가겠다던 그녀의 다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탄과 자조의 목소리가 절절히 배여 있는 한권의 노트는 2002년 봄, 서울 한복판의 윤락가 여관 골방에서 젊음을 보내는 한 여성의 아픔이 녹아 있다.

윤락가에서 또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12명의 사상자 가운데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의 대표적 윤락가인 속칭 '청량리 588'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림장 여관. 불은 15분만에 꺼졌지만 인명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올해 초 군산 개복동 윤락가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두달여 만의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화재 현장에서 탈출하려고 여관에서 떨어지는 투숙객의 사진 한 장만을 실었다. 왜 인명피해가 컸는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 성매매가 이뤄진 곳으로 보이는 방 안에 설치된 노란색과 붉은색 전구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새까맣게 그을린 여관 내벽과 불타 남은 각종 잿더미 속에서, 올 봄 서울 한복판 윤락가 여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앙상한 계단과 깨진 유리창

'수사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팻말을 뒤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1m 앞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전등의 불빛들이 들어왔고 머리 위로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10시 50분. 화재가 일어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여성인권 단체 회원들과 <오마이뉴스>등 취재진에게 사건 현장이 조심스럽게 공개됐다. 여성단체들은 군산 개복동 화재에서의 윤락여성 강제 감금이나 인권유린 실태의 단서를 찾고자 했으나 경찰은 전날까지 현장을 보려던 여성단체 회원들에게 감식이 끝나지 않았던 이유로, 폭언과 함께 현장 접근을 막았다.

건물 바닥에는 각종 불에 타다 남은 폐기물과 물이 고여있다. 내부는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시커멓게 타 버렸다. 지난 72년 처음 지어졌다는 대림장 구관. 2층부터 4층까지 모두 37개의 객실이 중앙 계단을 둘러싸고 늘어져 있다.

앙상했다. 타원형 계단은 검게 그을린 상태에서 뼈대만을 보이고 있고, 카페트는 군데군데 불에 타 뜯겨 있다. 3층과 4층 객실들 대부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거의 다 타버린 상태였다. 처음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 319호실은 철제 침대의 잔해와 깨진 유리 등 만이 방을 지키고 있다.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자리는 그 어떤 곳도 남겨있지 않다.

▲ 화대 기록부?  ⓒ 오마이뉴스 권우성
11월11일, 60×22=132만원과 피임약

3층의 한 객실로 발을 옮겼다. 외부와 달리 내부는 크게 타지 않았다. 2평 남짓한 방에 조그마한 화장대와 TV, 옷걸이와 수납 박스, 침대 등이 놓여 있다. 방 문 옆으로는 여러 개의 신발들이 쌓여 있다. 웬만한 살림집정도의 생활 물품들이 들어차 있다.

화장대 밑에서 조그만 '용돈 기입장'이 발견됐다. 한 아무개라고 자신을 밝힌 이 여성이 지난해 10월 11일부터 올해 2월21일까지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한 일종의 가계부였다.

용돈기입장을 보면 그는 하루에 적게는 6번에서 많게는 22번까지 남성을 상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팁으로 받은 1만원도 꼼꼼히 기록돼 있다. 여기에 잡비, 방세 등 수입과 지출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2월 4일까지 그녀가 벌어들인 수입만 1014만원. 그 옆으로 횟수를 의미하는 '169'라는 숫자가 씌여져 있다. 그동안 잡비 등으로 지출된 금액만도 300만원을 넘어섰다. 뒤이어 경찰 관계자는 "상대한 남자가 169명이 아니라 169번"이라며 "남자들은 그보다 적을 것"이라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 5알이 사용된 피임약과 여러 가지 약봉투가 방안에서 발견됐다. 여성들이 묵고 있던 여러 곳의 방 안에서 다양한 종류의 약이 보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설책 4권이 눈에 들어온다. '양귀비, 가슴에 새긴너 1, 2와 등대지기' 등이다. 화장지 6롤이 옆에 쌓여 있다. 유독 많아 보인다. 조그만 서랍장 위에는 갖가지 물품들이 널려 있다. 각종 화장품과 함께 조제약과 일반약 10여종이 손에 잡힌다. 약봉지 위에는 '술깨는 약', '속 아플 때 먹는 약' 등이라는 글귀들이 보인다. 피임약이라고 씌여져 있는 수십여개의 알약도 서랍 위에 나뒹굴고 있다.

윤락업주가 임대해준 방과 명함 속의 남자들

시계는 낮 12시를 향하고 있다. 또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화장실에는 여성들의 속옷으로 보이는 수십여벌의 옷들이 욕조에 쌓여있다. 한 사람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었다. 화장실 입구에는 칫솔이나 치약 등 기본적인 세면도구 조차 보이지 않았다.

10여 켤레의 신발들도 방 입구에 쌓여져 있다. 화장대로 보이는 수납 공간 위에는 서너장의 병원 처방전이 놓여져 있다. '마약 먹을 것'이라는 글귀도 눈에 띈다. 실제 마약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자신만이 복용하는 약을 비유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성단체 관계자가 귀띔했다.

조그만 바구니 안에는 100여장에 가까운 명함들이 쌓여 있다. 공중파 방송사 관계자부터, 벤처기업 부장, 개인 치과병원장, 법무법인 실장에 이어 심지어 자신을 '형사'라고 적은 경찰까지 있다. 이 형사는 인근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강력반 형사로 확인됐다.

A 형사는 "경찰서 방범계와 단속에 나갔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여성의 바구니에서는 명함이 아니라 쪽지 형태로 직접 개인 연락 전화번화가 적혀 있었다.

이밖에 대부분의 명함 속 남자들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여성에 대해 아는바도 없고, 명함이 어떻게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 피임약이 발견된 방 안에 있던 명함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성들이 묵었던 것으로 보이는 방은 주로 3층과 4층에 집중돼 있었다. 윤락여성 '용돈 기입장'이 발견된 313호부터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319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방에 여성들이 생활해 왔다.

화재 당시 3층에 머물렀던 김아무개(21) 씨는 "한방을 여러명이 쓰고 있었으며 우리 방의 경우 2명이 사용했다"면서 "588-B호(윤락업소)에서 방 3개를 얻어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상한 구조의 비상구가 없는 여관?, 경찰의 안일한 사태인식

이번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5명은 연기에 질식했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명의 부상자 역시 대부분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허리와 다리 등을 다쳤다.

하지만 주말이나 밤늦은 시간이 아닌 평일 낮 시간에 발생한 화재였고, 발생 15분만에 불이 꺼진 점으로 볼 때 인명피해가 상당히 큰 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관의 경우 평일 12시 이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고, 대형 숙박시설의 경우 객실 주변으로 비상구가 거의 마련돼 있어 대피 역시 쉽기 때문이다.

▲ 한 욕실에는 여러 명의 것으로 보이는 여성 속옷이 발견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대림장 구관의 경우, 신관과 연결공사를 하면서 구관의 비상 계단이 사라졌다. 비상계단이 있던 공간은 보일러 등 창고와 소화전으로 가려져 있었다.

물론 각 층마다 신관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신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일반 성인 남자들조차 쉽게 여닫기 어려운 대형 철제문으로 돼 있다. 더구나 이들 철제문의 경우 신관쪽에서 문을 잠궜을 경우 구관쪽에서는 열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돼 있다.

실제로 화재당시 대부분의 신관 통로 문은 닫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관 내부가 거의 다 타버릴 정도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신관으로는 불꽃이 거의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을 감식한 경찰 감식반 관계자도 "화재 당시 신관으로 통하는 문이 닫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관쪽에서 문이 잠겨져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화재가 발생한 여관. 왼쪽이 신관, 오른쪽이 구관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9일로 화재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경찰은 화재 원인조차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 구관의 비상 계단이 왜 창고로 둔갑해 있었는지, 588 윤락업소 업주가 조직적으로 여관의 상당수 방들을 장기 임대해 왔다는 점이나 여관 업주 역시 불법적으로 매매춘을 방조했거나 장소를 제공한 혐의 등에 대해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실장은 "화재가 난 여관이 윤락가라는 사회적 특수한 지역에 위치해 있고 투숙 여성들 상당수가 윤락여성으로 확인됐다"면서 "불법적인 성매매에 따른 여성 인권 침해 부분에 대한 경찰의 수사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금만 힘내자, 주저 앉으면 안된다구…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박아무개 씨의 일기장. 2년째 청량리 윤락가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밝힌 그녀는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일기 주요 부분.

"몇일전 수술땜에 낼은 실밥 풀러 병원에 가야 하는데 날씨는 왜이리 스잔한지… 아- 벌써 일년이네 이곳에 온지도… 눈 딱감구 1년만 고생해서 나가겠노라던 다짐은 또 1년을 더 추가해 버렸다. 내 발목을 붙잡었다. 그래 조금 더 고생하기로 한 일 1년더 착실히 벌어서 나가자 결심하구 다짐해 보지만…자신이 그전처럼 생기질 않는다.

"책 한권을 읽을 여유없이 1년을 달려왔다. 누구든 손가락질 하더라도 뚜렷한 목표로 옆도 보지 않고 부지런히 한달에 27일, 28일 연속 일하면서도 내 체면을 멈추질 않았잖는가. 조금만 힘내자 주저 앉으면 안된다구…."(1월 7일 새벽 6시47분)

"오늘만 일하면 낼은 쉰다. 쉬는 날이 왜 기다려 지는지…피식 웃음이 나네. 할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몇일있음 구정이다. 그래 집에도 다녀와야 하구, 쓸돈은 많은데 참 힘이 드네. 대는 되로 살라시던 엄마의 말씀이 큰 힘이 된다."(2월 6일 새벽 아니 아침)

"조그만 여관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그런지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르지만 오늘은 유난히 옆방 사람들이 힘든 내마음을 조금도 모르고 날 힘들게 한다. 내 안의 있는 누군가를 힘껏 밀어내면 낼수록 내가 더욱 빨려 들어가는 그런 기분 정말 싫다. 이건 아닌데… 약해 지기 싫어서 술은 안마실려고 했는데 오늘은 날씨 탓일까. 소주 한잔을 기울인다."(3월 20일 새벽 1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