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이혜란 여성예술집단 '오름' 전 대표(왼쪽)와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 오마이뉴스




























"부끄럽습니다. 함께 일해온 동료들, 후배들과 함께 받았더라면 훨씬 더 맘이 가벼웠을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문화운동은 더 그렇다. 아직까지도 '주변 또는 일부의 장르'라고 여기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벽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돈이 안 되는' 일이란 이유도 한몫 거든다.

이런 '현실의 벽'과 20년 이상 지난한 싸움을 해온 이들이 있다. 바로 이혜경(50) 여성문화예술기획(www.femiart.co.kr, 이하 여문기획) 대표와 이혜란(43) 여성예술집단 '오름'(이하 오름) 전 대표(현 운영위원)다. 두 사람은 여성문화운동 현장에서 열정을 바쳐온 여성문화운동계의 '큰 언니'. 지난 20년간 오롯이 바쳐온 이들의 혼신이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으로 빛을 발하게 됐다. 이들은 수상소감을 밝히면서 모두 "쑥쓰럽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번처럼 굵직한 상을 받기는 처음이다.

이 대표, "주변문화 편견 깨고 여성예술 위한 문화공간 필요"
이 위원, "지역 여성 위한 문화정책 지원 필요"

▲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일 오전 10시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대표 이오경숙 이강실 정현백, 이하 여연)은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8일 3·8 세계 여성의 날 95돌을 맞아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로 이혜경 대표·이혜란 운영위원이 공동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은 3일 오전 10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렸다.

이혜경 대표는 지난 92년 여문기획을 창단한 이래 연극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자기만의 방> 등 여성주의 연극을 기획했고 여성주의 전용문화공간 극장 '마녀'를 탄생시켰다. 지난 97년에는 한국 유일의 여성영화인의 축제인 '서울여성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다. 또한 지난 2001년에는 여성의 성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담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연출, 호평을 받았다.

이혜경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밝힌 수상소감을 통해 "여문기획 식구들과 상을 받았더라면 마음이 가벼웠을테지만 한편으론 그간 (여성문화운동계에서) 같이 고생한 이혜란 위원과 공동수상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또 "그간 같이 여성운동했던 이들이 내 뒷심이었다"며 "이제는 여성주의 문화가 '주변 문화'라는 편견을 넘어서 창조적 문화의 핵심으로 떠올라야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여성문화운동을 해오면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그간 속을 태워야 했던 일이 떠오르는 듯 "젊었을 때는 패기와 무지와 용기로 일해왔지만 현실은 아직까지도 여성문화인에게 벽이 많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현장 예술 기획가'로 잘 알려진 이혜란 위원은 그간 춤·노래·음악·연극 등을 통해 여성 노동자와 함께 호흡해왔다. 지난 83년 한국여성평우회 문화부 활동을 통해 여성문화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97년 오름을 설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길을 확고히 다져왔다. 또 지난 2002년 발생한 군산 대명동 윤락가 화재 참사 때에는 희생된 여성들을 위해 '여성장'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 위원은 수상소감에서 "그간 거리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만나온 수많은 여성들이 떠오른다"며 "그들과 함께 고생하고 일했던 기억이 교차한다"고 회고했다. 이 위원은 지난 해 유방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은 열정파다. 기자회견장에 멋스런 검은 모자를 쓰고 나온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다행히도 현재는 회복단계라고.

이 위원은 "이번 상 수상으로 문화적인 방식으로 '(양성)평등'을 일궈낼 수 있다는 내 신념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됐다"며 "그간 함께 고생해온 오름 후배들에게 '한길을 가다보면 영광스런 날도 오는구나'란 사기 진작의 계기도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시상식은 오는 8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리는 제19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은 기자회견 후 이혜경 대표·이혜란 위원과 나눈 일문일답.

▲ 이혜란 전 대표(왼쪽)와 이혜경 대표.  ⓒ 오마이뉴스


- 수상 소감은.
▲이혜경 대표(이하 경)="여연의 이오경숙 대표에게 소식을 듣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 요즘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때다. 그간 (여성문화운동) 일을 해오면서 '놀자, 놀면서 즐기면서 하자'라고 생각해왔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상을 받게 됐다고 생각하니 그간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소중한 이름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

만약 단체로 상을 받았더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같이 고생해온 이혜란씨와 이 상을 받게 돼 기쁘기도 하다. 젊었을 때는 패기와 무지와 용기로 일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벽'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이 대목에서 이 대표는 감정이 격해진 듯 잠시 눈물을 비쳤다). 평소엔 씩씩하고 늠름한데… 이런 중요한 시간에 눈물이 나나 보다.

말로는 '여성의 시대다, 문화의 시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문화·정치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여성문화운동 하는 사람들의 말을 마음 열어 놓고 들어주길 바란다. 여성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해왔고 생산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제 여성주의 문화의 제도화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대다수 사람들의 '주변적 문화'라는 생각을 넘어서 창조적 문화의 핵심으로 떠올라야 한다. 우리사회가 진정 문화적으로 성숙해지길 바란다면 여성문화에 대한 의식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때다.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이 날 밀어주는 뒷심이었다. 앞으로도 서로 실망시키지 않으며 힘을 주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이혜란 위원(이하 란)="이렇게 영광스런 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전화 받고 역시 무척 부끄러웠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나서 지난 83년 여성평우회 활동을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약력을 쓰다보니 여성단체 활동을 하며 거리공연·지역순회 공연할 때가 생각났다. 거리에서 많은 여성과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그들이 힘을 잃지 않고 수평적 관계를 이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조 문화일을 자임하게 됐다.

92년에는 '80년대와는 다른 여성문화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여문기획을 만들었다. 97년 이후에는 다시 기층여성문화에 눈을 돌려 오름을 창단했다. 그간 지역을 다니며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성을 많이 만났다. 그들과 얘기 하다보면 법과 제도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의식평등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정작 집안안에서의 부부관계는 불평등한 경우도 있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문화적인 방식으로 평등을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수상을 계기로 그간의 각오를 다시 다지게 됐다. 다시 한번 영광임을 밝힌다. 그리고 오름 후배들에게 고생스러워도 이렇게 상 받는 영광스런 날이 온다는 의기를 진작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좋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내 과도하고 무모한 열정이 타인에게 강요나 상처가 된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혹시 그런 적 있었다면 그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이혜경 대표.  ⓒ 오마이뉴스


- 그간 여성문화운동을 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경="며칠 전 오름이 연습실겸 사무실을 마련해 개소식에 다녀오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지하공간이나마 공간을 마련하게 된 게 대견하고 기뻤다. 하지만 마련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구나란 생각 많이 했다.

돈 고생을 참 많이 했다. 돈이 뭔지 몰라서 한 일도 많이 있었다. 돈이 무서운 줄을 몰라 안 맡았을 일도 열심히 했다. 여성영화제도 마찬가지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래도 열심히 하다보니 적자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돈 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여성문화에 대한 이 사회의 벽이다. 특히 여성문화예술에 대해 이렇다할 정부지원이 없는 상태이니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여성민우회 활동을 할 때 차비가 없어 봉천동 집에서 충정로 사무실까지 매일 걸어오는 후배를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비현실적인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문화화한다는 일은 곧 돈이 되는 일인데. 그때 후배의 얘기를 듣고 적어도 활동가들에게 줄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돈을 주는 일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여문기획을 만들게 됐다. 그간의 활동은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앞으로는 이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주류화하는 게 내 할 일인 듯 하다."

▲란="대학원에서 연극기획을 하면서 표를 팔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무척 힘들었던 이후로 유료공연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단체 등에서 기금을 마련해준 경우가 많아 그다지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오름을 만들면서 두가지 결심한 바가 있었다. 첫째는 돈을 모으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을 모으지 않는다는 결심이다.

같이 일하던 재능 있는 여성들이 도중에 애를 낳거나 결혼을 하면서 그만 두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돈 때문에 궁핍하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뒤로 돈이 생기면 모으지 않고 동료들과 다 나눴다. 사람을 모으지 않겠다는 것은 기동타격대처럼 뜻이 맞는 소수가 같이 일한다는 의미다.

그간 일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후배들은 무대에 서길 바랐는데 나는 거리에 서길 원해 후배들의 바람을 들어주지 못했던 점이다. 지난 해 3·8 여성대회 때도 꽃샘추위로 무척 추웠는데도 전국을 누비며 거리에서 공연을 했다. 그때마다 후배들에게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는 그런 빚을 갚기 위해 무대에서 기획공연을 할 생각이다."

- 새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 특별히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경="선거 전에 정책토론을 보면서 당시 노 후보가 여성·문화·환경 정책에 무척 약하고 적극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여성들의 생각을) 많이 반영하려는 노력은 한다고 믿는다. 평화·경제 등 시급한 현안이 많아서인지 그간 문화정책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정책적인 배려가 아닌 국가 홍보처로서의 역할을 많이 해온 듯 하다. 다행히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시각이 많이 바뀌긴 했으나 너무 자본주의적 문화 유통 지원과 같은 문화산업에만 치중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기초예술이나 다양한 문화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이것 역시 여성문화예술인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란 생각도 든다. 세상의 반인 여성이 문화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서 그 시각을 들어내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미술·음악·연극 등 장르를 넘어서 여성 문화인이 한 데 어울릴 수 잇는 문화공간이 필요하다."



▲ 이혜란 전 대표  ⓒ 오마이뉴스


▲란="(문화 시스템이) 중앙에 너무 집중됐다. 특히 지역은 그 욕구에 비해 시설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음향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는 문화회관 건립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 지역 여성들이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인가.
▲경="돌이켜 생각해볼 시간조차 없을 만큼 바쁘게 걸어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그중 <자기만의 방>은 뜻밖의 성공을 해 그 준비과정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또 여문기획 식구들끼리 보냈던 시간도 많이 생각난다. 나 또한 여문기획과 함께 많이 성장했다. 그동안 재능 있는 여성들도 많이 만났다. 한편 매맞는 여성, 기지촌에서 몸파는 여성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 다양한 여성들이 '문화'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실 속에서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문화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내일을 일구는 힘이 됐다."

▲란="여러 기억이 교차한다. 70∼80년대 말의 여성 노동자들은 경공업위주의 일을 많이 했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든 민주노조를 지키려 했던 상황에서 노조에 지원해 같이 문화공연을 했던 게 생각난다. 또 지난 해 여성대회 때 전국 버스투어를 하면서 공연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아무래도 추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웃음)."

- 여성운동과 여성문화운동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나.
▲경="분명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찾는다면 그간 여성운동이란 큰 틀 안에서 같이 일해오다가 분화할 필요성을 느껴 여성문화운동을 하게 된 게 아닌가 한다. 여성문화운동 또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다. 즉 현장에서 돌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운동이란 뜻이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이 여성운동의 몫이었다면 문화운동은 감각과 감수성을 새로이 열리게 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이제는 이런 여성문화운동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성문화운동은 보통의 여성들이 숨쉬고 사유하는 방법을 자유롭게 한다. 앞으로 여성운동에서도 여성문화운동적인 성격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란="여성운동가냐 여성문화운동가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구체적인 경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답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과 계획 속에 담겨 있다. 굳이 말하자면 여성문화운동은 여성운동의 확장이라고 본다. 여성이 더욱 인간된 삶을 살게 하는 방법으로서 할 일이 많은 일이다. 여성운동 내에서도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확대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 여성문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달라져가고 있다고 보나.
▲경="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다. 70년대만 해도 운동을 할 때에는 청바지에 커트머리, 운동화 차림이었다. 전투적으로 뛰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차림이 필요했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옷차림에도 내가 내 성을 당당하게 표현하고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런 데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 훨씬 자신 있어졌다. 관념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해방적으로 가고 있다.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모습도 있지만 훨씬 자유스러워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란="강의나 문서를 통한 교육보다는 한편의 드라마로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란 생각에서 여성문화운동을 선택했다. 그간 나도 여성들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외부의 억압에 자시의 욕망을 억압햇지만 지금은 자신의 욕망을 잘 들여다보고 또 표현한다. 수용자에서 참여자로 역할이 바뀌어 가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
▲경="여문기획을 만든 지 10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대표자리에서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계획이다. 10년을 했으니 이제는 주변에서 이 역할을 맡을 후배를 찾고 싶다. 두번째로 사무실이 없어 1·2년마다 전전하는 일이 없게 됐으면 좋겠다. 이는 한 단체만의 몫은 아니다. 새로운 여성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다음으로 여성문화예술 기획을 위한 전문기획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이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이 일은 오랜 기간 몸으로 뛰어야만 습득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에 거절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각 분야별로 여성문화를 전문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인력을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싶다. 이 일은 곧 후배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란="오름에서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을 올리는 일이다. 올 9월에 <금지된 농담(가제)>을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게 될 것 같다. 내부에서 성을 여성의 입장에서 유쾌한 농담으로 풀어보자는 제안이 나와서 기획하게 됐다. 세미 뮤지컬 형식이 될 것 같다. 장기적인 계획은 앞으로도 우리를 필요로하는 곳에 가서 일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와 이혜란 예술집단 '오름' 운영위원(전 대표)의 약력이다.




■ 이혜경 대표

△ 주요 약력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 졸.
동 대학원 예술사회학 석사.
1980 ~ 1982: 크리스찬 아카데미 프로그램 간사
1986 ~ 1989: 여성민우회 문화기획 실장
1990 :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장
1992 ~ : 현재 사단법인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1995. 9 : 북경세계여성대회 NGO 문화분과 대표로 활동
1997 ~ : 현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8 : 공연예술진흥협의회 위원/문화부 문화정책 자문위원
1999 ~ :현재 사랑의 친구들 기획자문위원/문화개혁시민연대 부집행위원장 및 상임집행위원/서울시 여성위원
2002 : 문화관광부 축제평가위원/환경부 기획 홍보 위원/문화관광부 문화기반시설 평가위원

△ 연출 및 기획 작품
1984 : <전태일 한풀이굿> 연출 (독일)
1985 : <공장의 불빛> 연출 (독일)
1987 : <불꽃이여 이어둠을> 연출 (여성 노동자 문제) 외 수편 연출
1988 : 인형극 <떡배와 똘배>/환경 연극 <검은 민들레>(공해 문제)/무용극 <내사랑 한반도> 연출 (반전 반핵 평화)/<들불로 다시 살아> 연출 (YH 사건)/<딸들아 일어나라> 연출 (사무직 여성과 노조 결성)
1989 : <여성노래 한마당> 기획·제작, 연출
1990 : <혜영, 용철 위령제> 연출 (빈민 여성, 탁아 문제)
1991 : <평화 한마당> 제1회 열린 음악회 (현재 KBS의 열린 음악회의 전신) - 여성, 그 살아가는 이야기> 기획·제작, 연출
1992 : <정신대 아리랑> <정신대 문화제> 기획·제작, 연출/연극 <자기만의 방> 기획·제작
1993 : 연극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기획·제작
1995 : 연극 <아마조네스의 꿈> 기획·제작
1995 : 제 4 차 북경 세계여성대회 한국문화행사 전담 기획·제작, 연출
1997 :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1998 : 연극 <마요네즈> 기획·제작
1999 :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99 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 기획·제작, 운영위원
2000 : 연극 <밥퍼? 랩퍼!> 기획·제작/과천 마당극제, 여성연극제 기획
2001 :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연출
2002 : 제4회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동아시아 여성미술제 기획·제작
* 이 밖에 사회단체, 여성단체의 약 50여 편의 연극 및 행사 기획·제작, 연출

■ 이혜란 위원

△ 주요 약력
덕성여대 국어국문학과 졸.
1983 - 86: 한국여성평우회 문화부 활동
1987 - 91: 한국여성노동자회 문화부 활동
1992년 - 96: 여성문화예술기획 설립, 기획위원
1997 - 2002: 여성예술집단 오름 설립, 대표
1997 - 1999: 한국여성단체연합 문화위원
1998 - 1999: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문화위원
1999 - 2002: 전국여성노동조합 문화위원

△ 연출 및 기획
·연극: <딸놀이 마당> <우리 승리하리라> <들불로 다시 살아> <큰힘주는 조합> <막장을 간다> <껍데기를 벗고서> <들꽃이여 불꽃이여, 그대 이름은 여성노동자> <세상은 여자하기 나름> <하늘 끝에서 부르는 노래> 등 대본집필, 기획, 연출, 출연
·인형극 : 성폭력 예방 인형극 <하늘이의 비밀>, 환경 인형극 <짱아의 물속여행> 기획, 연출 및 출연
·노래극 : <우리들의 희망, 우리들의 선택> - 1998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노동자 대회
<희망, 아름다운 미래> - 2000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노동자 대회
<그래 좋아, 우리들 손으로> - 2001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노동자 대회
<딸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 호주제 폐지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 순회공연
<일하는 삶으로 당당한 삶으로> 등 기획, 연출 및 출연
·음악회 기획, 연출: <여성노래한마당> <양희은 콘서트> <열린 음악회> <청소년 음악회> <참사랑 쉼터돕기 안혜경 콘서트> <생명을 노래하는 푸른음악회> <여성의 전화 기금 마련을 위한 재즈콘서트> 등
·북경세계여성대회 : 한국 NGO대표로 참가하여 <정신대아리랑> 공연(1995년)
·영상물 기획,제작 : <순영이의 사랑이야기> <여성의 역사> <여성노동자 투쟁사> <불꽃이여 들꽃이여 그대이름은 여성노동자> <여성노동운동의 흐름> <재희 이야기> 등
·1998,1999,2000,2001년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노동자대회 기획, 연출
2002년 3·8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18회 한국여성대회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