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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습니다"

▲ 경찰의 저지로 서울시청 앞 광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49재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의 죽음을 억울하게 여기는 동포들의 많은 눈물을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계시는 이 곳에 내 넋도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으나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을 수가 없습니다."

월드컵 거리응원 인파로 붉은 물결을 이루던 서울 시청 앞 광장이 오늘은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넋을 고이 보내려는 추모인파 3000여명의 촛불 대열로 가득 찼다.

애초 '고 신효순, 심미선양 49재 추모제'가 예정된 시간은 오후 6시. 그러나 한양대 정문 앞에서 추모집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오후 4시 45분부터 모이기 시작했고 오후 5시경에는 이미 대학생들만 1000여명이 시청 앞 덕수궁 정문에 자리를 잡았다.

행사가 시작되는 6시에는 시민사회단체 회원, 일반시민은 물론 교복을 입고 온 청소년들까지 3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전경 1500여명이 이들을 에워싸는 바람에 자리가 모자라 시청 앞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결국 행사가 지연되면서 6시 30분 대학생들이 공간 확보를 위해 전경들을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경기북부대책위원회 회원 한 명이 크게 다치고, 대학생 참가자 최현중(수원과학대 2년)씨가 경찰 방패에 찍혀 적십자병원에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우리는 오늘 경찰과 부딪히지 않고 평화롭게 집회를 마칠 것입니다. 경찰의 폭력 유발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마십시오"라고 방송했고 대학생들은 큰 마찰 없이 5분만에 2차선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숙제 풀겠다"

▲ 행사에 참석중인 여성연합 회원들의 모습.  ⓒ 여성연합
이날 추모제에서 소파개정국민행동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는 "누가 왜 죽였는지 너희(효순이, 미선이)는 알 텐데 죽은 너희는 말이 없구나. 살아남은 우리가 밝히고자 한다"며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의원모임' 대표인 김원웅 (한나라) 의원은 "친구는 싸울 수 있는 관계이며 정정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관계"라며 "불평등한 소파에서는 강대국의 오만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는 더 이상 총독부 중의원이 아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며 양심적 시민과 국회의원들을 규합해 소파 개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청소년들의 참여 열기를 반영하듯 이날 추모제에서는 청소년 발언자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형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무대에 올라선 청소년열린학교 회원 정영혜(신월중 3년)양은 "나에게는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며 "정당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우리 모두 일어섭시다. 함께 외칩니다"라고 발언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정양은 태극기를 두른 이유에 대해 "미국에게 대한민국을 얕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의미에서, 우리 청소년들도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촛불의식을 준비중인 시민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성기 전국민주중고등학생연합 중앙위원장은 "경기도 교육청에서 학생들을 집회에 내보내지 말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곧 취소되긴 했지만 청소년과 학생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후 9시경 시청 앞 추모제를 마친 시위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명동 젊음의 거리까지 행진을 하며 선전전을 펼친 뒤 오후 10시경 정리집회를 갖고 해산했다.

경찰은 행진을 불허하겠다는 입장을 바꿔 선선히 길을 터주었으며 전경들은 비좁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열을 정비하는 참가자들에게 "천천히 가세요. 다쳐요"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명동 거리에서 밤쇼핑을 즐기던 시민들은 참가자들의 월드컵 박수를 따라하거나 선뜻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권박효원/유창재 기자 10zzung@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