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대

▲ 원주MBC가 연이어 발생한 사내 '성희롱사건'으로 요새 시끄럽다. 사진은 원주MBC 사옥.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지방의 한 방송사에서 연이어 발생한 두 건의 성추행(희롱) 사건으로 지역여성단체 등이 몇 달째 논란을 거듭해 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당 방송사는 납득할만한 조치를 내리기는커녕 한 피해자에게는 '해고'를, 또다른 피해자에게는 '타직종 발령'을 내 보복성 인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원주MBC(대표이사 윤호찬) 총무팀 소속 안내직으로 파견근무하던 K씨는 지난해 연말 부서 회식을 마치고 2차로 직장 상사들과 함께 노래방에 동행하게 됐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자 상사인 모 국장, 모 차장 등 2명의 간부가 K씨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이따가 나 재미있게 해 줘"라고 말하고는 이어 블루스를 추면서 자신의 얼굴을 K씨 뺨에 비볐다.

노래방에서 나온 뒤에는 다른 모 차장이 K모씨를 택시에 태워 호프집에 데려간 뒤 억지로 술을 권하기도 했는데, 이날 K씨에게 성추행(희롱)을 한 가해자 가운데는 피해자의 친구 외삼촌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해고', 가해자는 '감봉'?

나이가 어린데다 계약직이라는 불리한 신분상의 이유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한 K씨는 얘기가 통하는 몇 명에게만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곧 사내로 퍼지자 원주MBC는 금년 7월 1일자로 K씨를 계약해지시켰다. 이는 당사자로서는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를 내쫓았던 회사가 뒤늦게 사건 해결에 나선 것은 지난 7월 29일 K씨가 노동부 원주지방사무소에 진정서를 접수하면서부터다. 이어 노동부 조사가 시작되자 MBC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들에게 각각 1,2,3개월 감봉(본봉의 10% 감봉) 처분을 내렸다.

원주지방노동사무소는 원주MBC 측에 징계 미실시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에 대한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하는데 그쳤다. 또한 피해자가 요구한 해고수당 지급 건에 대해서도 "파견근로자로서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퇴사이며, 원주MBC와는 고용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 원주MBC측은 "회사로서도 충분히 상처받았다. 더 무엇을 해야 하나"라며 반문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원주여성민우회(회장 용정순)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너무 미약하고 징계사유도 '성추행(희롱)'이 아닌 '명예실추 등'으로 명시되어 있다"며 원주MBC를 비판하고 나섰다. 실제 타 회사의 경우 성희롱 가해자는 정직, 자진사퇴 등의 징계를 받아왔다. 또 원주MBC에서 '감봉' 조치는 주로 방송사고를 내 '명예를 실추한' 경우에 적용되어 왔다.

이에 대해 김정지 원주MBC 경영국장은 "감봉조치되고 몇 년간 승진이 안 된다면 중징계 아니냐"며 "(가해자가) 딸같은 사람한테 찾아가 반성문을 2번이나 썼다. 이렇게 여론의 폭격을 받고 있는데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또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사유가 성희롱이 아닌 점과 관련, 김 국장은 "'명예실추 등'에 (성희롱도) 다 포함되어 있다"며 "언론사로서는 성희롱보다 공신력을 잃는다는 것이 더 중대한 문책 사유"라고 강조했다.

한편 용정순 원주여성민우회 대표는 "성희롱 사례가 발견되는 회사는 성차별적 관행이 만연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원주MBC의 과거 '전력'을 공개했다.

원주여성민우회에 따르면, 원주MBC는 이전에도 여자 아나운서나 기자가 출산을 하면 심의실이나 총무부서 등으로 발령을 낸 적이 있으며, 심지어 "아기를 낳으니까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이유로 업무를 제대로 주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특히 몇몇 남자 간부들은 후배 여자 아나운서에게 '시집가더라도 OO(임신한 선배 여기자)처럼은 하지 말아라'라며 '밤마다 남편이랑 얼마나 많이 했으면 벌써 애를 가졌냐'라는 등 성차별적 발언을 해 여직원모임에서 회자되기도 했던 걸로 알려졌다.

피해자 인사발령 '보복성' 논란

두 번째 성희롱사건은 지난 4월 18일 원주MBC보도팀과 원주CATV와의 술자리에서 발생했다. 이날 원주CATV 방송제작부장은 원주MBC L기자에게 "너는 다 좋은데 가슴이 작아서 문제"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L기자는 원주CATV 내의 피해자 2명과 함께 여성부에 시정신청서를 제출했는데 여성부 조사가 시작되자 가해자는 금년 7월 5일자로 사표를 냈다. 이로써 이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싶었다.

▲ 회사 측이 원주여성민우회에 보낸 공문. "이해 당사자의 주장은 오히려 함께 인사발령된 다른 남성직원들로부터 역차별이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그러나 문제는 그 후 3일 뒤 단행된 원주MBC 인사발령에서 불거졌다. L기자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른 직종인 PD로 발령을 받았다. 방송사에서 기자가 PD로 전직발령을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당사자인 L기자는 "나에게 맡겨진 일은 정식 PD업무가 아니었다"고 말해 '보복성 인사'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L기자에 따르면 독립적인 PD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아나운서가 하던 라디오 제작과 앵커 일을 '땜빵'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L기자는 또 타직종으로 옮긴뒤 사측에 강력하게 항의해 그나마 'PD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프리랜서 PD를 증가시킨다는 게 회사 방침인데 어깨 너머로 배우는 PD가 무슨 경쟁력이 있겠냐"며 고용불안을 호소했다.

L기자는 "애초 여성부에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려하자 모직장 상사가 '불이익' '출입처 변경' 등을 운운하며 철회압력을 넣은 바 있다"며 "이번 인사는 성희롱 문제제기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보복성 인사"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회사측은 이에 대해 "이번 인사는 MBC 노사가 합의한 '경쟁력 강화 실행방안'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입장이다.

김정지 경영국장은 "이와 같은 직종전환이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PD가 기자보다 열등한 것도 않은데 '부당인사'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후 가을개편부터 L씨에게 프로그램 제작을 맡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김 국장은 여성부에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려 하자 철회 압력을 넣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없었다"며 "있었다고 해도 선배가 걱정되는 마음에서 한 말이겠지,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L기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다시 여성부에 시정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지난 8월 28일 여성부의 1차 조사가 이루어졌다. 최종 조사결과는 오는 10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원주여성민우회의 한 관계자는 "언론사가 이 정도이니 일반 제조업체나 중소기업의 여성 성희롱은 그 수준이 가히 짐작이 간다"고 밝히고는 "직장내 성희롱 교육 강화와 함께 가해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취해져야 재발방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박효원 기자 10zzung@ohmynews.com

 
기자 자리 찾기 위해 싸우는 L씨
"혼자 선 기분으로 회사와 싸웁니다"

"5년 내내 휴일도 모르고 취재만 해왔어요. 한 3년 지나니까 친구들이랑 연락이 끊기던데요. 약속도 못 잡고 결혼식도 못 가고. 그렇게 살았는데 이젠 취재를 당하는 입장이에요. 입장이 바뀌니까 그 때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되네요."

L기자는 취재 생활에서 느꼈던 점, 에피소드 등을 자주 이야기했다. 같은 기자여서 죽이 맞은 탓도 있겠지만 2달 동안 떠나있던 취재현장이 못내 그리운 눈치였다. 처음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4개월째. 지칠 때도 됐지만 아직까지 오기가 서린 목소리다.

"제일 힘들 때는 아무래도 동료들, 선배들이 저를 오해할 때죠. 괜히 이상한 말이 돌까 봐 친한 사람도 만나기 어려워요. 아예 혼자 싸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럿이라고 생각하면 떨어져나가는 게 겁나잖아요."

L기자는 "많이 힘들어질 때는 나와 같이 시정신청을 냈던 원주CATV 피해자들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고 했는데 정작 내가 지금 꼬리를 빼면 비겁하다"는 생각에서 L기자는 끝까지 갈 각오로 싸운다. / 권박효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