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문제는 곧 젠더문제이다
이창용 ‘G20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Korean Sherpa)은 G20 서울회의의 준비과정에 젠더균형(Gender Balance)에 대한 고려가 없지 않느냐는 본인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G20은 금융 및 경제위기를 논의하는 자리이며, 따라서 젠더이슈나 여성문제는 G20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지난 7월 30일 지구촌빈곤퇴치네트워크(Korean NGO's Network against Global Poverty, GCAP Korea)가 서울에서 개최한 <G20과 개발에 관한 아태지역 시민사회 워크숍>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의 경제위기와 금융위기의 파괴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와 해고 및 실직의 부담, 가사 및 돌봄 노동의 부담, 성폭력․성매매․인신매매 등 위기비용의 여성전가라는 매일 매일의 현실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와 금융, 그리고 무역이 여성의 삶을 깊숙이 지배하고 있으며, 전 세계 빈곤인구의 70%가 여성인 상황에서, 경제와 금융 그리고 무역이 젠더와 상관없다고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장중심 개발담론의 위험성
오는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G20 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준비가 한창인 한국정부는 과거 G8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금융위기에 대한 논의와 별도로 개발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제안을 담은 ‘개발 이슈 페이퍼(Development Issue Paper)'를 발표하였다.
이를 검토한 다수의 전문가들은 그 내용에 담긴 개발의 관점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평등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기여보다는 성 불평등과 빈부격차의 심화가 더 부각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낳은 ’한국식 경제성장‘에 대한 충분한 평가와 분석, 그리고 반성 없는 섣부른 개발담론의 제안, 즉 “어떤 개발이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이 없는,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강조하는 한국식 경제성장 모델이 갖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개발목표가 진정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젠더목표가 통합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난 개발의 역사과정 속에서 겪은 여성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조망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한국식 개발경험의 모델화’는 여성들의 관점에서 경제성장과 개발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라고 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여성운동 진영에 던져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운동 진영은 첫째로, 다가오는 G20 서울회의에서 실종(?)된 젠더의제를 어떻게 중요한 의제로 부각시킬 것인가라는 대응모색과 함께, 둘째로는 현재 공식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금융과 개발 분야에서 젠더의제를 통합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정상회의 의제를 협소화하고 왜곡화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여성운동 내에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전개되지 못했던 개발의제와 젠더의제와의 통합을 모색해 왔던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의 ‘젠더 가이드라인’을 검토하면서 여성적 시각을 세우는 작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현재 G20에서 다루어지게 될 개발의제와 젠더의제를 통합적으로 다룰 것을 촉구하는 여성운동 차원의 대응이 요구된다.
한국은 지난 2009년 11월 25일자로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했다. 가입과 동시에 한국정부는 OECD DAC가 지난 1999년에 만든 ‘국제개발협력에서의 성 평등과 여성 역량강화를 위한 지침(DAC Principles for Gender Equality and Women's Development in Development Cooperation)’과 2008년에 만든 ‘성 평등과 여성 역량강화를 위한 지침(DAC Principles for Gender Equality and Women's Development)’을 이행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OECD DAC 회원국 가입과정에서 진행된 ‘Peer Review’에서 한국정부는 ‘젠더’와 ‘환경’ 등과 같은 Cross-cutting 이슈에 대한 한국정부의 낮은 관심에 대한 지적을 받았으며, 이를 시정할 것에 대한 권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20 서울회의의 핵심의제로 한국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개발이슈의 내용 어디에도 젠더와 환경을 Cross-cutting 이슈로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이지 않고 있음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국제협약(북경여성행동강령, MDGs)과 국제기구(UN, OECD), 그리고 국제회의(G20)를 각기 따로따로 대응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통합적 정책수립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빨리 국제사회에서 개발원조 분야의 모범국가로 회자되는 사례들을 살펴보고 따라잡기(catch-up)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G20 의제에 젠더․개발 이슈는 통합되어야 한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는 G20으로 하여금 전 세계적 차원의 빈곤, 노동․일자리, 안보․평화,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기후변화․에너지, 젠더, 식량 등의 위기를 낳은 고삐 풀린 국제금융거래에 대한 규제와 함께 국제금융기관의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논의하겠다며 자임하고 나선 G20은 논의를 책임성 있게 전개시키지 않고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만약 한국정부가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이슈’의 두 가지를 담은 ‘서울 이니셔티브’를 통해 의장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난 6월 17일에 제시한 ‘개발이슈 페이퍼’에 대한 국제시민사회의 비판을 경청하고, 주요한 비판의 논점인 젠더․인권․환경이 Cross-cutting된 내용을 포함한 발전된 ‘개발 이슈 페이퍼’를 다시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할 필요가 있다.
G20 서울회의의 공식문건에서 이미 제시되어 있는 '강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 잡힌 성장(Strong, Sustainable and Balanced Growth)' 이라는 프레임(Framework)을 통한 빈곤감소와 개발격차의 축소를 진정으로 원하다면, 빈곤인구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담은 젠더이슈를 개발이슈에 통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글 조영숙(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