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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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을 결정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이라크 사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라크가 내부적으로 치안부재와 혼란의 상태에 있고, 이러한 이라크를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미국이 곤경에 빠져있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라크와 미국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혼란의 본질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이은 군사점령에 있다. 미국은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의 위협 등을 이유로 한 예방전쟁 독트린 차원에서 침공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가 정당하다고 해도 이라크전쟁은 미국이 선제공격을 한 침략전쟁이라는 본질을 감출 수는 없다.

더군다나 부시 정부가 내세웠던 이유들이 거짓이었음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뒤졌음에도 대량살상무기는 나타나지 않았고,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연두교서에서 주장한 후세인 정권이 아프리카에서 우라늄을 수입하여 핵무기를 만들려고 했다는 설은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했다는 주장은 부시 행정부조차 슬그머니 거두어 들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현재 미군의 이라크 주둔이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군사력의 사용과 위협을 금지하고 있는 유엔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하면서 군사력으로 후세인 정권을 권좌에서 밀어냈을 뿐 아니라 현재 이라크를 군사점령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를 임명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주권을 쥐고 있으며 이라크인에 주권을 이양하라는 이라크와 국제사회의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최근 바그다드를 방문한 파월 국무장관은 성급하게 주권을 이양하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구실로 권력이양 일정표를 제시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와 동시에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통치에 필요하다며 미 연방정부의 교육예산보다 1.6배 이상이나 많은 8백70억 달러를 요청, 미국의 정책이 조속한 권력이양보다는 장기적 군사점령을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 8백70억 달러 중 7백억 달러 이상이 군사작전.안보용이라는 사실이 점령정책의 군사성을 여실히 반증하고 있다.

미국민과 세계인을 거짓말로 호도하고 선제공격으로 이라크를 침략한 후 군대로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것, 이것이 이라크 사태의 본질이다. 현재 미국이 이라크에서 겪고 있는 총체적 어려움은 이러한 본질에서 비롯된다.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정보보고서도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적대감이 보통 이라크인 들에게 깊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계속 늘기만 하는 미군의 인명피해는 광범위한 적대감이라는 토양이 배출하는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토양은 바로 미국의 점령정책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곤경에 빠진 혈맹 미국을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은 파병이 아니다. 이라크에 전투 군사력을 증파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낳을 것이며 더 큰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미국의 점령정책에 동참하는 국가들은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파병은 현재 미국이 빠져 있는 수렁을 더 깊고 넓게 파는 결과를 초래, 미국에도 더 큰 손해를 안길 수 있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이 이러한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철군과 조속한 권력이양을 권고하고, 이라크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복구작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미국을 돕는 길인 것이며, 이라크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국익은 이러한 과정에서 챙겨지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대한민국 헌법도 이러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 조약은 제1조에서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할 것을 규정하고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헌법은 제 5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는가. 한국 헌법은 물론 유엔헌장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행위가 될 파병은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이라크 파병을 해서는 안되는 10가지 이유

1. 이라크 파병은 명분이 없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불법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명분으로 내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테러 지원에 대해 지금까지도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세계를 속여왔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 미국은 한국에 이라크 파병을 요청할 법적 근거가 없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동맹국이 공격을 받거나 공격의 위협에 직면했을 경우 지원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지, 공격과 점령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유엔헌장 등의 국제법 또한 공격과 점령을 금하고 있다.

3. 한국은 파병할 법적 근거가 없다.
현 상태에서 한국의 파병은 미국의 불법적 선제공격과 군사점령을 지원하는 것으로 기존의 모든 국제법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침략행위가 될 것이다. 한국의 헌법과 국제법은 모두 이러한 침략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4. 파병은 미군을 돕지 못한다.
한국의 파병은 미군과 이라크인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정부의 최근 정보보고서도 미군 점령에 대한 일반 이라크인들의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5. 파병은 이라크인을 돕지 못한다.
이라크 내부의 혼란상태, 즉 시아파 내부의 갈등,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갈등, 각 종족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은 외부의 군사력 투입으로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전투병력 파병은 이라크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아랍 민족주의의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

6. 파병은 한반도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제거라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선제공격했고 똑 같은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고려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은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선제공격 독트린을 '몸으로' 추인하는 행위이다.

7.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파병은 도움이 안된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면서 '위험부담'을 함께 질 것을 요청하면서도, 석유와 정부 구성 등 향후 이라크 문제를 좌우할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여전히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8. 지난 4월 공병·의료 부대의 파견에서 배워야 한다.
이들 부대를 보낸 후 확인한 것은 이라크 파병과 한국의 안보문제 사이에는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 결정 직후 미국은 베이징 3자 회담의 긍정적인 측면은 애써 무시하고 "핵무기 보유" 등 북한측의 강경 발언만 공개함으로써 5-6월 위기의 중대한 요인을 제공했다. 베이징 6자회담에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이와 동시에 부시 행정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PSI) 등 북한에 대한 군사적 봉쇄를 강화하고 있다. 2사단 재배치 내지 철수 등의 논의에서도 미국은 철저히 자국 이익중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9.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이라크전 파병과 뒤이은 5월 방미외교가 외평채 환율 안정화 등 경제신인도 회복에 기여했다고 주장했지만, 곧이어 나온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보복관세 부과로 한국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 갈수록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은 대미관계에 있어서 외교안보문제를 지나치게 경제와 연관시킨 정부의 짧고도 조급한 안목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10. 파병을 비롯한 이라크 문제는 미국의 관점이 아닌, 이라크의 비극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한국 역시 미국의 침략전쟁 동조자로 나섰던 만큼, 오늘날 이라크 비극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역할은 이라크인의 고통을 줄이면서 미국을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 이라크인을 위한 민주주의가 이라크에 조속히 정착되는데 일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