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
제 13차 국제총회 참가 후기
(2023/10/6-12, 터키 앙카라)
2023년 10월 6일부터 10월 12일까지 터키에서 제13차 세계여성행진 국제총회 (World March of Women (WMW) International Meeting)이 터키 앙카라에서 열렸습니다. 전세계 70여개 국에서 100여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참여하였고,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는 오경진 사무처장이 한국국별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여성연합은 세계여성행진이 창립한 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국별 대표단으로써 다양한 회의구조에 참여하고 있으며, 2000년대에는 한국 내 액션을 다양한 여성단체들과 함께 조직했습니다.
세계여성행진은 전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저항하며 평등, 자유, 연대, 정의와 평화 가치에 기반하여 빈곤과 여성폭력을 철폐하기 위한 국제여성운동으로써, 1998년 퀘벡에서 제1차 국제총회가 열린 후 올해 25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2000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국제 행진 캠페인에서는 약 2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참여하여 IMF와 세계은행 등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의 악영향을 비판하고, 5백만명의 서명이 담긴 여성들의 요구안을 유엔에 전달하였습니다. 뉴욕에서도 1만명의 여성들이 행진에 참여하였으며 총 40개국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행진이 진행되었습니다.
‘Feminist Strength to Transform the World’ (세계를 변혁하는 페미니스트의 힘) 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국제총회에서는 세계여성행진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며 현재 산적해 있는 여성현안들을 각 대륙별로 짚어보고, 향후 액션의 방향과 결의를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세계여성행진에는 각국별 활동 기획과 운영, 조직에서 자율성을 지니며 총회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총 58개의 국별 대표단 (National Coordinating Bodies)과, 국별 대표단 중 각 대륙별 그룹에서 일정인원이 선출되어 세계여성행진의 주요 활동을 이끄는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가 있습니다.
국제총회에서 5년마다 이루어지는 국제액션(international action)이 통과되면, 각 대륙별 그룹과 각국별 대표단에서 대륙별, 국가별로 다양한 액션을 자율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게 됩니다. 즉, 세계여성행진은 100여개가 넘는 국가별 대표단들과 아프리카, 북/남아메리카, 아시아/오세아니아, 유럽, 중동과 지중해연안 국가 등 대륙별 그룹에서 풀뿌리 지역과 국가, 대륙, 세계를 횡단하며 여성폭력과 빈곤을 일으키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여성운동을 조직하고 수렴하는 집결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한국의 국별 대표단의 일원이자, 아시아/오세아니아 대륙별 그룹의 일원으로써 오경진 사무처장이 참여하였습니다. 국제총회에서 다음 차수의 국제총회 장소를 정하고 그 국가의 대표단이 국제위원회와 긴밀히 논의하며 국제사무국을 꾸려 세계여성행진 활동의 운영과 국제총회 준비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번 제13차 국제총회는 터키 국별대표단들과 국제사무국 일원들이 담당하여 총회를 열정적으로 준비해주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경제침체 등에 따라 빈곤의 심화, 사회운동 공간의 축소, 안티페미니즘 백래시와 정치보수화 등 다양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려 25년간 국제여성운동의 연대체를 존속해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합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여성행진을 많은 재단/기관/단체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Grassroots International, Why Hunger, FIAN International, La Via Campasina (라비아 깜빠씨나), Friends of Earth (지구의 벗) 등이 있습니다. 세계여성행진과 연대하고 있는 기관/단체들은 다른 여성운동 조직체와는 달리 반빈곤,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대항에 조금 더 집중하며 풀뿌리 여성운동과 여성농민운동을 지원하고, 경제정의, 식량주권 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총회에서는 세계여성행진과 페미니스트 운동을 둘러싼 대륙별 국제정세가 논의되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글로벌대기업의 공공재(토지, 식량, 물, 자연자원, 에너지 등) 침탈, 종교적 극단주의와 보수정치의 결합이 여성 권리(특히 성과 재생산권)를 위협하는 현상, 돌봄노동의 인종화(racialization), 군사화와 분쟁 증가, 여성인권옹호자들에 대한 위협(감옥수감, 살해, 실종 등), 진보적 여성운동에 대한 펀딩 감소, 인신매매 등이 여성권리와 여성운동에 대한 위협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중동/북아프리카에서는 자본주의/글로벌 신자유주의에 따른 공공재와 자원의 상업화/민영화가 여성에게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극단주의와 ‘신법(divine law)’ 라는 이름 하에 일어나는 종교근본주의가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정세에 다른 자연재해 (모로코/ 터키 지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이 논의되었습니다. 특히, 국제총회가 열렸던 기간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이 발생하여 총회장에 모인 각국의 활동가들은 이스라엘의 즉각 휴전과 대량학살 규탄 퍼포먼스를 여러 차례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의 활동가들은 ‘아프리카는 끝나지 않은 침탈의 장소로, 모든 국가가 무엇을 취하고 빼앗으려 오는 지역이라고 지적하며,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형태와 방식을 바꾸며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Africa as a place continuing to be invaded”). 또한 여성 인구가 52%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 대표성이 매우 부족한 문제, 아직도 독립을 회복하지 못한 서사하라 문제가 논의되었습니다. 서사하라 출신 활동가들은 아직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식민주의가 진행되는 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함을 절실히 호소하였습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1) 미국-중국 간 군사적 대결의 강화가 환경과 여성인권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실, 2) 기후위기로 태평양 연안국가의 국토 면적 감소와 자연재해 강화, 3) 종교적 극단주의 (불교/ 기독교 / 힌두교 / 이슬람 등)와 보수정치와의 결합, 4) 권위주의 보수 정부와 신자유주의의 결합 (필리핀, 한국, 인도네시아 등), 5) 차별금지법, 성적 권리, LGBT 권리 등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백래시, 6) 식민주의의 잔재 (서뉴기니 섬 - 인도네시아에 의한 차별과 폭력 등이 논의되었습니다. 한편, 성폭력과 여성차별에 대항하고 국가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강한 조직적 여성운동도 같이 논의되었는데 그 중 하나의 사례가 한국의 여성운동입니다.
유럽 지역에서는 냉전 시기 이후 현재 유럽국가들의 군사지출 규모가 가장 높은 현실, 유럽 군사기업들이 터키/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대한 지속적 무기 수출, 계속되는 유럽 내 분쟁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 등)과 함께, 글로벌 이주 관련 이중 기준 정책으로 인해 올해만 2천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현실 등이 논의되었습니다. 특히,터키에서는 지난 여성폭력에 대한 유럽협약 탈퇴 이후 여성의 몸에 대한 극단주의 강화 , LGBTI 운동 범죄화 등의 현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 하에 향후 운동 전략 마련에 대한 깊은 논의가 대륙별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제13차 국제총회 선언문이 완성되었습니다. 여성의 몸과 우리 영역(territories)에 대한 침탈 등으로 표출되는 글로벌한 구조적 위기, 기후위기, 환경위기 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앞으로 전쟁과 자본주의에 대항하며 국민주권과 좋은 삶을 위해 계속 행진할 것을 담고 있습니다(We will continue to march against war and capitalism and for popular sovereignty and good living).
제13차 총회 선언문 바로가기: https://marchemondiale.org/index.php/2023/10/27/declaration-of-the-13th-international-meeting-of-the-wmw-bread-and-roses/
또한 이번 총회에서는 세계여성행진 조직 규정의 수정과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의 대륙별 참여자 수 수정, 그리고 대륙별 참여자의 선거가 있었습니다. 국제위원회의 아시아/오세아니아 대표단으로는 Hadinah Soka (Indonesia), Dayalaxmi Shrestha (Nepal), Oriane Cingone Marie-Helene Trolue (New Caledonia) 가 선출되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에서 여성운동의 위기론이 논의되고 있는 현재, 여성의 대한 억압과 폭력을 양산하는 글로벌 구조적 부정의를 체계적으로 짚고, 지역과 국가, 대륙, 세계를 횡단하는 연대의 중요성을 느낀 자리였습니다. 여성연합은 이번 국제총회에서 통과된 결의문과 국제행동계획에 따라 대륙별 액션을 논의하는 자리에 계속 참여할 예정입니다.
참고링크
- 세계여성행진 공식 웹사이트: https://marchemondiale.org/
- 제13차 총회 선언문 : https://marchemondiale.org/index.php/2023/10/27/declaration-of-the-13th-international-meeting-of-the-wmw-bread-and-roses/
- CAIPRE (페미니스트 운동 기록, WMW) https://capiremov.org/en/analysis/feminist-economy-as-a-political-tool-for-the-world-march-of-wom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