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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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백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남과 북의 출입사무소(CIQ)를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자유로에서 개성공단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고, 개성에서 평양까지를 잇는 평평한 도로를 달리는 데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초로 육로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방문하는 내가 느낀 최초의 감회는 이렇게 가까운 실제 거리와 우리 마음 속 거리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당황스러움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거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방치하며 살아왔는가'하는 자책의 심정도 피할 길이 없었다. 어렵기는 하지만 갈 수 없는 길은 아니었다는 자각이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 거리에는 환영의 물결이 넘쳤다. 차가 진행하는 동안 붉은 꽃술을 흔들며 환호하는 인파는 거의 20분 정도 이어졌고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평양 시민의 호의와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1차 정상회담이 열렸던 7년 전의 평양에 비하면 도시는 훨씬 활기가 넘쳤고 밝아졌다. 곳곳의 건물이나 간판들이 페인트로 단장돼 있어서 평양은 회색도시를 탈출하고 있었다.

 

또한 특이했던 점은 밤이 되자 거리의 나무에 성탄절을 연상케하는 화려한 네온 장식등이 켜진 일이다. 이에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동승했던 안내원은 정상회담에 참석한 손님들에 대한 호의를 보이기 위한 장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력사정도 과거보다는 나아 보여서 거리에서 불 켜진 집들이 늘어난 것 같았다.

 

이튿날인 3일 방문한 만수대 창작사도 2000년에 비해 많은 개보수작업을 한 듯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을 줬다. 8월에 수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 거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잘 정리돼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느낀 점은 북측이 정치 문제와 관련해 매우 절제된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북은 아리랑 공연에서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찬양이 집약돼 있는 서장 부분을 생략해 공연했고 마지막 부분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지도 하에 단결하자는 내용이 카드 섹션에서 잠시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 내용에 크게 무리가 없었다.

 

2000년에 비하면 거리에서 '선군정치'를 강조하는 구호물도 적게 드러나 보였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려는 북의 의중이 담겨있는 대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계는 이번 방북기간에 두 번의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는 2일 오후에 열린 권양숙 여사와 북측 여성과의 간담회이고, 다른 하나는 3일 오전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여성분과 간담회였다.

 

첫 날 모임에는 박순희 조선민주여성동맹 위원장, 류미영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 위원장, 홍선옥 조선녀성협회 회장을 위시해 총 11명의 여성이 참여했다. 특이한 점은 이 모임에 김일성종합대학 여학생 강선미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남측의 여대생에게 전할 말이 없느냐는 물음에 '우리 민족의 평화실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내용을 부탁했다. 이 모임에서는 각기 여성의 상황과 서로의 활동을 소개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여성분과 간담회에서는 앞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여성분과가 늘 만나 왔던 북측 여성들이 참여했다. 김경옥 조선민주여성동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서옥선 조선녀성협회 상무위원, 정명순 중앙방송위 국장, 김인옥 6.15북측위원회 여성분과 위원회 위원, 박영희 민족화해협의회 여성부장이 참석하였다.

 

이 모임에서 먼저 남측 여성분과 단장인 김화중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기조발제를 통해 두 가지 의제를 제기했다. 먼저 영유아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미 통일부가 지원하고 있는 영유아 사업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공동의 사업을 모색하자는 제안을 했다. 다음으로 남북 여성교류나 남북 여성모임 정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실 6.15 공동 선언 이후 매년 6.15 공동 행사나 광복절 행사를 남북이 함께 개최하면서 그 틀 안에서 여성도 상봉모임을 개최해왔다. 또한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거의 1년여에 한 번씩 여성 행사를 마련해왔다. 2002년의 제1차 남북여성통일대회(금강산), 2005년의 제2차 남북여성통일대회(평양), 2006년의 여성대표자모임(평양) 등이 그 것이다.

 

그러나 간헐적인 여성교류, 늘 상황에 따라 조정될 수 밖에 없는 여성 모임으로는 일관되고 지속적인 사업을 집행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여성계는 지속적으로 모임의 정례화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도 이런 제안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서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영유아 사업의 경우에도 통일부가 연간 약 130억의 예산을 책정해 공동 부담의 매칭 펀드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아직 여성계는 이에 접근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제안했으나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남측 여성대표단 역시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기한 것은 아니어서 앞으로 이 사안은 실무협의를 통해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무게중심은 두 정상 간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합의에 있는 만큼 각 분과별 간담회는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기 보다는 서로 의견교환에 그치고 말았다. 보다 구체적인 실무논의를 위한 준비는 양측 모두 준비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영유아 사업에 대한 논의나 여성교류의 정례화가 운위된 것 자체가 여성교류의 또 다른 출발이 이뤄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회담의 성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을 한 단계 진전시킨다는 의미에서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 모색이나 종전 선언 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점 외에도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활성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부총리 차원의 경제협력공동위원회가 실현되고 그간 남측 기업인의 애로사항인 통신, 통행, 통관 문제가 해결된다면 남북경협도 활성화될 것이고 이는 여성의 경제 활동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 1만3천명 북한 노동자의 83.6%가 여성인데 2008년 상반기에는 북한 노동자가 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남한의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도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다. 인내심과 함께 지속적인 대화와 상호 교류를 통해서 남북 여성 간의 협력과 이해가 깊어지고, 이를 통해 상생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연합뉴스에서 전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