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평등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여성가족부 확대·강화를 제안해왔습니다. 현장 활동가, 정책 전문가, 연구자들의 입장을 담은 언론기고 및 좌담참여를 통해 성평등 정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성평등 부처로서의 여성가족부가 어떻게 강화·확장되어야 하는지를 제안하였습니다.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여성계의 목소리에 많은 관심과 공유 부탁드립니다. |
[기획연재] 빛의 혁명, 그 이후 : 여성가족부 확대와 국가 성평등정책의 전환 | 5화
지역 성평등정책, 여성단체의 역량이 성패 좌우한다
성평등정책 환경 열악, 민·관 협치와 전문성 강화 필요
박혜경 전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여성학 박사
이 글은 성평등정책의 현장으로서 지역과 지방을 모두 언급한다. 중앙의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와 광역시·도 등 광역지방자치단체(이하 광역지자체) 및 시·군·구 등 기초지자체의 성평등정책 주무부서의 역할이 다르므로, 중앙과 구분하여 지역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광역지자체들 간에도 수도권과 그 외 지방은 사정이 다르다. 이에 사안에 따라 '지역'이나 '지방'이라고 쓴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뒤집어 보면 수도권 외 지방에 절반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고 재정여건도 좋고, 사회 인프라가 발전한 수도권과 그 외 지방의 정책환경은 매우 다르다. 국가정책이 지역에서는 어떻게 전달되는지, 지방의 사정은 어떠한지 잘 살피지 않고 성평등정책의 실질적인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성단체의 역량과 민·관 협치가 성평등정책의 성패 좌우
여가부 폐지 주장 중 '여성단체들에 퍼주기'가 있었다.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다. 국가정책에서 민과 관의 거버넌스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성평등정책은 특히 더 그러하다.
여성가족부 등 성평등정책부서가 하는 많은 일들은 여가부가 생기기 전에 여성단체들이 시작하고 해 온 일들이다. 여가부가 만들어지고 나서도 정부조직의 인력규모와 전문성의 한계 때문에 모든 일을 다 행정기관이 할 수가 없다. 가정폭력방지, 여성 취업지원 등 많은 대민사업들이 주로 여성단체들에 위탁 주어 시행된다. 해당 사업의 사업비와 인건비만 주면 되기 때문에 예산도 절감되고 고용부담도 적다. 사업 위탁시에 사무실 임대료는 재정여건이 좋은 지자체의 경우 일부 지원해 주기도 한다. 대개 여성단체 사무실을 그대로 쓴다. 지방의 여성단체 사무공간은 대체로 매우 열악하다. 중앙정부의 예산은 정액 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지자체와 매칭펀드(지자체 예산지원액에 비례하여 중앙정부의 예산을 주는 방식) 방식으로 지급된다. 빈익빈 부익부다. 서울이나 경기도처럼 재정여건이 좋은 광역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더 좋은 여건을 갖추기도 한다.
여가부 성평등문화 확산 사업은 여성단체들의 성평등 의식화의 덕을 많이 본다. 민과 관은 성평등교육을 위해 협력하는 일도 많다. 대략 1970년대부터 여성단체들은 성평등을 위한 대중교육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는데 여성학의 제도화도 보탬이 되었다. 대중의 성평등의식화를 위한 캠페인, 교육, 문화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여성단체들은 한국사회에 성평등문화를 확산하고 성평등교육을 이끌어온 주요 공로자들이다.
지금 여가부가 하고 있는 많은 사업들은 여성단체들이 길러낸 인재 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들은 성폭력상담원으로, 성별영향평가나 여성친화도시사업(이하 여친도시사업) 등 정책의 컨설턴트와 모니터 요원으로 일한다. 상담원은 월급을 받지만, 컨설턴트는 약간의 수고비만 받고, 여친도시 활동가는 무임이다. 이들이 성평등 사업을 떠받치는 기초인력인 셈이다. 지자체들도 인력배양을 위한 교육을 하지만, 여성단체들의 활동과 교육 없이 여가부의 힘만으로 지금처럼 전국에 성평등사업과 문화를 확산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평등 문화확산을 위한 이러저러한 공모사업을 통해 여성단체들에 사업비가 지원되기도 한다. 광역지자체가 프로그램 당 지원하는 교육사업비는 대략 몇 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경우는 드물다) 정도다. 지방에는 활동력 있는 여성단체가 적어서 지자체가 참여단체를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 외에 연간 3회 정도의 대규모 여성대회에 행사비가 지원된다. 모두 관도 참여하는 큰 행사다. 단체들의 역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공무원들이 행사 실무에 투입되기도 한다.
정부가 여성단체에 주는 예산은 이처럼 대부분 여가부나 지자체의 위탁사업이나 협력사업을 위해 주는 것이다. 여성단체들이 이런 위탁사업을 받지 않으면 법정사업을 시행하지 못해 행정기관은 매우 곤란해진다. 지방에는 성평등 연구자 및 교수가 매우 적고, 대학에 관련 연구소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인재 풀의 핵심을 이룬다. 성평등정책 관련 제안이나 자문, 심의회의에도 주로 이들이 참여한다. 지역에 활발한 여성단체들이 있어야 성평등정책 및 사업도 가능하고, 여성단체들의 역량이 지역 성평등정책과 사업의 성패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여성단체는 성평등정책의 중요한 파트너이고 지방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하다.
조직의 위상강화와 정책 컨설팅 전문성 체계강화
전반적으로 여가부 조직의 위상제고와 기능확대가 필요하고, 내부 조직과 사업들 간에 성평등가치와 전략에 대한 집중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적은 기존 개별 사업들의 예산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담당공무원, 산하기관이나 수탁기관의 직원들도 성평등정책의 내부고객이다. 지방의 조직들은 중앙에서 예산을 받아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평가한다. 재정여건이 어려운 지자체일수록 더 하다. 이 내부고객들이 소속감과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도록 예산이 비현실적으로 적은 사업들의 예산을 올려야 한다.
다른 국가정책들도 성평등 국정목표와 방향을 같이 하도록 컨설팅과 모니터링을 해 주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를 위한 기존의 성별영향평가센터 조직의 위상을 높히고 전문성 제고를 위한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성별영향평가란 정책이 성평등에 미칠 영향을 공무원이 미리 평가하는 것으로, 정책을 성평등에 부합하도록 수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절차이다.
2012년부터 여가부는 각광역지자체에 성별영향평가센터를 하나씩 지정하고 사업비와 인건비를 지원하면서 공무원의 성별영향평가서 작성작업에 컨설팅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대부분 광역지자체도 센터에 약간의 사업비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별로 이들 센터들은 광역지자체의 성평등정책연구 및 교육을 하는 기관에 위탁사업조직처럼 속해 있어서 센터 지정이 종료되면 해체되는 조직이다. 2인 가량의 전담연구원이 준규직의 지위에서 센터를 운영하고, 외부의 성별영향평가 컨설턴트들이 컨설팅 업무에 참여하고 건당 약간의 수고비를 받는다. 실무자, 컨설턴트에 이르기까지의 지위 불안정은 공무원들이 이들의 컨설팅을 잘 따르지 않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별영향평가센터가 이렇게 운영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컨설팅의 전문성을 위한 체계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여가부는 지표에 따른 평가서 작성지원보다 심도 있는 젠더분석이 중심이 되도록 변화를 격려해 왔지만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과 인력의 위상을 높혀야 한다. 젠더분석을 위해서는 박사인력이 채용될 수 있도록 센터를 정규조직으로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일에는 광역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더불어 정책 컨설팅도 대면 컨설팅 등으로 강화하고, 이를 위해 컨설턴트단의 처우를 개선하고 역량이 충분한 소수 인원만으로 운영한다.
또한 기초지자체의 중요한 성평등사업인 여친도시조성사업 컨설턴트의 역량을 강화하고 배양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은 중앙에서 박사연구자들에게 컨설턴트 지위를 줄 뿐 교육이나 수퍼비전 체계는 없다. 성평등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성평등전략에 관해 충분한 연구경험과 지식을 갖춘 연구자를 찾는 것이 어렵다. 성평등에 적절하지 않은 정책컨설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교육과 재교육, 상호 수퍼비전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성도, 지방도 성평등문화 확산에서 소외되지 않게
여가부의 명칭이 성평등가족부로 바뀐다고 한다. 바래왔던 일이다. 여가부의 명칭만 아니라 지자체의 행정조직 및 기관의 이름도 성평등이라는 정책목적이 명시되도록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가부 정책은 언제나 젠더 평등을 목적으로 해 왔지만, 여성발전기본법 체제 하에서 젠더 평등정책은 여성대상 정책으로 좁게 이해되어 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간과되었다. 양성평등기본법 체제 하에서는 여성이 겪고 있는 차별을 간과한 채 남녀간에 혜택을 절반씩 나누는 전략으로 오해되었다. 이런 오해가 성평등에 대한 반발 기류에 일조하였으리라 본다.
이제 남성들도 성평등 문화확산의 단지 대상이 아니라 주역으로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가능하다고 본다. 성평등은 여성만의 의식화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대남의 보수화를 걱정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보수적인 목소리가 전체 이대남을 대표하는 것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차별적인 젠더구조가 남성의 삶도 어떻게 왜곡시켜 왔는지를 설명하는 남성 성평등강사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등 성평등 문화확산을 위한 노력에 남성이 기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성평등전략으로 인해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역차별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으로 뛰어드는 것은 낭비라 본다. 성평등 전략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현장에서 성평등 가치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는 일은 없는지를 살필 필요는 있다고 본다.
더불어 여가부와 산하기관들도 세종시나, 국토의 중앙인 충북 등지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싶다. 전국의 공무원들, 위탁사업기관 종사자들,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두 시간 열리는 여가부 회의나 교육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를 다 쓰면서 이동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고 불합리다. 지방의 여건과 의견이 정책에 더 잘 반영되고, 지방에 성평등문화를 확산시키는 사업을 위해 전국의 활동가와 인재들이 더 자주 연결될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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