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01.12.27 조회 수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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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결혼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였다고 한다.

"처녀 때는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이 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내 돈이라는 게 없는 거예요. 돈은 쥐고 있는데 그게 내 맘대로 쓰고 싶은데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잖아요. 직장생활할 때는 월급날 기분도 내고, 딸노릇 언니노릇도 했는데...............

그래서 내가 결심을 했어요. 돈을 모으자.
목욕도 가능하면 집에서 하고 시장에 갔다가도 눈에 띄는 머리핀 하나, 슬리퍼 한 켤레, 이런 것들 다 못 본 체 돌아서고 해서 다달이 몇만원씩 모았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모으는 액수가 조금씩 커지더라구요. 내 간이 커졌나 몰라두."

그리하여 몇 년 사이에 그 이는 몇백만원을 모으게 되었다고 한다.

"통장에 내 돈이 몇백만원 있으니까 자다가두 웃음이 나오는 거 있죠. 한 번은 자다가 문득 '내가 지금 얼마가 있다' 생각하니까 웃음이 터져나오는데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옆에서 자던 남편까지 깼어요.

'당신 왜 그래?' 그러길래 '좋아서'하고는 계속 웃으니까 남편은 자기가 좋다는 얘기로 알아듣고는 자기도 좋다고 웃는 거 있죠?"

그 후 그는 사회적 열등감에서도 벗어났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아줌마라고 무시할 때 속으로 '나 얼마 있다, 흥!'하고 돌아설 때의 그 상쾌함, 통쾌함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현명한 친정어머니 덕에 결혼할 때부터 '내 돈'을 쥐게 된 여자도 있다.

"혼수를 장만하는데 엄마가 돈을 내 앞에 딱 내놓으시더니 '이 중에 절반만 물건으로 해가고 남은 절반은 돈으로 가져가라'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솔직히 이상하고 섭섭했어요. 많이 해가야 시집이나 남편에게 당당할 수 있다고 그때는 철없는 마음에 그리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살아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돈이 점점 커지는 거예요. 요새는 매달 은행에 가서 그 돈에 이자 붙은 거 보는 재미로 살아요."

언제부터인가 남자 측은 집을 마련하고 여자는 그 집을 채울 소모품들을 마련하는 게 우리의 결혼문화로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가전제품 회사들의 상술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집을 마련한 남자들은 손해볼 게 없다.

셋집의 경우는 셋돈이 알토란 같이 남아있고 집을 샀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값이 오를 수도 있다. 여기에 여자들의 알뜰함이 보태져서 집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여자들이 혼수라는 이름으로 마련해 간 물건들은 사는 순간부터 중고품이 되고 아이가 태어나 자라다 보면 장롱이나 화장대가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이다.

최신형으로 해 간 가정제품은 서너달이 멀다하고 바꿔대는 기업의 상술에 금방 구식이 되어버리고 만다. 똑같은 돈을 들이건만 남자들은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결실을 거두는' 농사식이라면 여자들은 '한 번 잡아먹으면 그만인' 사냥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혼수를 장만하다보면 비용이 야금야금 올라가게 마련이다. 일생에 한번이라는 말과 기분에 현혹되어 티브이 인치도 올라가고 냉장고 리터수도 올라가는 것이다. 여기에 상술과 주변과의 비교가 더해지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혼수일 지도 모른다. 혼수상태에서 장만해 가는 물건이니까.

여성 여러분! 절대 혼수해 가지 맙시다.
어머니 여러분! 절대 혼수해 주지 맙시다.
돈으로, 자기 이름의 돈으로, 내 딸의 평생 동지가 될 종자돈으로 줍시다.

친정어머니 왔다 가실 때 차비 넉넉히 못드렸다고 울고 불고하는 상담전화가 있었다.
"시어머니 왔다 가실 때 오만원 드리는 건 남편한테 떳떳한데 친정어머니한테 오만원 드리는 건 내 맘이 달라요. 그래서 저번에 삼만원 드렸는데 거기서 우리 애한테 저 모르게 만원을 주고 가셨대요. 딸 소용없다더니 그 말이 맞나봐요............."

그 심정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오만원 드리자고 맘먹으면 못 드릴 것도 없는 터이기에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정이나 마음에 걸리면 온라인 송금을 해드리라'고 도움말을 주었다. '그런 길이 있는 걸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하며 환하게 전화를 끊었는데 얼마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친정엄마가 아버지 통장번호밖에 없다고, 거기 넣으면 어머니 맘대로 못 꺼낸다고 나중에 다시 오면 그 때 달라고 하셔요. 점점 바빠져서 오시기 힘들텐데 어떻게 하죠?"

친정어머니께 주민등록증과 도장만 가지고 가시면 근처 아무데서도 통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더니 '우리 엄마는 시골사람이라 혼자서 그런 일 못하신다'고 단언을 하는 게 아닌가.

그게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만큼 우리네 여성들은 오랫동안 경제력에 대한 자립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증거이리라.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는 60대 여성이 있었다. 어느날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이 내려왔는데 그 손목을 붙들고 무조건 데려가는 곳이 있었다. 요즘 시골동네까지 들어선 이른바 소형 오피스텔이었다. 딸은 내심 '엄마가 나 시집가서 살라고 마련한 집'이 아닌가 했다는데 그게 아니었다.

"좋지? 그지? 여기서 이제 내 친구들하고 만나서 실컷 놀고, 먹고 싶은 것도 해먹고 그럴려구 장만했다."

말하자면 늘그막에 '자기만의 방'을 장만한 것이었다. 그래도 여성의식이 있는 딸인지라 어머니께 독립 축하 선물을 사드리겠다고 했단다. 그 어머니는 사양은커녕 '봐 둔 물건이 있으니 당장 가자'고 하더니 '유치찬란하기 그지없는' 스탠드를 골랐다고 한다. 젋어서부터 과수원 일에 치여 분위기 한 번 타보지 못한 한을 그렇게 풀었던 것이다.

딸이 물었단다. 돈을 어떻게 마련해서 이 집을 장만하셨냐고.
"낙과 떨어진 것 모아서 팔았다. 정품이야 느이 아버지가 조합에 넘기고 처리하니까 나랑 무관하지만 낙과야 누가 신경쓰나. 광주리 아줌마들 오면 거저 주워가라구 하지. 그거 모아서 다달이 부금 붓던 거 대출 받아서 이거 샀다. 다달이 조금씩 더 내야 되는데 낙과 모으면 또 될거야."

전에는 바람불면 과일 떨어질까봐 걱정이었는데 이제는 은근히 바람이 좀 불어야 하는데 싶기도 하다는 말에 배꼽을 잡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여자들은 경제적 무능력자요, 피부양자였다. 그래서 남편돈과 자식돈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은 가정경제활동자요, 재생산노동자이다. 여성이 없는 가정은 유지되지 못한다. 이제 당당하게 내 돈을 찾자, 내 돈을 가지자.

"아줌마, 지금 돈 얼마 있수?"
대답해 보라. 이것이 당신의 현주소이다. 여기서부터 출발이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