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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이 두 개 있다.
새장에는 새가 한 마리씩 들어있다.
혼자 있는 새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배란이 늦어진다.

새 두 마리를 한 새장에 모아놓는다.
그랬더니 두 마리 모두 성장이 촉진되어 배란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다시 새를 처음처럼 혼자 있게 만든다. 그리고 새장에 거울을 달아준다.
새들은 혼자 거울을 바라보며 지내는데 혼자 있을 때보다는 성장이 잘 된다.

혼자는 크지 못한다.

이것이 언어학자들이 말하는 거울단계(mirror stage)라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배우는가를 연구하다가 무릇 생명체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극을 받고 그 자극으로 인해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밝혀내게 되었다.

새에게 거울을 달아주었을 때 그 새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른 새라고 생각하고 그 새하고 상호작용을 한 결과 자신의 성장에 자극을 받게 된 것이다.

혼자서는 성장하지 못한다. 자기 속에 갇혀서는 발전이 없다. 최소한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라도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 것도 이런 흐름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여자들이 결혼하고 집안에서 살림살이와 아이들 키우기에 갇혀있다 보면 어느새 '아줌마'라는 이름표가 달린다. 그 말속에는 표현은 안해도 그 앞에 '무식하고 뻔뻔한'이라는 수식어가 은근히 배어있다. 억울해도 달리 항의할 방법이 없다.

아이들은 '엄마는 답답해', 남편은 '당신이 뭘 알아'라고 자존심을 긁는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데!!', '누구 덕에 느이들이, 당신이 오늘날 이만큼 살고 있는데!!' 소리치고 싶지만 소리친들 무슨 소용인가. 세월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내 잔등 위에는 아줌마라는 비늘이 덕지덕지 달려있는데. 분노, 좌절, 자기비애, 자포자기........

당신의 과거를 돌아 보라. 나는 얼마나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모임을 즐겼으며 주말과 휴일에는 얼마나 바빴나. 늘 새로운 것에 끌렸고 호기심과 모험심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사소한 선물에도 감격하고 희노애락의 감정이 모세혈관까지 살아있지 않았던가.

이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 돌아갈 수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지금껏 살림과 육아에 눌려 있던 날개를 활짝 펼 때 그 귀함을 알기에 창공의 아름다움을 훨씬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떼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라. 함께 날아가는 그 모습이 얼마나 장하고 아름다운가. 그 장엄한 무리에 내가 들어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자긍심과 자존심을 안겨주는지.

빨래터의 해방춤

무용가 남정호 선생의 '빨래터'라는 공연이 있다. 달밤에 아낙네들이 조신하게 빨래그릇을 이고 동네 개울가에 나온다. 아무 말이 없다. 열심히 빨래를 한다. 힘든 줄도 모르고 빨래를 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깊은 달밤에 물소리와 빨래소리만 들릴 뿐.

갑자기 한 여자가 앞에 앉은 여자에게 물방울을 튕긴다. 장난을 거는 것이다. 똑같은 물 튕김으로 장난에 응수한다. 저쪽에서 다시 물방울이 날아온다. 한 순간에 여자들이 서로 물을 튕겨대기 시작한다.

침묵이 깨진다. 옷이 홀랑 젖도록 여자들은 물장난에 빠진다. 급기야 여자들은 몸을 휘감는 짐스러운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물 속에 뛰어든다. 까르르 까르르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물소리를 압도한다. 개울가는 힘들게 옷만 빨고 가던 빨래터였는데 이 순간 여자들의 자유로운 놀이터가 되었다.

고달픈 노동의 시간이 즐거운 놀이의 시간으로,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제 일에만 몰두하던 여자들이, 마음을 열고 몸을 열고 물 속에서 깔깔대며 하나되는 해방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개울이 필요하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매일 반복되는 단순 노동에 지친 우리에게 놀이터가 되어줄 개울이 있어야 한다. 가족에게 퍼주기만 하면서 메말라 가는 나에게 촉촉하게 물기를 던져줄 수 있는 친구들이 모이는 개울이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상류, 깨끗하고 맑은 일급수의 개울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이면 멋진 친구들이, 나보다 나은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개울이면 얼마나 좋을까.

더 이상 계집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는 물'이 있어야 한다. 함께 어울리며 나에게 자극이 되어주고 나의 성장을 촉진해 줄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들어앉을 수 있는 새장이 있어야 한다. 개울에서 시작하여 강으로 바다로 더 넓은 물로 나가야 한다.

새장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나뭇가지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모여 사는 숲 속으로 계속 날아가야 한다. 거기서 날개 크고 목소리 아름답고 함께 어울려 노래할 줄 아는 새들을 만나 자기도 닮아가야 한다.

여자들이 집밖의 활동을 하는 것을 놓고 세상은 아직도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러나 제 삶에 만족이 없는 사람은 가족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젖먹이 아이들을 보라. 하루종일 밖에 한 번도 안 나간 날은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대문 밖 골목길에 나가기만 해도 곯아 떨어지는 아이를 보면 역시 생명체에게는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필수적이다.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집사람이 아니다. 집에 계신 계집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노는 물이 필요하고 함께 지낼 친구가 필요한 사회적 존재이다. 하늘이 내려준 인간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를 지키려는 여성을 막을 자가 누구인가. 이 앞에는 어떤 이유도 어떤 유보조건도 설 자리가 없다.

민우회에서는 가정주부가 아닌 사회주부를 말한다. 좁은 새장같은 집에 혼자 사는 가정주부가 아니라 넓은 물에서 친구들과 일하며 노는 사회주부가 되자고 한다. 내 새끼 돌보기, 내 남편걱정에서 벗어나 다음세대 키워내기, 남녀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걸림돌들을 치우는 일로 건강하게 성장하자고 하는 것이다.

아줌마의 힘이 세상을 향해 뻗어나올 때 세상은 비로소 온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