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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권운동을 이야기하면 남성들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여권운동? 좋지. 한번 잘해 봐’라는 코웃음이었다. 이면에는‘어디 너희들끼리 잘 해보아라, 남자들이 도와주지 않고 잘 되는 일이 있는지 두고 보자’라는 숨은 뜻이 녹아 있다.
여성단체에서도 여권 운동을 '일부 의식있는 여성들의 운동이다’라고 인식할 정도로 여성일변도다. 그래서 남성을 마치 적으로 삼아 타도의 대상으로 보아왔고 남성들은 마지못해 또는 '세상을 잘못 만나서’순응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언제든지 반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성숙한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권운동의 전략도 새로운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여성들만의 여권운동은 한계에 왔고, 무엇보다 앞으로는 남성들이 공감하고 협조하지 않을 때 뜻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나도 신설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행정자치부 여성정책담당관실로 발령 받았을 때는 얼마간은 상대적 열등감으로 대외활동이 위축되고,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분들에게 명함을 건네거나 부서변경 사실을 알리기 꺼려졌다.
혹시 능력이 없어 여성부서로 밀려 배치되었다는 이미지를 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업무에 몰입하면서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오히려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이해폭이 더욱 넓어졌다.
또 부모세대나 나의 윗세대 여성들이 겪은 여러 가지 차별을 알게 되면서 그동안 자기자신이 얼마나 가부장제의 틀에서 살아왔는지 그렇다면 딸이 성장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까라는 대목에 이르고 마음도 급해진다.
남성들이 여성부서나 여권운동에 참여함으로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과격하고 이상적인 여권 논란에 대해서는 남성의 시각을 반영하여 조화점을 찾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여성단체 행사에 참석해보면 참석인사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참석한 몇 안되는 남성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고, 당황하게 한다. 행사가 끝난 후 느끼는 것은 분명 여권운동은 여성운동가만 외치는 행사가 아닐 진데 왜 여성들은 남성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여권관련행사에는 가급적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수로 초청하여 양성이 함께 고민하고 지혜를 모으는 공동회의의 장을 열면 어떨까?
여권운동은 남성과 함께 해야 되는 인류문제이며, 우리나라의 특이한 아들선호사상 같은 관습은 인간생태계를 위협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자와 남자라는 이분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앞으로 남성들을 끌어당기는 여성운동, 나아가 남성들이 여권운동단체를 만들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꿨음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 20일에 있었던 한국여성개발원 제18주년 기념식에 대거 남성정치인 등이 참가한 것과 최근 여성부의 성희롱강사 모집에 남성 30%을 할당하겠다는 발표는 성을 대립시키지 않는 긍정적인 변화로 본다.
캐나다의 경우는 1989년 여성혐오주의자인 남성이 쏜 총에 의해 여성 14명이 피살된 이후 폭력에 반대한다는 심벌로 남성들이 '하얀리본운동'을 펼쳐 여권운동에 힘을 보탠 일 또한 일은 좋은 예이다.
또 지난해 6월 뉴욕에서 개막된 유엔여성특별총회의 주요 이슈중의 하나로‘남성의 역할’이 떠올랐고, 최근 유엔여성개발기금(UNIFEM) 뇔린 헤이저 사무총장도 '남성들의 동의의 문제'도 설득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은 여권운동의 새로운 방향모색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