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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열 받어!"
"아, 머리에 스팀 나!"
"어우~, 골 땡겨!"
요즘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들이다. 그런데 머리가 열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
그에 관한 두 가지 케이스를 소개하겠다. 읽다 보면 문제의 정답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올해 28세의 젊은 주부 K씨. 그녀가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어디가 크게 아프거나 병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손발이 저리고 아파요."
단순히 그렇게 얘기하는 그녀를 진찰해보니 몸에 화기(火氣), 즉 불필요한 열이 지나치게 많았다.
"신경 쓰는 일이 많으신가봐요."
내가 이렇게 한마디 했더니,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줄줄 흘린다. 자신의 병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내가 콕 짚어냈다는 의미였으리라.
"저요...시어머니 때문에 하루하루 미칠 것만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결혼했을 때 그녀는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 3년을 살았다. 남편이 장남이었지만 지방에서 근무해야 하는 처지라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시댁에 인사를 갔는데, 가끔씩 보는 시어머니가 그렇게 잘 해 줄 수가 없더란다. 정말 '고부 갈등이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1년 전 남편이 다시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 화단이 시작됐다.
"얘, 우리 옆으로 이사와서 살아라."
시어머니 말씀에 그 동안 든 정도 있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이사를 갔단다. 그랬는데, 시어머니가 아침 저녁으로 들락거리면서 집안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얘, 이 음식은 아범이 싫어한다. 치워라."
"애, 이건 국물이 좀 짜지 않니? 이렇게 짜게 먹어서 건강에 좋을 것 하나 없는데."
"아직 청소 안 했니?"
듣기 좋은 소리도 한 두 번이지 이런 간섭은 그녀의 마음에 자꾸만 상처를 안겨주었다. 언제 시어머니가 들이닥칠지 항상 조마조마해 하다 급기야 신경증에 걸려버린 것이었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기를 1년 여. 그 동안 몸무게가 5킬로나 빠져버릴 정도였다.
"저희 어머니는요, 저희집 에 젓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아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펑펑 쏟는 그녀. 그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침을 놓는 것도 아니요, 약을 달여 먹이는 것도 아니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일이었다. 내가 그 시어머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아들, 며느리 집에 신경 좀 끊으세요'라고 말할텐데, 그럴 수도 없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서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음은 찌들어 있는데 몸은 건강하다거나, 마음은 맑고 밝은데 몸이 건강하지 않은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방에서는 마음(心)이 심장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녀처럼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 자꾸 한가지 일에 과도한 신경을 쓰다보면 심장에 무리가 가게 된다. 그 이유는 열 즉, 화기(火氣)가 심장에 전해지기 때문.
신경을 쓰는데 왜 열이 생길까?
그건 기계를 오래 돌렸을 때 열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몸의 상체에서는 정교한 정신 작업을 위해 뇌, 심장, 폐, 간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심장은 우리 몸의 모터와 같다. 뇌의 정신 작용을 위해 심장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모터인 셈이다. 모터가 움직이지 않으면 뇌의 움직임은 말짱 헛 것이다.
모터를 너무 과도하게 돌리면 열이 나는 게 당연하다. 며칠씩 밤을 새서 일을 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머리에서 미열(微熱)이 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맞닥뜨렸을 때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기계가 과열되면 딱 멈춰 버리듯, 사람도 그 열기를 식히지 않고 계속 모터를 돌리면 생명이 정지된다. 평소 고혈압이 있는 사람이 갑자기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윽'하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이해가 빠를 것이다.
어느 정도 몸에 열이 올랐을 때는 쉬어주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계속 무리를 하면 면역력도 떨어져서 쉽게 병이 든다.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이야기, 과로하다 신장염에 걸렸다는 이야기. 모두 심장이 심하게 열을 받아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런 일들을 나는 '홧병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말 그대로 심장에 화기가 쌓여서 벌어지는 모든 증상을 가리킨다. 이런 홧병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평소 가슴이 두근거리고 깜짝깜짝 잘 놀란다. 만성피로와 식욕부진, 불안과 초조, 건망증, 불면증, 두통, 현기증 등이 홧병 증후군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이런 사람들은 가슴 사이를 눌러보면 근육이 뭉친 것처럼 굳어 있고, 아랫배도 단단해져 있다. 나는 혹시 홧병증후군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면 가슴 사이 오목한 부분을 눌러보라. 심한 통증을 느낀다면 이미 가슴에 화기가 뭉쳐있다는 증거다.
그런 상태로 계속 놔두면 어혈과 우울증 때문에 몸이 금방 늙어버린다.
그런데도 평소에 사소한 일을 가지고 '열 받는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열이 받아 심장에 부담이 간 상태에서 말까지 그렇게 하면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장을 과열시키는 행동이다. 설사 열이 받는 일이 있더라도, 그걸 서늘하게 식힐 수 있도록 언어 습관부터 고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내가 뱉어내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화기를 돋워 심장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염두에 둘 것.

또 다른 케이스는 실어증에 걸린 44세 여성.
말을 하긴 하는데 발음이 '어버버버' 하는 식으로 부정확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말이 안 됐나요?"
내 질문에 그녀는 역시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대답했다.
"스...스물...아...아...아홉."
원래는 그녀도 그런 장애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이 스물 아홉 되던 해에 갑자기 그런 증상이 왔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서 인후 검서, 성대 검사 다 해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신경 정신과까지 갔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다고 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실어증에 걸렸을까?
"그 때 당시 뭐 충격받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희한한 일은 내게 치료를 받으러올 때만큼은 그녀도 필요한 말을 곧잘 한다는 것.
"선생님한테 무슨 말인가 해야겠다고 거듭거듭 연습해서 되는 거지, 평소에는 이렇게 안 돼요."
그녀의 가슴을 만져보니 날씨가 덥지 않은데도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녀의 실어증은 심장의 화기가 너무 위로 몰린 홧병의 일종인 것이다. 위로 열이 다 올라가서, 조금만 흥분하면 얼굴이 벌개진다. 그런데도 손발은 찬 것이 그녀의 특징적인 증상이었다.
성장과정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녀가 집안의 맏딸이었고, 위로 오빠 둘, 아래로 동생들이 있어 항상 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직장에 다녔는데,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긴장을 풀고 편하게 보낼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게 원인이라면 원인.
그녀 나이 스물 아홉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한창 연애하던 중에 갑자기 실어증이 생겼다. 프로포즈를 받았지만, '나이도 많고 말도 못하는데 폐가 되기 싫다'
며 거절했다. 그런데 그 때 그녀의 남편은 이렇게 말했단다.
"사랑의 힘으로 그 병을 고쳐봅시다."
그래서 지금까지 14년을 살았지만 거의 차도가 없었다. 사실 처음 몇 년간 노력하다 나중에 포기했는데, 다시금 그녀가 말을 되찾기로 결심한 것은 둘째아이 때문이었다.
작은 애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학부모 면담 시간에 담임을 찾아갔다가 말이 하나도 안 나와 속상했단다.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다가 예전에 내가 쓴 신문에 칼럼을 보고 적어둔 전화번호가 생각나 치료를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도 그녀는 치료중이다. 사실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약은 없다. 다만, 경락을 따져봤을 때 열이 자꾸 심장으로 올라가 경락이 막히는 것이 확실하므로 열을 내려주는 처방을 했다. 그리고 경혈에 직접 약물을 주사하는 약침과 헬륨-네온 레이저 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본인 말로는 약 한재 먹고 나서 많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녀가 올 때마다 나는 그녀의 가슴을 따뜻한 손으로 쓸어주고 마음을 풀어주고 애쓴다.
"이건 아주머니가 스스로 고쳐야 할 병이에요. 집에서 천천히 소리내어 책 읽는 연습을 꾸준히 하세요."

걱정 되는 건, 그녀의 짓눌린 감정 때문에 부부관계가 잘 될 리 없다는 것이다.성 기능은 수(水)의 성질을 지닌 신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방에서 말하는 신장은 단순히 콩팥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비뇨생식기 계통을 모두 아우러는 개념이다.
그런데 심장의 열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우리 몸 속의 모든 물(水)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내 몸 속에 조그만 불꽃이 타고 있는 것처럼 몸 속의 물, 즉 진액(津液)이 말라가게 된다. 진액은 쉽게 말하면 '엑기스'다. 우리 몸이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몸 구석구석을 순환하는 엑기스, 혹은 호르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몸의 진액이 마르면 입이 마른다든가, 관절이 뻐근거린다든가, 가슴이 답답하다든가 하는 증상이 생기면서 자연히 생식기의 물도 말라가게 된다.
생식기의 물이 마른다는 것은 곧 질 건조증으로 이어진다. 섹스를 할 때도 질에서 분비물이 잘 나오지 않아 통증을 느끼게 되고, 그런 이유로 불감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녀 역시 성생활은 멀리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남편이 워낙 신사적이라서 잘 참고 기다려주는 듯했다.
이렇게 생식기의 진액이 말라 성교통을 유발하는 경우에, 그 치료 원리는 당연히 생식기를 진액으로 적셔주고 허열(虛熱)을 가라앉히는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홧병의 원인을 찾아 제거시켜주는 것이 가장 빠른 치료 방법. 원인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차라리 잊고 체념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해서 긍적적이고 밝은 생활 태도를 갖는 것이 그 어떤 약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이제 우리 몸이 지나치게 '열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감지했을 것이다. 웬만하면 열 받지도 말고, 열 받는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도 말고, 누군가에게 열을 전해주지도 말자.
이런 홧병 증후군에 쉽게 노출되는 사람은?
아무래도 전업주부들이 많다. 자기 일을 가진 사람들은 열을 받아도 해소할 기회가 많지만, 집안에서만 움직이는 주부들은 마땅히 화를 풀 데가 없어 가슴이 쌓여 병이 되는 것.
미혼 여성들의 경우 마감에 쫓기는 작가나 기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의사, 사업가 등이 홧병 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홧병 증후군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육아법인 '두한족열(頭寒足熱)' 즉, 상체는 서늘하게 하고 하체는 따뜻하게 하라는 것을 따르면 된다. 우리 몸의 상체는 양에 속하고 하체는 음에 속하므로, 음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양에 속하는 상체는 서늘하게, 음에 속하는 하체는 따뜻하게 해주는 것. 인체의 기혈 순환을 골고루 해주면 기본적으로 건강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두면 좋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열 받을 일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해서 내 몸이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옛 성인들은 이런 것을 '중용(中庸)의 도(道)'로 실천했었다.
희(喜:기쁨), 노(怒:성냄), 우(憂:근심), 사(思:생각), 비(悲:슬픔), 경(驚:놀람), 공(恐:두려움). 이 일곱 가지를 '7정(七情: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이라고 하는데, 이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이 감정들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라. 그것이 실제로 화병 뿐만 아니라 온갖 질병에 걸리지 않는 지름길이다.
기분 상하는 일이 있으면 소리를 지르거나 전화로 수다를 떨거나 동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러라. 가슴 속에 뭉친 기를 풀어주는 데 아주 좋다. 아니면 종이 접기나 꽃꽂이, 운동 등 취미생활로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의 느낌?
얼굴에서 온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유쾌하다. 이제부터 '열 안 받는' 여자가 되자. 누굴 위해서?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