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이가 통 기운이 없어해요. 잘 좀 봐주세요, 선생님."
이렇게 말하는 한 여인이 그 남편 되는 사람을 진찰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겉보기에 아주 멀쩡했다. 얼굴에도 윤기가 나고 맥을 짚어 보니 보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기운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이 병색이 짙어보였다. 나이는 40대 중반인데, 핏기 하나 없이 서 있는 모습이 50대는 되어 보였다.
"부인이 더 아프신 것 같은데, 이리 좀 와보세요."
자기는 괜찮다는 그 여인을 데려다 맥을 짚어 보고 생혈액 검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빈혈에 심장도 약하고 자궁도 안 좋고……. 하여튼 그 작은 체구에 온갖 나쁜 증상은 다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바깥 어른보다 부인을 먼저 치료해야 되겠어요. 몸이 많이 안 좋으신데요? 팔 다리 저리는 증상은 없나요?"
"저리긴 하지요. 맨날 그런 걸 뭐 하러 약을 먹어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우리집 양반이나 비싼 걸로 좀 잘 지어주세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병색이 완연한 건 아내 쪽인데, 왜 극구 남편 약만 지어달라고 하는 것인지. 그것도 비싼 약으로 말이다.
그제서야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 것도 한 재 지어주세요."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데도 그녀는 죽어도 자긴 괜찮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얼굴에 '빈혈', '자궁 허함', '심장 나쁨' 이라고 씌어있는데도 약을 안 짓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환자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돈이 문제가 된다면, 건강한 남편 보약은 안 지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솔직히 의사의 입장에서는 아픈 사람부터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아무 문제도 없는 남자, 약 먹여서 기운 돋워놓으면 바람 피우기 딱 좋게 생겼구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본인이 약을 안 짓겠다고 펄펄 뛰니 나도 억지로 지어줄 방도가 없었다.
그 남편의 양기 돋우는 약을 처방하고 나서, 그래도 난 마음이 안 놓여 그녀에게 조언이라도 해주기로 했다. 그 상태에서 자칫 잘못하면 큰 병이 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몸이 썩 건강한 편이 못 되시거든요? 집에 돌아가시면 칼슘과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드시고, 아침마다 산책이라도 하시는 게 좋겠어요. 나중에 생각이 좀 바뀌시면 꼭 다시 오세요."
그녀도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자기는 '당연히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아픈 몸, 굳이 돈 들일 필요 없다는 생각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아픈 것을 돌보지 않다가는, 마치 누수 현상을 그냥 방치했다가 둑이 무너지는 것같은 병마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
우리나라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걸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 엄청난 희생 정신 덕에 남편과 자식들은 덜 아프고 덜 고생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제발 자기 몸을 돌보는 데는 돈 아까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 희생해도 나중에 병든 육신만 남았을 때 서러운 건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한 가지 지적하자면, 사람들은 마치 '보약'과 '치료약'이 따로 있다고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방에서 보약과 치료약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한방에서 '병'이라고 하는 것은 '몸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내부적으로 균형이 깨진 상태'이다. 균형이 깨졌다는 것은, 어떤 것은 너무 실(實: 필요 이상으로 넘침)하고 어떤 것은 허(虛: 부족함)하다는 얘기다. 고로 실한 것은 깎아주고 허한 것은 보(補)해주는 것이 한방의 치료법. 그렇게 해서 인체 내의 균형을 잡아주면 병증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고로 꼭 필요한 부분을 '보(補)'하는 약을 쓰면 그것이 곧 '치료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여인처럼, 보약이란 건강한 사람도 무조건 먹기만 하면 다 좋은 것인 줄 아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보할 필요가 있을 때 보하는 것. 그것이 한약을 먹는 올바른 방법인 것이다.
그 때 보약을 지어간 남편은 과연 병든 아내를 잘 지켜주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원기왕성해져서 바람을 피우고 다닐까?
그 부부의 현재가 정말 궁금하다. 아무쪼록 그 이후에 그녀가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돈과 시간을 투자했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한 여인이 그 남편 되는 사람을 진찰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겉보기에 아주 멀쩡했다. 얼굴에도 윤기가 나고 맥을 짚어 보니 보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기운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이 병색이 짙어보였다. 나이는 40대 중반인데, 핏기 하나 없이 서 있는 모습이 50대는 되어 보였다.
"부인이 더 아프신 것 같은데, 이리 좀 와보세요."
자기는 괜찮다는 그 여인을 데려다 맥을 짚어 보고 생혈액 검사를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빈혈에 심장도 약하고 자궁도 안 좋고……. 하여튼 그 작은 체구에 온갖 나쁜 증상은 다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바깥 어른보다 부인을 먼저 치료해야 되겠어요. 몸이 많이 안 좋으신데요? 팔 다리 저리는 증상은 없나요?"
"저리긴 하지요. 맨날 그런 걸 뭐 하러 약을 먹어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우리집 양반이나 비싼 걸로 좀 잘 지어주세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병색이 완연한 건 아내 쪽인데, 왜 극구 남편 약만 지어달라고 하는 것인지. 그것도 비싼 약으로 말이다.
그제서야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 것도 한 재 지어주세요."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데도 그녀는 죽어도 자긴 괜찮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얼굴에 '빈혈', '자궁 허함', '심장 나쁨' 이라고 씌어있는데도 약을 안 짓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환자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돈이 문제가 된다면, 건강한 남편 보약은 안 지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솔직히 의사의 입장에서는 아픈 사람부터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아무 문제도 없는 남자, 약 먹여서 기운 돋워놓으면 바람 피우기 딱 좋게 생겼구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본인이 약을 안 짓겠다고 펄펄 뛰니 나도 억지로 지어줄 방도가 없었다.
그 남편의 양기 돋우는 약을 처방하고 나서, 그래도 난 마음이 안 놓여 그녀에게 조언이라도 해주기로 했다. 그 상태에서 자칫 잘못하면 큰 병이 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몸이 썩 건강한 편이 못 되시거든요? 집에 돌아가시면 칼슘과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 드시고, 아침마다 산책이라도 하시는 게 좋겠어요. 나중에 생각이 좀 바뀌시면 꼭 다시 오세요."
그녀도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자기는 '당연히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아픈 몸, 굳이 돈 들일 필요 없다는 생각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아픈 것을 돌보지 않다가는, 마치 누수 현상을 그냥 방치했다가 둑이 무너지는 것같은 병마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
우리나라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걸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 엄청난 희생 정신 덕에 남편과 자식들은 덜 아프고 덜 고생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제발 자기 몸을 돌보는 데는 돈 아까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 희생해도 나중에 병든 육신만 남았을 때 서러운 건 자기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한 가지 지적하자면, 사람들은 마치 '보약'과 '치료약'이 따로 있다고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방에서 보약과 치료약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한방에서 '병'이라고 하는 것은 '몸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내부적으로 균형이 깨진 상태'이다. 균형이 깨졌다는 것은, 어떤 것은 너무 실(實: 필요 이상으로 넘침)하고 어떤 것은 허(虛: 부족함)하다는 얘기다. 고로 실한 것은 깎아주고 허한 것은 보(補)해주는 것이 한방의 치료법. 그렇게 해서 인체 내의 균형을 잡아주면 병증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고로 꼭 필요한 부분을 '보(補)'하는 약을 쓰면 그것이 곧 '치료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그 여인처럼, 보약이란 건강한 사람도 무조건 먹기만 하면 다 좋은 것인 줄 아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보할 필요가 있을 때 보하는 것. 그것이 한약을 먹는 올바른 방법인 것이다.
그 때 보약을 지어간 남편은 과연 병든 아내를 잘 지켜주고 있을까? 아니면 정말 원기왕성해져서 바람을 피우고 다닐까?
그 부부의 현재가 정말 궁금하다. 아무쪼록 그 이후에 그녀가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돈과 시간을 투자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