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침마다 10분 정도씩 테레사 수녀의 기도문을 비롯하여 몇 권의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읽는 위인전 전집에서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꺼내 읽어 본적이 있다.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 인도의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거두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보살폈다면 슈바이쳐 박사는 아프리카 밀림의 흑인들을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짖고 그들의 온갖 병을 치료하였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인간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사랑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다.
대개 남성들의 역할이 가정 밖에서 삶에 필요한 자원과 돈을 벌어 오는 일이라면 아이나 노인이나 병자를 돌보는 일은 여성에게 맡겨졌다. 그런 방식의 역할 구분이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다. 그래서 남성들은 씩씩하고 용감하고 공격적이며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야 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부드럽고 겸손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냥한 존재라는 이분법적 틀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와 테레사 수녀의 나눔과 보살핌의 삶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 약자, 죽어가는 존재들을 돌보는 일이 여성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타인과 나누고 약한 자를 돕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속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성들은 남성들끼리의 경쟁 관계 속에만 속해 있었기에 나눔과 보살핌의 속성을 개발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며, 그러한 태도를 나약함의 표현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교감의 능력을 아예 사전에 싹부터 잘라버리는 것이 남성들의 지배문화이다. 이러한 남성 지배문화의 이면을 꿰뚫어보고 남성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일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슈바이처 박사의 고백은 남성들이 나눔과 보살핌 그리고 교감과 대화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짐을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 깊은 밑바닥에는 고통에 대한 동정이 있으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한 감정을 일부러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러한 점을 점점 더 뚜렷하게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남성도 부드러운 마음씨를 갖고 있고 눈물 흘릴 수 있다. 남성들에게 강요된 '남성다움'이라는 것이 남을 짓밟고 윽박지르는 폭력의 문화로 변질되어 버린 오늘날, 진정한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도 남성들은 고정된 남성의 시각을 벗어나 타인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보아야 한다. 남성들은 남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다움을 상실한 남성다움을 어디다 쓸 것인가?
세상의 모든 약자들, 살아있는 것들과 교감할 줄 아는 남성들과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구속의 제도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판을 짜고 있는 여성들이 함께 만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세상의 온갖 테레사 수녀와 슈바이처 박사가 만나서 함께 일할 때 세상은 보다 인간적이고 생명을 존중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 인도의 길거리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거두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을 보살폈다면 슈바이쳐 박사는 아프리카 밀림의 흑인들을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짖고 그들의 온갖 병을 치료하였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인간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사랑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이다.
대개 남성들의 역할이 가정 밖에서 삶에 필요한 자원과 돈을 벌어 오는 일이라면 아이나 노인이나 병자를 돌보는 일은 여성에게 맡겨졌다. 그런 방식의 역할 구분이 오랫동안 계속되어왔다. 그래서 남성들은 씩씩하고 용감하고 공격적이며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야 하는 반면에 여성들은 부드럽고 겸손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냥한 존재라는 이분법적 틀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와 테레사 수녀의 나눔과 보살핌의 삶을 떠올리면서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 약자, 죽어가는 존재들을 돌보는 일이 여성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타인과 나누고 약한 자를 돕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속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성들은 남성들끼리의 경쟁 관계 속에만 속해 있었기에 나눔과 보살핌의 속성을 개발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며, 그러한 태도를 나약함의 표현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교감의 능력을 아예 사전에 싹부터 잘라버리는 것이 남성들의 지배문화이다. 이러한 남성 지배문화의 이면을 꿰뚫어보고 남성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일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슈바이처 박사의 고백은 남성들이 나눔과 보살핌 그리고 교감과 대화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짐을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 깊은 밑바닥에는 고통에 대한 동정이 있으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한 감정을 일부러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이러한 점을 점점 더 뚜렷하게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남성도 부드러운 마음씨를 갖고 있고 눈물 흘릴 수 있다. 남성들에게 강요된 '남성다움'이라는 것이 남을 짓밟고 윽박지르는 폭력의 문화로 변질되어 버린 오늘날, 진정한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해서도 남성들은 고정된 남성의 시각을 벗어나 타인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바라보아야 한다. 남성들은 남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간다움을 상실한 남성다움을 어디다 쓸 것인가?
세상의 모든 약자들, 살아있는 것들과 교감할 줄 아는 남성들과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구속의 제도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판을 짜고 있는 여성들이 함께 만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세상의 온갖 테레사 수녀와 슈바이처 박사가 만나서 함께 일할 때 세상은 보다 인간적이고 생명을 존중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