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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중국고전극이다. 몰살당한 충신 일가 중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자의 웬수 갚기 더하기 나라 구하기 무용담.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사랑과 의리와 우여곡절들은 뻔하고 뻔하건만 나는 이런 고전극이 좋다. 특히 날렵한 무술솜씨를 자랑하는 여자들을 만나는 것이 통쾌하기 짝이 없다. 살찌고 둔한 내 몸을 한탄하는 순간도 바로 이때이다.

모전여전인가. 딸아이도 중국영화를 좋아한다. <황제의 딸>이라는 드라마에 폭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통에 나도 몇 번 구경하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제비>라는 인물에 매료되었다.

제비는 얼핏보면 우리나라의 탈랜트 중에 안문숙과 외모가 비슷하다. 다소곳 내숭형이 아니라 호쾌발랄한 성격까지 닮았다. 한 가지 차이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안문숙이 남자에게 성적매력이 별로 없는 것으로 나오는 반면 제비는 평민의 신분으로 왕자의 사랑을 받게 된다.
말하자면 중국의 신데렐라가 된 것인데 청순가련형이기는커녕 그 반대인 것이 나로 하여금 중국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제비는 왕자의 사랑을 받아 그 배필의 신분에 맞게 공주로 책봉된다. 궁에 들어온 제비는 하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며 또래의 하인들을 자신과 평등한 존재로 대우하여 그들의 사랑을 받는다. 체면과 교양의 너울 아래 숨죽여 지내던 귀족 청춘 남녀는 제비의 등장으로 젊은이다운 활기를 찾고 평민들의 생활에도 눈을 뜨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이러한 제비가 못마땅한 궐내의 수구세력의 최고봉 대왕대비는 제비에게 공주라는 신분에 맞게 여러 가지 예절교육과 소양교육을 강요한다. 그러나 제비는 공부하는 것을 싫어한다. 대왕대비는 3개월 내에 공주의 신분에 걸맞는 학식과 교양을 겸비하지 않으면 폐한다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몸이 단 왕자는 제비에게 공부를 시켜보려고 애를 쓰지만 효과가 없다. 생각다 못해 왕자는 제비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여 근사한 상을 차려놓고 시를 외운 다음에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제비에게 왕자는 마음에도 없는 인격 모욕적인 발언을 하고 답답한 궁중생활에 환멸을 느낀 제비는 어느 날 궁을 벗어난다. 뒤늦게 이 사실을 발견한 왕자와 제비의 귀족친구들이 어른들 몰래 찾아 나서지만 허사. 제비는 배가 고파 꾐에 빠져 아주 악독한 장사꾼 부부에게 억류되어 감금된 채 중노동에 시달린다.

항의하는 제비에게 주어지는 것은 매질과 배고픔 뿐. 밥 한 사발을 위해 개 같은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제비....... 이때 주인공이 청순가련형이 아닌 것은 얼마나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지. 주인마누라의 매질에 거칠게 항의를 하고 첩실로 들어 앉히려 꾀는 주인영감을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는 제비, 어쨌든 저 애는 무사히 견뎌낼 것이고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런 상황들을 고통 없이 보게 해준다.

제비가 고통을 겪는 동안 왕자는 후회의 늪에 빠져있다. 밥이 있어도 넘어가지 않고 매맞지 않아도 온 몸이 편치 않다. 제비와 지낸 기억들을 떠올려보며 있는 그대로의 제비가 자신과 친구들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확연히 알게 된다(없어봐야 안다니까).

제비를 찾자마자 왕자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
"너는 완벽해, 너는 훌륭해. 그깟 시가 무슨 소용이니? 내가 잘못했어. 이제 시 몰라도 돼. 네가 좋아하는 음식 마음껏 먹어."

드라마 <아줌마>에서 장진구라는 남자는 이랬다.
귀족인 척 하는 시집식구들 속에 어쩔 수 없이 무수리가 되어 살아가는 착하고 헌신적인 아내 오삼숙을 버리고 대학시절 동경하던 귀국 여교수에게 눈이 돌아간 장진구.

이혼을 하고 재혼을 앞둔 시점에서 장진구는 두 아들과 새엄마의 사전공감대 형성 차원에서 외식을 주선한다. 새엄마 후보의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아이들의 관심사에 주파수를 맞추기로 결심. 요즘 아이들의 관심은 단연 컴퓨터. 눈치 빤해 공략하기 어려워 보이던 큰 아들이 먼저 미끼를 문다.
"와~ 컴퓨터도 하세요?"
컴퓨터 공감대에 그만 탄성을 지른다.
"그러~엄, 이 선생님은 너희 엄마 같은 아줌마들과는 달라요"
순간 아들은 기분이 상해서 먹던 것을 내려 놓는다.
조급하게 월척을 노렸던 장진구의 촐싹방정이 일을 그르쳐 고거 쌤통이다 싶었다.

그런 장진구가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동정을 산 부분이 있으니 '아내와의 문화적 갭 속에서 나도 고통을 당해왔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남자들이 자기 아내에 대해 가장 불만으로 삼는 것은 '무식한 여편네'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안 통하고 분위기가 없고 문화적 감수성이 없다는 것이다. 무수리처럼 살다보면 있던 감수성도 사라지고 분위기 찾을 기회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여태 그 덕에 하루하루 먹고 살아온 주제에 이제 불만이라니. 여자들에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고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라고 해 놓고 이제 '문화적 갭 속에서 고통을 당했다굽쇼?' 나무에 올라가게 해놓고 흔드는 격이 아닌가.

남자와 여자는 이론과 학식이라는 것으로 패가 갈렸다. 남자들에게는 추상적인 관념성을, 사회적 대의명분을 가르치며 가방끈을 길게 만들어 왔다. 여자들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은 직무유기였다. 딸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까운 노동력의 낭비였다. 그 시간에서 집에서 일을 시키면 얼마나 요긴한데.

개화바람이 불면서 여자들 중에서 공부 많이 한 여자들이 생겨났다. 신여성. 남자들은 유부남인데도 그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도도하게 남자들을 매료시켰다. 신여성에게 남편을 빼앗긴 구여성들은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당시 야학에는 쪽지고 애 업은 아줌마들이 넘쳐났다.
남자를 둘러싼 신구여성의 대립은 다시금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으니.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왜 여자들은 지식과 학력의 잣대 앞에 작아져야만 하는가. 무엇이 진정 인간에게 소중한 것인가.
어디든지 가면 늘 설거지와 손 젖는 일을 도맡는 사람을 알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허위와 권위주의에 찬 지식에, 학력에 침을 뱉어라.
무식하기 때문에 겸손하고 단순하게 자기 노력으로 사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에게 머리 숙여야 한다.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지식과 가방끈의 서열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버려야 한다. 여성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해방을 위해서.
현대 문명은 기술, 과학, 황금만능을 신봉한다. 이것은 철저히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여성은 여기서 소외되면서 2등 시민, 무시의 대상자가 되었다. 기술과 과학과 황금만능은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21세기를 여성의 세기라고 하는 것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여성의 품성이 인류를 이러한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 다름 아니다.

이 왕자가 제비한테 그랬다.
너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외우거나 배워서 갖는 것과는 다른 것을 가졌다고
없어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을 가졌다고
남들 앞에 잘난 척 할 때 쓰는 것과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가졌다고
그것은 사랑과 평등 의식

이런 점에서 아줌마는 제비와 꼭 닮았다. 아줌마들아! 절대 기죽지 말자. 우리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