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6월부터 작년 5월까지 아이와 함께 수영장엘 다녔습니다. 다향이가 두 돌을 막 넘겼을 무렵부터 수영장엘 다닌 것이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물가라곤 가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물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당장은 수영을 못할지라도 물에 대한 거부감이나 공포가 없다면 나중에라도 다향이가 수영을 배울 때 훨씬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수영장을 다니면서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 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수영장 앞 매장에서 내 것과 다향이의 수영복을 샀습니다. 같이 샤워를 하고 아이에게 수영복을 입히려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입혀보려고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허사였지요.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아니, 이런 엉터리 수영복을 팔다니!'
매장으로 쫒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샤워를 끝낸 직후라 벌거벗은 몸은 온통 물로 젖어있었거든요.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결국은 수영복을 거꾸로 들어 보았습니다. 아! 그제야 문제점이 발견되더군요. 다향이의 수영복 끈이 엑스(X)자로 되어있었던 겁니다. 남자인 내가 그런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루는 엄마하고 물에서 놀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물에서 발차기를 하는데 기가 막히게 하더군요. 수영선생님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 엄마에게 물어보았더니 6개월 되었다더군요. 그 아이한테는 태중에서 놀던 본능이 살아있었던 겁니다.
'다향이를 수영장에 너무 늦게 데려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 계획에는 없지만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좀더 일찍 수영장에 데려와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다른 어느 날, 아주 멋진 아줌마를 보았습니다. 몸매가 멋지다거나 얼굴이 예쁜 아줌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영장에서 다향이와 체조를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걸어갑니다. 배가 불룩 나온, 만삭인 아줌마가 뒷짐을 지고 당당하게 걸어갑니다. 천천히 물에 들어간 아줌마가 여유롭게 수영을 즐깁니다.
정희씨가 임신을 했을 때, 내가 한 일이라곤 손잡고 서울대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줌마를 보면서 '충격이 금물인 임부에게 수영만큼 더 좋은 운동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똑같은 결심을 합니다. 만약 정희씨가 둘째를 갖게 된다면…
지난 11월부터 '엄마랑 아가랑'수영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랑'이라는 단서가 붙은 수영반에 남자인 내가 등록하는 것부터가 큰 부담이었습니다. 내 사정을 아는 수영장관계자들이 선뜻 등록을 받아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줄어든 건 아니었지요.
하지만 육아를 담당해본 사람이라면 한겨울을 아이와 함께 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주부들도 매한가지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강도가 더 심합니다. 같은 여자들끼리는 왕래가 자유롭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자체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 사정은 처음 육아를 담당할 때나 꽤나 알려진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넘쳐나는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요. 어쨌든 '엄마랑 아가랑'반에 나갔습니다. 큰 욕조 같은데 몇몇 주부와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다향이를 그 욕조 안에 넣어주고도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집니다. '웬 아저씨?'라는 눈총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의 호각소리에 따라 아이들이 체조를 합니다. 그 아이들 뒤에서 엄마들이 체조를 합니다. 그 틈에 끼여 체조를 하는 나는 너무도 쑥스럽기만 합니다. 체조를 마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수영장을 돌아오라고 달리기를 시킵니다. 다행히도 다향이가 제일 빨리 뜁니다. 다향이를 따라 나도 뜁니다. 뒤가 보이지 않아 어색함이 덜합니다.
발차기를 지도해주고 물속에 들어갑니다. 아이들 팔뚝에 튜브를 끼워주고 물속에 들어가게 합니다. 팔뚝에 튜브를 끼고도 다향이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물속에 들어가서도 '아빠, 꼭 잡아. 손 놓으면 안돼!'를 연신 외쳐댑니다.
그런 과정을 대여섯 번 거치면서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윤희 엄마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도우미역할을 해야 할 엄마가 반바지를 입고 온 것입니다. 눈치가 보이고, 곤혹스러워졌습니다. '내가 부담스러워서 수영복을 입지 않았나?'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틀 뒤에도 윤희 엄마는 수영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다음달 등록을 하라는데 고민이 됩니다. '등록을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고민이 됩니다. '나 하나 때문에 '엄마랑 아가랑'수영반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다시 이틀 뒤에는 윤희 엄마가 수영복을 입고 왔습니다. 대신 재원이와 동호엄마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습니다.
아! 그제야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달거리 때문에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엄마랑 아가랑'반이 즐거워졌습니다.
한달이 지날 무렵 다향이는 엄청난 발전을 보였습니다. 25미터나 되는 풀을 저 혼자 발차기해서 두세 번씩 왕복합니다. 팔뚝의 튜브대신 키판을 잡고 수영을 합니다. 스스로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뺏다하면서 팔 돌리기까지 합니다. 1년을 수영장에 다녀도 잠수할 생각을 않던 다향이가 제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노릇, 선생노릇이 다 따로 있지만 역시 아이들의 스승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향이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준석이와 동호의 영향이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엄마랑 아가랑'반에 8개월을 다닌 4살 박이 준석이와 3개월을 다닌 5살 박이 동호는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놀거든요. 그 어린 두 친구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장은 수영을 못할지라도 물에 대한 거부감이나 공포가 없다면 나중에라도 다향이가 수영을 배울 때 훨씬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수영장을 다니면서 재미있는 일도 있었고, 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수영장 앞 매장에서 내 것과 다향이의 수영복을 샀습니다. 같이 샤워를 하고 아이에게 수영복을 입히려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입혀보려고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허사였지요.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아니, 이런 엉터리 수영복을 팔다니!'
매장으로 쫒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샤워를 끝낸 직후라 벌거벗은 몸은 온통 물로 젖어있었거든요.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결국은 수영복을 거꾸로 들어 보았습니다. 아! 그제야 문제점이 발견되더군요. 다향이의 수영복 끈이 엑스(X)자로 되어있었던 겁니다. 남자인 내가 그런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루는 엄마하고 물에서 놀고 있는 갓난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물에서 발차기를 하는데 기가 막히게 하더군요. 수영선생님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 엄마에게 물어보았더니 6개월 되었다더군요. 그 아이한테는 태중에서 놀던 본능이 살아있었던 겁니다.
'다향이를 수영장에 너무 늦게 데려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 계획에는 없지만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좀더 일찍 수영장에 데려와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다른 어느 날, 아주 멋진 아줌마를 보았습니다. 몸매가 멋지다거나 얼굴이 예쁜 아줌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영장에서 다향이와 체조를 하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걸어갑니다. 배가 불룩 나온, 만삭인 아줌마가 뒷짐을 지고 당당하게 걸어갑니다. 천천히 물에 들어간 아줌마가 여유롭게 수영을 즐깁니다.
정희씨가 임신을 했을 때, 내가 한 일이라곤 손잡고 서울대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줌마를 보면서 '충격이 금물인 임부에게 수영만큼 더 좋은 운동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똑같은 결심을 합니다. 만약 정희씨가 둘째를 갖게 된다면…
지난 11월부터 '엄마랑 아가랑'수영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엄마랑'이라는 단서가 붙은 수영반에 남자인 내가 등록하는 것부터가 큰 부담이었습니다. 내 사정을 아는 수영장관계자들이 선뜻 등록을 받아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줄어든 건 아니었지요.
하지만 육아를 담당해본 사람이라면 한겨울을 아이와 함께 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주부들도 매한가지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강도가 더 심합니다. 같은 여자들끼리는 왕래가 자유롭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자체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런 사정은 처음 육아를 담당할 때나 꽤나 알려진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넘쳐나는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요. 어쨌든 '엄마랑 아가랑'반에 나갔습니다. 큰 욕조 같은데 몇몇 주부와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다향이를 그 욕조 안에 넣어주고도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집니다. '웬 아저씨?'라는 눈총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의 호각소리에 따라 아이들이 체조를 합니다. 그 아이들 뒤에서 엄마들이 체조를 합니다. 그 틈에 끼여 체조를 하는 나는 너무도 쑥스럽기만 합니다. 체조를 마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수영장을 돌아오라고 달리기를 시킵니다. 다행히도 다향이가 제일 빨리 뜁니다. 다향이를 따라 나도 뜁니다. 뒤가 보이지 않아 어색함이 덜합니다.
발차기를 지도해주고 물속에 들어갑니다. 아이들 팔뚝에 튜브를 끼워주고 물속에 들어가게 합니다. 팔뚝에 튜브를 끼고도 다향이는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물속에 들어가서도 '아빠, 꼭 잡아. 손 놓으면 안돼!'를 연신 외쳐댑니다.
그런 과정을 대여섯 번 거치면서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윤희 엄마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습니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도우미역할을 해야 할 엄마가 반바지를 입고 온 것입니다. 눈치가 보이고, 곤혹스러워졌습니다. '내가 부담스러워서 수영복을 입지 않았나?'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틀 뒤에도 윤희 엄마는 수영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다음달 등록을 하라는데 고민이 됩니다. '등록을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고민이 됩니다. '나 하나 때문에 '엄마랑 아가랑'수영반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됩니다. 다시 이틀 뒤에는 윤희 엄마가 수영복을 입고 왔습니다. 대신 재원이와 동호엄마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습니다.
아! 그제야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부담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달거리 때문에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엄마랑 아가랑'반이 즐거워졌습니다.
한달이 지날 무렵 다향이는 엄청난 발전을 보였습니다. 25미터나 되는 풀을 저 혼자 발차기해서 두세 번씩 왕복합니다. 팔뚝의 튜브대신 키판을 잡고 수영을 합니다. 스스로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뺏다하면서 팔 돌리기까지 합니다. 1년을 수영장에 다녀도 잠수할 생각을 않던 다향이가 제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노릇, 선생노릇이 다 따로 있지만 역시 아이들의 스승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향이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준석이와 동호의 영향이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엄마랑 아가랑'반에 8개월을 다닌 4살 박이 준석이와 3개월을 다닌 5살 박이 동호는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놀거든요. 그 어린 두 친구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