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01.12.27 조회 수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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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여대생이 와서 생리 불순에 대한 상담을 하고 같다.
"갑자기 왜 이럴까요? 다치거나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번 달에 생리를 두 번이나 했어요."

그녀를 진찰을 해 보니 자궁이나 소화기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건강상 병적인 증세가 없을 때 짚이는 것은 단 한 가지.

"혹시 요즘 신경을 많이 쓰는 일 없어요?"
내가 이렇게 물어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요즘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는 일에 매달려있는데, 그게 생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역시 마음 따로 몸 따로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신경을 많이 쓰면 간의 기운이 울결(鬱結: 막히고 엉킴)된다. 그로 인해 간과 신장의 기운이 제대로 순환이 안 되면 금방 생리 불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신경을 많이 써서 생리 불순이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절대로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사가는 날이나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 하필 생리 예정일이라 걱정하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생리가 안 나온다. 이사가는 일, 또는 그 모임에 나가서 해야할 일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마땅히 나와야 할 생리가 안 나오는 것이다.

"일단 약을 써 보고 다음달 생리를 관찰해봅시다. 다음달 생리를 봐서 문제가 있으면 치료를 조금 더 해야 하고, 정상이면 그 다음달도 정상일 가능성이 있으니 적어도 두 달은 지켜봐야 해요."

그녀의 경우는 일시적으로 너무 신경을 쓰는 바람에 피곤해서 그럴 수 있었다. 그녀는 다행히 약을 한 재밖에 안 먹었는데도 그 다음달 생리가 정상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내 말대로 따라주어서 생리불순을 쉽게 고칠 수 있었지만, 어떤 환자들은 '기다림'에 야박하다.

"왜 빨리 안 나아요?"
다짜고짜 이렇게 물으며 의사를 재촉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마디로 참을성이 없는 것이다.

자기 몸은 자기 것이다. 자기가 정신적으로 학대한 과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빠른 시일 내에 의사가 고쳐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몸에 이상이 왔을 때는 내 몸의 사이클에 맞추는 치료를 하거나, 생활 습관을 정상적으로 바꾸며 은근히 기다려야 한다. 병이 오기까지의 과정을 무시하고 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병이 오기까지 진행된 기간이 길면 낫는 과정도 길다.

어떤 환자는 성격이 너무 조급해서 똑같은 질병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 악순환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치료하다보면 몸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이 때 조금만 더 쉬면 확실히 나을 것을 못 참고 움직이는 것이다. 병이라는 건 언제나 회복기간을 잘 지켜야 한다. 몸과 마음이 모두 안정을 취하면서,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만 생각해야 한다.

여성들은 병을 눈치채기가 더 쉽다. 생리의 상태와 분비물의 상태를 건강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생리 주기가 이상해지거나 생리혈이 검어진 경우, 분비물에서 심한 냄새가 나는 경우 곧바로 그 원인을 찾으면 심각한 질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적어진다.

이렇게 모든 병은 미리 알고 조치를 하면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고 있다가 병에 걸리는 환자들을 많이 봐왔다. 과일로 치면 익을 만큼 익었으니 꼭지가 떨어지는 것처럼, 병이 깊이 들만큼 들어 바깥으로 나타나는 것을 '갑자기, 왜?'라고 생각하지 말 것.

"내 몸은 항상 내게 얘기하고 있다. 내 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이 말을 환자들에게 꼭 하고 싶다. 어떤 병이 심각하게 들기 이전에, 우리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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