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2001.12.28 조회 수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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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비만(肥滿)

"다향이 체지방 검사 받아 봤어요?"
주위 분들에게 때때로 받는 질문이고, 나는 그럴 때마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합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재빠르게 다음 말을 잇지요.

"어릴 때의 비만이 성인비만으로 연결된 대요."
"………"
"뭐, 다향이가 잘 먹고 잘 노니까 별 문제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한번가보는 게 어때요?"

묵묵부답인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지 위로 겸 걱정의 말을 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의 말은 점잖은 편에 속합니다. 한 여자 선배는 이런 말까지 했으니까요.

"나중에 다향이 스모선수 만들 거야?"
하나밖에 없는 남의 집 귀한 딸을 두고 스모선수라니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다향이의 몸무게가 표준체중보다 더 나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향이가 무엇이든 잘 먹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이의 먹거리를 자연식으로 가져가는 나의 배려, 끝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의 일정을 아이의 뜻대로 움직여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표준체중이란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의 평균값을 낸 것 일 뿐 그것 자체가 건강의 척도가 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다향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건강한 편이고 총기도 부족하지 않으며, 타인에 대한 친화력도 뛰어나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활동이 왕성합니다. 그런 아이를 두고 주위에서 걱정을 하니 답답한 노릇이지요.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불쾌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성향 때문입니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변혁에 참여하며, 남녀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 안티-미스코리아 대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 일과 육아

[아이하고 함께 하는 시간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 30분을 놀아주더라도 얼마나 질적으로 놀아주느냐가 중요하다]

주위에서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 역시도 책을 통해 그렇게 배웠고,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년 6개월 동안 육아를 담당해 온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와 온종일 생활하다 보면 때로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엉덩이를 때려주는 일도 발생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전업주부들이 아이를 덜 사랑하거나 늘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일과 육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것은 올바른 물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양육하며 성장을 지켜보는 행복감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종사하며 사회에 이바지하고 성취감을 맛보는 것 모두 중요한 일이니까요.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출산을 하게 되면 으레 직장을 그만두려니 하는 시각이 팽배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결혼과 동시에 사표를 받는 곳도 있으니까요. 또 육아휴직을 받을 경우에는 승진이나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가슴 졸여야 하고,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에 직장을 구한다는 것 역시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을 선택했을 경우 '양적인 시간', '질적인 시간'을 운운하지 말고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는 일을 선택했고, 이렇게 사회생활을 열심히 해왔단다"라고.

셋. 남아와 여아의 특성

[남자아이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이 인형놀이를 즐기는 것은 가정과 사회의 암묵적인 교육(길들이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 아니 결혼을 했어도 직접 육아를 담당하기 전에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고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다향이를 여성스럽게 키우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남성스럽게 키우려고도 하지 않지요. 다만 제 의사표현(말과 행동 어느 것이나)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한 명의 자연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일까요? 30개월도 안된 다향이는 매우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야단을 칠 때에도 제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씩씩거리면서 나를 노려봅니다(그럴 때면 가슴이 뜨끔해져 반성을 하지요). 그런 다향이가 장난감 자동차엔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다향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지난 2년 동안 육아모임에 참여한 분들의 여자아이들도 똑같지요.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다릅니다. 대여섯 대의 장난감 자동차는 기본이고, 많을 경우에는 오륙십 대까지 갖고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또 누가 손이라도 댈라치면 난리가 나지요.

겨우 2년 반 동안의 육아경험을 갖고 너무 장황하게 말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