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기록-기이한 기록 PART2’ 윤나리 작가 인터뷰]
“피해자들께 누가 되지 않는 이미지 만들고 싶었어요”

자극적인 사건 삽화 대신해, 피해자들이 그림 속에서라도 덜 힘들었으면
언뜻 동화책 삽화인가 싶은 그림들이다.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의 푸른색 그림 속에는 다양한 모습의 여성들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그림의 설명을 읽고 나면 따뜻했던 그림 속 여성들이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 같다.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과 무서움이 그림 속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사건이 있었다는 정보는 전달하지만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한 컷에서라도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여성미래센터 1층 허스토리홀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일러스트 작품 80개가 뺴곡이 걸려있다. 윤나리 작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을 그린 작품들이다. 윤 작가는 뉴스 기사를 통해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강간, 살인, 추행, 사기, 협박 등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을 접할 때마다 기사에 첨부되는 이미지들이 너무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들의 폭력 피해 경험을 자신의 방식대로 전달해보고 싶어 사건을 다시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록은 2015년 3월부터 1년여에 걸쳐 이어졌다. 이별을 원했던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 10대 여성이 학교폭력 담당 경찰관에게 성폭행당한 사건, 헤어진 남자친구가 여성의 가족을 협박하고 폭행한 사건 등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오르는 사건들이 윤 작가에 의해 다시 기록되었다.
“작품을 주로 푸른색으로 그린 이유는 차가우면서도 멍 자국 같기도 해서에요. 검은색으로 하자니 너무 어두운 이미지로 남겨질 것 같아서 섞어서 썼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여성들에게는 나도 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색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윤 작가는 날마다 일어나는 여성 대상 폭력 사건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익숙해졌을까’라고 생각하고는 매일매일 엑셀로 사건 파일을 정리하고 이미지로 기록했다. 그것이 ‘기이한 기록’이다. 지금 여성미래센터 허스토리홀에서 진행중인 전시는 이 ‘기이한 기록’의 여성미래센터에서의 2번째 전시이자 확장 버전이다. 지난 9월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 이후 윤 작가의 ‘기이한 기록’은 여성연합의 젠더폭력 대응 활동과 함께 ‘끝나지 않는 기록–기이한 기록 PART2’로 다시 명명되었다.
“이 전시가 다시 불릴지는 몰랐어요. 그동안 출산하고 육아하느라 멀어져 있었는데, 멀어져 있던 것이 또다시 돌아오게 된 것 같아요. 신당역 사건을 보면서 (여성에 대한 폭력) 분위기가 끝나지 않는구나... 나아졌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아진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되어 착잡했습니다.”

페미니즘 미술 콜렉티브 ‘노뉴워크’, 집단의 목소리로 페미니즘 가시화 작업
‘기이한 기록’ 시작 이전인 2015년 2월 트위터에서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함으로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항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트위터에는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나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의 경험들이 쏟아졌다. 윤나리 작가는 이 자기 고백적 선언들이 온라인상에서 휘발되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책으로 엮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 연남동 카페 사장님의 인쇄비 지원으로 급하게 책을 만들어 수 천 여명의 여성·시민들이 참여하는 3.8여성대회에서 배포했다. 그 해 여성영화제와 포럼 등에서도 윤 작가가 엮은 책이 공유되고 회자되었다.
책을 만들고 나서는 프리랜서로 불러주는 사람을 찾을게 아니라 자신의 디자인 스킬로 뭔가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당시 온라인상의 해시태그 운동에 대해 미술계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트위터에서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미술계 사람을 모았다. 첫 모임에 일러스트레이터, 미술작가, 시각예술 전공자 등 5명이 모여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토로했고, 그 속에서 전시의 주제를 만들어갔다. 이것이 ‘노뉴워크(No New Work)’의 시작이었다. ‘노뉴워크’는 미국 아리조나 대학 교수인 엘렌 맥마흔의 책 제목이다. 맥마흔 교수는 임신 기간 동안 대학에서 무보수로 일했고, 육아 기간 동안 대학 측이 그의 업적이 하나도 없다고 평가한 것에 대해 책을 통해 임신과 육아 등 비가시화된 일을 재평가하고 성차별이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팀명 ‘노뉴워크’는 맥마흔 교수의 작업에 대한 오마주다.
2015년 결성한 노뉴워크는 2016년 첫 전시 ‘폭력’을 주제로 한 ‘불편한 고리들:폭력의 예감’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페미니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아카이브전을 개최했다. 이외에도 워크숍, ‘노뉴무비’ 영화제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11월부터
2022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일시적 개입(LOCAL IN THE MAKING)’을 아르코미술관 제1,2전시실 및 스페이스필룩스에서 진행중이다. 이번 전시는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로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계기로,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 맺으며 변화하고 생성되는 로컬리티에 주목, 국내외 14팀의 서로 다른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살펴보는 전시이다.

“다정하고 푸근한 미소의 할머니가 되는 게 꿈”
윤나리 작가는 대학 여성위원회에서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다. 20대 초반에 ‘너는 페미니스트 같다’는 남자 선배의 말에 ‘나쁜 말’인 줄 알았던 페미니즘이 궁금해 여성위원회에 찾아갔다고 한다. “대자보에 예쁘게 그림 그려줄 수 있다”며 여성위원회 문을 두들긴 윤 작가는 그곳에서 페미니즘 책도 읽고 여성학 수업도 들었다. 좀 더 페미니즘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 것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의뢰한 일을 하면서부터다. 처음 돈을 받고 그림을 그린 것이 민우회 활동이었다.
그를 페미니즘으로 이끈 데는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직장에서의 성차별적 경험도 한몫했다. 작가로서 개인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먼저 돈을 벌어야 해 한 취업이었다. 3년 반 정도의 직장 생활 동안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에 지쳐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겨울 제주에서 산에 올랐다가 ‘지금 하자’ 결심하고는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명함을 만들었다.
2012년 프리랜서가 된 후 10년, 지금 윤 작가의 작업실은 서대문구 홍제동의 작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그의 반려견 ‘포카’로 디자인한 굿즈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다. 중형견 포인터 종인 포카는 국내 입양이 어려워 북아메리카로 입양 보내질 예정이었으나, 윤 작가가 임시보호를 하다가 입양하게 되었다. 2018년 작업실을 독립하면서 포카와 단 둘이 있다보니 포카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2020년에는 포카 그림 ‘매일매일 귀여워’라는 시리즈로 전시회도 열었다. 2015년 앤서니 브라운 & 한나 바르톨린 그림책 공모전에 수상한 ‘산 아줌마’는 윤 작가가 처음 그린 그림책이다. 집 근처의 산을 보고 그렸다는 ‘산 아줌마’는 아이들과 산 아줌마의 관계를 통해서 환경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언젠가 산 아줌마처럼 다정하고 푸근한 미소가 어울리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윤 작가는 오늘도 다정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의를 짚어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윤나리 작가 [작가노트] 중
나는 무엇보다도 미디어 속에서 피해 여성의 이미지가 불안과 측은함을 동반한 또 다른 혐오의 대상으로 남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혐오의 시선이 피해 여성에게까지 옮아가는 점을 경계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기사를 간략히 다듬는 과정에서 '~녀' 등의 수식어를 지워 피해 여성에게 씌워지는 프레임을 벗기려 했으며,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이별을 통보받고'란 내용 등은 초기에는 사용했지만, 가해자를 옹호한다고 판단되어 삭제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작업 도중에도 여성들은 죽어갔다. 두려움을 느끼며 피해 여성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그렸다. 그것은 단단한 명울, 차가운 공포, 때로는 눈물로 담겼다.
이 기록 속에서 사건을 겪고 사라진 또는 생존한 여성들은 어두운 침전물, 무중력의 상태, 다리가 부서진 의자, 모래사막, 불, 메마른 나뭇가지 등의 기괴한 요소들과 함께 배치되었다. 어느 요소를 넣더라도 그녀들에게 처해졌던 현실보다는 덜 기괴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슬펐다. 이 기괴한 세상에서 상처를 입은 그녀들이 더는 아프지 않기를, 또한 이 기이한 기록이 더는 지속, 회자되지 않는 때가 반드시 오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