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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틴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 <레 미제라블>이 다시 보인다.



“I dreamed a dream in time gone by (지나가 버린 옛날 나는 꿈을 꾸었어요)

When hope was high and life worth living (그때는 희망이 가득하고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었죠)

I dreamed that love would never die (사랑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 꿈꾸었고)

I dreamed that God would be forgiving (신은 자비로울 거라고 꿈꾸었어요)”

- 영화 <레 미제라블> 판틴의 노래 ‘I dreamed a dream' 중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아니 노래 가사는 기억하지 못할 지라도 영화 <레 미제라블>을 본 590만 국내 관객이라면 앤 해서웨이가 가슴 뭉클하고 처절하게 이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영화의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다. 감독은 롱테이크(long take)로 이 장면을 연출했고 별 다른 기교나 장치 없이도 그 울림과 강렬함은 관객에게 전달되기에 충분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판틴에게는 어린 딸(코젯)이 있다. 아이를 여관집에 맡기고 공장에서 일하던 판틴은 여공들의 모함 때문에 공장에서 쫓겨나고 어떻게든 딸을 키워야 한다는 모성 하나로 돈을 벌기 위해 머뭇머뭇 성매매현장에 가게 된다. 처음엔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어금니를 뽑아 팔고 (그걸로는 아이의 양육비를 채울 수 없어) 결국 몸을 팔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착취의 과정에서 영화를 보는 이들은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린 판틴과 같이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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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을 본 590만의 국내 관객이라면 판틴이 아이 양육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난 뒤

자신의 무너진 삶을 처절하게 노래하는 이 장면을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다.

- 이미지출처  : 영화 <레 미제라블> 한 장면



20년의 시간이 지나
<레 미제라블>이 다시 보인다.


 내가 <레 미제라블>을 처음 본 것은 1993년 봄,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앙졸라와 청년시위대의 ‘민중의 노래’는 당시 나름 힘들었을 10대 시절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영화로 또 한국어 라이센스 첫 뮤지컬로 다시 <레 미제라블>을 보았다. 그런데 2013년의 나에게 <레 미제라블>은 ‘이 시대가 말하는’ 힐링(healing)도 위드스탠드(withstand)도 아니었다. 바로 판틴 때문이었다.


 공장에서 쫓겨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판틴은 가난하고 배가 고팠으며 추위와 외로움에 떨고 있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를 위해 살아야했고 일을 해야 했다. 삶의 끝까지 내몰린 판틴이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아니 ‘선택’이라는 말이 맞기는 한 걸까? ...


 20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판틴의 고통이 오늘 나를 아프게 한다.


글 : 이루용(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