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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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여성의 시간과 노동자의 생명을 연료삼는 배송 속도경쟁을 멈추자

 

한국 사회는 최근 또 한 명의 노동자를 잃었다. 지난 10일 새벽 제주에서 새벽배송을 하던 30대 노동자가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진 것이다. 그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던 중에도 “이틀만 더 쉬고 싶다”는 말을 할 만큼 지쳐 있었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사실상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하루만 쉬고 곧바로 다시 배송에 나섰고, 그 결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루 12시간 노동, 350개의 물량,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 주택을 오르내리는 고강도 업무, 그리고 1년 동안 20kg이 빠질 정도의 과로가 축적된 결과였다. 이 죽음은 구조적 참사다. 최근 3년 반 동안 야간시간대 노동으로 인한 산재 신청은 1,424건에 이르렀다. 새벽배송·심야배송이 노동자에게 뇌·심혈관계 질환과 과로사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이미 WHO, ILO, 유엔 사회권 규약, EU 노동시간 지침 등을 통해 확인된 국제적 기준이다. 야간노동은 의학적으로나 인권적으로나 명백한 위험 노동이며, 규제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간 고객 편의를 근거로 그간 새벽배송에 대한 규제를 피해왔다.


한국 사회의 새벽배송 논쟁은 지금 '노동자 vs 소비자'라는 거짓 갈등 구도로 왜곡되고 있다. 새벽배송이 "여성·육아 가정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서비스”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이는 이윤 극대화라는 욕망을 감추기 위한 꼼수일 뿐이다. 새벽배송을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는 이들만이 아니다. 새벽배송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여성을 호출하지 말라.


육아하는 가정, 돌보는 시민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야 한다. 편의를 핑계로 노동자의 생명을 갉아먹는 속도경쟁과 새벽배송 시스템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독박 육아와 돌봄 전담 속에서 주로 여성들이 새벽배송에 의존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봐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체제와 성별 분업, 돌봄 공백이 겹치면서 독박 돌봄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구조다.


택배 노동자의 죽음은 끔찍한 장시간 노동체제가 만들어낸 구조적 폭력이며, 새벽배송이 이 구조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를 설계하고 확산시킨 주체는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다. 쿠팡은 시장 점유를 확대하기 위해 로켓배송, 새벽배송, 365일 배송이라는 속도경쟁을 도입했고, 기존 유통·물류 산업 전반에 심야·장시간 노동을 확산시켰다. 멤버십과 운영 시스템을 통해 ‘편의’와 ‘필수’의 경계를 무너뜨렸으며, 최저임금 수준의 주간노동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노동자들을 심야노동으로 내몰았다. 반복되는 사망, 체중 감소, 뇌출혈, 졸음운전, 과로, 산재 불승인, 그리고 특수고용·하청·대리점 구조는 모두 이 속도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기업은 침묵하고 있다. 속도경쟁을 멈출 책임이 있는 기업이 논쟁에서 빠져 있고, 정부는 특수고용이라는 이유로 노동시간 기준과 건강권 기준 마련을 미루고 있으며, 일부 언론은 소비자의 편의를 앞세워 구조적 문제를 가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말한다. 노동자가 과로사하는 사회는 지속될 수 없으며, 여성의 시간 부족을 노동자의 죽음으로 메우는 방식의 사회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속도경쟁 체제를 재편하고, 임금·단가를 개선해 야간노동 수요를 주간노동으로 전환하며,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시간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 사회적 논의다. 반복되는 죽음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노동자의 죽음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지금, 택배·물류노동자의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중요한 이유이다. 


노동자의 새벽과 여성의 시간을 희생시키는 속도경쟁 사회는 끝나야 한다. 노동자의 희생만을 끝없이 강요하는 새벽배송 사회를 멈추고, 모두가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사회, 돌봄과 생계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사회, 속도가 아니라 생명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택배·물류노동자들과 함께 이 변화를 위해 끝까지 행동할 것이다.

 

2025. 11. 14.

경남여성단체연합, 경남여성회, 경주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노동자회, 기독여민회,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구여성노동자회, 대전여성단체연합, 대전평화여성회, 마창여성노동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부산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회, 부천여성노동자회, 서울여성노동자회, 수원여성노동자회, 안산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회, 전국여성노동조합, 포항여성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의전화(가나다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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