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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기자  


▲ 자리를 꽉 채운 관객들
ⓒ2003 김용운
청소년기는 일생에 있어 가장 예민하고 또한 가능성이 많은 시기이다.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이 시기를 대학입시라는 일사불란한 줄 세우기의 체계 안에서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제대로 탐색해보지 못한 채 성년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제5회 여성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12일 오후 5시. 동숭동 하이퍼택 나다에서는 이러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혹은 보냈던 10대 여성들이 제작한 영화들을 모아 청소녀 감독 작품전과 십대 감독들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하였다.

국내 유수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수상했던 작품들을 선정하여 개최된 청소녀 감독 작품전에는 가족, 미래에 대한 불안, 성적 호기심, 외모, 낙태, 친구, 남녀평등 등 다양한 소재를 가진 총 10편의 작품들을 통해 지금 십대 청소녀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다소 어설프지만 참신한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 관객과의 대화 시간
ⓒ2003 김용운
상영회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열렸다. 아직 소녀 티를 벗어나지 못한 감독들은 다소 쑥스러운 자세로 관객들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는지를 물어보는 관객들의 질문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영화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작품전이 끝나고 십대 감독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한 여학생이 자위를 했다는 사실이 우연히 반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일어나는 헤프닝을 통해 현재 청소년들의 성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달팽이가 되자>를 찍은 서연정씨는 현재 수원 청명고 3학년. 같이 영화를 찍은 학교 후배들이 많이 와서 매우 뿌듯한 모습이었다.

▲ <에러>
ⓒ2003 2003 wffis
컴퓨터의 에러 화면을 차용하여 기억에 대한 의미를 환기시킨 제4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연기상 수상작 <에러>의 이기쁨, 신수정씨는 현재 대학교 신입생. 고등학교 3학년(혜원여고)때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둘은 자신들이 원하는 영화관련 학과에 들어가 모인 다른 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다.

상영작품 중 가장 많은 웃음을 자아낸 <내 살이 아름다워>를 찍은 좌희정씨는 현재 안양예고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 2학년 때 학교 동아리친구들과 함께 찍었다는 <내 살이 아름다워>는 상영작 중에서 학교의 지원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은 작품처럼 보였다.

▲ <유리>
ⓒ2003 2003 wffis
유일한 에니메이션 작품이었던 <유리>의 박솔씨는 작년 한국에니메이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에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해있는 사회인이었다.
육체적으로 성숙하나 정신적으로 미숙한 소녀 캐릭터를 통해 낙태문제에 대하여 사회 비판적으로 접근한 이 작품은 강렬한 주제의식이 인상적이었다. 제4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편집상 수상작.

다음은 극장 로비에서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 각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
박솔 : <유리>는 고2때 만들었던 작품이다. 미혼모가 아기를 화장실에서 낳는데 그 애기가 엄마를 잡아먹는 내용이다.

보통 미혼모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시키는데 미혼모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도 있다. 아기의 시선을 비롯한 다른 시선으로 미혼모 문제를 보려고 했다.

▲ <내 살이 아름다워>
ⓒ2003 2003 wffis
좌희정 : <내살이 아름다워>는 고등학교 연극반 설희라는 아이가 주인공 줄리엣을 맡기 위해 살을 빼면서 일어나는 헤프닝을 담은 영화이다. 비록 설희가 뚱뚱하긴 하지만 자기 모습 그대로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내용을 보여주려고 했다.

신수정 : <에러>는 고3 수험생인 주인공이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 친구의 자살로 인한 충격으로 자신의 일부 기억을 잊어버리면서 일어나는 헤프닝을 다룬 작품이다.

▲ <달팽이가 되자>
ⓒ2003 2003 wffis
서연정 : 남녀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궁금해하면서도 표현하기 어려운 성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낙서라는 표현방식을 서로간에 쉽게 꺼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자웅동체의 달팽이처럼 성은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 그런 부분에서부터 남녀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 관객으로서 같은 10대 여성들이 만든 영화를 보았을 때의 느낌은?
이기쁨: 우리들 개개인의 생각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놀랍고 참 독창적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유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낙태를 문제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이 무척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좌희정: 같은 청소년들로서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찍은 것도 많았는데 그 표현방식이 다 다르고 색다르게 느껴졌다.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들 개성이 묻어있었다. 그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 박솔씨
ⓒ2003 김용운
박솔 : 이제 청소년시기를 벗어났지만 청소년시기일 때 다른 친구들의 생각들이 참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그 생각들을 확인해볼 기회가 많지 않았었는데 그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영화를 찍으면서 어려웠던 점들은?
박솔 : 공동작업을 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스텝들과의 트러블이 가장 어려웠다.

좌희정 : 촬영하면서 장소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또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에 따른 시간적인 제약이 많았다.

▲ 서연정씨
ⓒ2003 김용운
서연정 : 한창 입시공부를 해야하는 고3때 작업을 하느라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의 시선이 따뜻하지는 않았다. 또한 학생신분에서 예산 같은 것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촬영기자제를 하루만에 빌려서 찍어야 했다. 그런 것이 어려웠었다.

이기쁨 : 기자제 같은 문제도 크지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영화를 만들다 보니까 주변의 어른들 시선에 염려가 묻어있던 적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부담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찍은 영화의 결과가 나쁘게 나올까 걱정했었다.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고 호응해주지 않는 어른들의 시선이 아무래도 제일 큰 장애물이었던 것 같다.

▲ 신수정씨
ⓒ2003 김용운
신수정 :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지만 막상 찍다보니 영화 찍는게 정말 재미있었다. 주변의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께서 애들이 찍으면 얼마나 찍을까? 옆에서 참견도 많이 하셨지만 그것이 추억이 되었다.

-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박솔 : 앞으로도 계속 에니메이션을 만들 것이다. 역동적이고 완벽한 에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작가주의적인 색체가 농후한 어렵고 난해한 에니보다는 상업성이 있더라도 보면 또 보고 싶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에니메이션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 좌희정씨
ⓒ2003 김용운
좌희정 : 사람들이 봤을 때 독특하고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리고 보는 관객들이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단순히 재미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신수정 : 딱히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선은 영화 찍기를 즐기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

▲ 이기쁨씨
ⓒ2003 김용운
이기쁨 : 내가 하고 싶어하는 영화를 찍는 것 자체가 보람있는 일이다. 앞으로 감독이 되면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단순히 말초적인 재미가 아니라 삶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영화. 나의 생각을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서연정 : 감정의 극적인 것보다는 너무 재밌고 너무 슬프고 너무 웃기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으로 행복하고 담백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굳이 누가 죽거나 아프지 않더라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들은 전화번호를 서로의 핸드폰에다가 찍기에 여념 없었다. 한 두살 터울의 그녀들은 십대에 영화를 찍어봤다는 공통의 경험 하나만으로도 금새 친해졌다.

아직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서연정, 좌희정씨는 현재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신수정, 이기쁨씨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들었다. 박솔씨는 일찌감치 에니메이션에 뜻을 두고 에니메이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비쳤다.

우리나라 입시교육의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는 십대들로 하여금 소위 학벌 외에는 다른 꿈을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생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탐색의 시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꿈은 대학입학 이후로 유보된다.

예술성이나 완성도의 잣대를 가져다 이들의 작품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시선이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모험이었고 도전이었으며 또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이번 서울여성영화제 청소녀 감독전이 그들의 여정에 있어 한층 힘이 되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김용운기자 ikem@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