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후기] 제4차 아시아·태평양 페미니스트 포럼을 다녀와서 (2024/9/12-14, 태국 치앙마이)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본 글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매월 발행하는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 2024년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 2024년 12월호 바로가기-> 클릭)

제4차 아시아·태평양 페미니스트 포럼(4th Asia-Pacific Feminist Forum, APFF)이 “페미니스트 세계 구축: 창조적 에너지와 집단적 여정(Feminist World-Building: Creative Energies, Collective Journeys)”이라는 제목으로 2024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렸다. 아태지역 여성인권단체의 연합체 단체인 아시아·태평양 여성과 법·개발 포럼(APWLD)이 주관하는 APFF는 3년마다 아태지역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현재 여성인권을 둘러싼 다양한 의제와 그 원인을 분석하고, 아태지역 다양한 여성운동의 성과를 함께 기리며, 향후 운동전략과 국제연대를 모색하는 장이다. 2017년 제3차 APFF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2024년 7년 만에 열린 이번 제4차 AFF에서는 약 500여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참석하여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포럼이 되었다. 그동안 아태지역의 복잡다단한 정치·경제 상황 속에서 다양한 현안으로 고군분투하던 활동가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누고 연대를 다지는 기회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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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제4차 APFF 참석자 단체사진 (출처: APWLD Facebook)

총 3일간에 걸친 포럼은 매일 이른 오전에 열리는 전체 세션(Plenary session)과, 아태지역 여성단체들이 다양한 주제로 직접 개최하는 수십 개의 워크숍으로 구성되었다. 1일차와 2일차 저녁에는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온 활동가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준비되었다. 또한 포럼이 열리는 임프레스 호텔 컨벤션 센터 내 공간에는 단체들의 다채로운 활동을 담은 사진과 그림, 굿즈 전시회와 판매가 진행되었다.

포럼 각 전체 세션의 1일, 2일, 3일차 세부 주제는 각각 “현재 우리가 있는 곳(where we are)”, “우리가 만들고 싶은 사회(where we want to be)”, ”이를 실현할 방법(How we get there)”이었다. 아태지역 여성운동이 현재 직면한 복합적인 지형 분석부터 출발하여, 여성운동은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각 영역에서 살펴보고 이를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1일차 전체 세션에서 5명의 발표자들은 현재 아태지역 여성운동이 위치한 지형을 제국주의와 군사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종교적 근본주의와 반여성인권 정치세력의 부상 등과 연관 지어 설명하였다. Roots For Equity 대표이자 파키스탄 출신의 활동가 Azra Talat Sayeed는 제국주의와 군사주의가 권위주의 정권의 부상과 군사비 지출의 급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글로벌 빈곤과 억압 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점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세계정치경제 동학이 아태지역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여성인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현재 여성운동은 이러한 거시적 관점에서의 정치경제 분석과 개입을 적절히 하고 있지 못함을 지적하였다.

스리랑카 풀뿌리 단체에서 활동하는 Sarala Emmanuel은 2022년 국가부도사태를 경험한 스리랑카 정부가 IMF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따라, 교육, 의료보험, 사회보호 정책 및 기후위기 대응 정책 등의 예산을 심각하게 삭감하고 있고 그에 따라 여성 및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은 더욱 열악해진 상태에 있음을 다양한 경제·사회 통계를 들어 설명하였다.

무슬림 여성인권 단체에서 30여 년간 리더로 활동해 온 Zainah Anwar 활동가의 발표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20세기 많은 국가가 채택한 발전이론(development theory)에 따라 국가 시스셈 설계에서 세속화 과정에 따라 공공 정책과 정치에서 종교의 가치가 삭제되는 흐름이 있었지만, 글로벌 남반구 많은 국가에서는 아직도 공·사 영역에서 이슬람교가 법과 정책의 근본 원리가 되고 있으며 심지어 헌법에서조차도 이슬람교의 특별한 위치가 명기된 경우가 많다. 수십 년 전 이슬람 교단 내에서 정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을 하려는 발표자에게 많은 무슬림 출신 여성운동가들이 우려를 전했었던 일화를 꺼내기도 했다. “종교 자체는 근본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부정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종교는 사적이어야 하며 공적 영역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되나, 지금 하려는 운동이 오히려 공적 영역에서 종교의 위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정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은 이슬람 교단 내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이는 유엔협약 등의 공식 유엔인권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발표자는 초기 여성운동가들이 종교가 여성인권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여성주의 개입의 필요성을 경시한 것은 오판이었다고 지적한다. 여성운동가들이 적절한 개입을 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이슬람과 여성인권, 이슬람과 세속적 가치가 마치 이분법적으로 대립되는 방식으로 프레임화되었으며, 대부분의 보수·권위주의 세력들이 ‘무엇이 이슬람적인 것이고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작위적으로 세우고 이를 여성 억압 기제로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필자가 그동안 Sisters in Islam, Musawah 등 다양한 이슬람 단체와 그룹을 창립하여 샤리아 율법에 대한 여성주의적 지식체계 수립과 확산, 이슬람과 여성인권에 관한 교육, 그리고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등을 통한 결혼과 가족법 개정 운동 등을 해온 경험을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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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제4차 APFF 1일차 전체세션

 

 

필자는 “반인권·백래시 트렌드와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위협”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최근 백래시와 여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정서를 적극적으로 선동하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정치지도자들이 반인권·극우 세력들과 손을 맞잡고 몇십 년 동안 여성인권운동가들의 투쟁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해온, 보편적 여성인권가치의 정당성을 깎아내리고 성평등 법·제도 장치들을 공격하며, 여성인권의 모든 맥락과 역사를 삭제한 채 여성인권운동 그룹들을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만을 위해 활동하는 이기적인 사람들” 혹은 ”남성과 여성의 평화와 조화를 해치는 사람들“로 낙인찍는 현상을 설명했다. 현재 한국 정치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투운동 등 일상에서의 성폭력·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적극적 문제제기 이후 반작용처럼 따라온 일부 남성들의 백래시·여성혐오 정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구조적 성차별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소명을 다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대통령이 되었다. 그 배경에는 신자유주의·군사주의·경제 불평등 등 온갖 한국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제쳐두고 여성인권을 공격하며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일부 남성정치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 여성인권운동,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은 ’부패한 이익 카르텔‘로 공격받고 있으며, 성평등 정책 추진체계와 예산 등은 심각하게 퇴행했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한 가운데 정부는 세계 최저 출산율을 반등시킨다며 오히려 낡은 이성애 기반 가부장제 가족 가치를 강화시키고 여성정책을 인구통제정책의 하위 카테고리로 위치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과 홍콩 등 동아시아에서 온 활동가들은 한국의 상황, 특히 청년 남성들의 심각한 반페미니즘 정서, 그리고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이 전통적 가부장제 담론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매우 비슷한 것에 놀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다양한 워크숍 중 필자가 인상 깊게 참석했던 세션은 국제토지연합(International Land Coalition)이 주최한 “원주민 자매들: 함께 저항하기 위해 함께 기억하기(Indigenous Sisters: Remembering Together to Resist Together)”였다. 국제적으로 약 4억 8천만 명의 원주민(indigenous populations) 중 절반이 여성과 여아이며, 원주민으로 확인된 이들 중 80퍼센트가 아태지역에 거주한다. 그러나 이들은 주류 정책과 제도에서 소외되어 왔으며, 이들의 역사와 지혜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이들의 목소리는 비가시화되었다. 태국, 네팔, 인도, 스리랑카 국가 영토에서 살아왔던 원주민 여성들이 그동안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군사주의 체제 속 복합 억압과 차별 경험 속에서도 전통적 지식의 보유·관리자이자 돌봄제공자, 평화지킴이로써 그들의 땅과 지역을 어떻게 현명하게 지켜내고 자기결정권·공동책임·조정과 자원활동·리더십 등을 실천해왔는지에 대한 실제 경험을 듣고, 국제 페미니스트 운동과의 교차적 연대 전략을 논의하였다. 태국 영토에 거주하는 한 원주민 여성은 정규학교에서 교과 내용에서의 원주민에 대한 차별, 학교 선생님들의 차별적 인식, 그리고 동료 학생들에 의한 집단 따돌림, 원주민 여성에 대한 복합차별과 성폭력 등 원주민 여성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전 생애 과정에 걸쳐 총괄적 차별과 낙인 프로세스가 존재한다는 점을 자신의 경험과 연관 지어 설명하였다. 현재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며 원주민 지역의 역사와 지식을 전달하고 원주민 학생들이 자존감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한 이 여성의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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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4> 제4차 APFF 워크숍 세션 장면

 

여성운동이 지향하는 미래를 논의하는 제2차, 제3차 전체세션에서는 지금의 엄혹한 현실을 타개하고 페미니즘 가치를 사회변화의 대안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다채로운 토론이 벌어졌다. 피지여성권리운동(Fiji Women’s Rights Movement)의 활동가 Laisa Bulatale는 사회변화를 위한 페미니스트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4가지 조건으로 1) 일상의 격무와 트라우마로부터 우리 자신을 돌볼 것, 2) 지난 페미니스트 운동의 성과를 참고자료 삼아 운동역량을 강화할 것, 3) 펀딩 공여기구(donor)의 엄격한 요구조건에서 벗어나 대안적 펀딩 전략을 마련할 것 4) 다양한 세대와 교차적 영역을 아울러 운동의 관점을 넓힐 것을 들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페미니스트 운동을 지원하는 국제펀딩기관인 Numun Fund의 Jac sm Kee는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거리감은 현재 기술과 그 자원을 둘러싼 글로벌 식민주의가 글로벌 남반구의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은 ‘1) 사람들의 집단적 지식과 역사를 되찾기 2) 기술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운동에 이를 활용하기 3) 변화를 창조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로 상상력을 활용하기’의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들이 대안세계를 구상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짧지만 알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던 2박 3일의 여정이 끝났다. 각자의 현장에서 수많은 현안을 다루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500여 명이 만사를 제치고 이번 포럼에 참석했다는 것은, 그만큼 페미니스트 운동이 위치한 현 복합적 지형에 관하여 개별국가나 지역을 넘어선 글로벌 차원의 분석이 시급하며,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집단적 페미니스트 연대 전략을 공동으로 구상할 공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반여성인권 극우세력과 보수정치의 결합은 앞으로도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나아가 국제사회의 페미니스트운동의 정당성과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2박 3일 동안의 날카로운 분석과 토론, 수많은 대화와 따뜻한 연대의식이 앞으로의 페미니스트 운동이 직면한 이러한 도전과제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다시 글로벌 차원에서의 사회변화의 담론이자 기준으로서의 위치성을 더욱 굳히는데 강력한 힘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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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6> 제4차 APFF 굿즈 및 포스터 전시회와 마켓

 

2025년은 베이징행동강령(1995)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올해 11월에는 베이징30주년 준비를 위한 아태 시민사회포럼 및 정부간회의가 열렸으며, 내년도에도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제69차 회의(CSW69) 등 중요한 국제논의의 장들이 펼쳐질 예정이다. 한국 여성운동도 이러한 국내외적 기회를 잘 활용하여 한국의 엄혹한 정치사회 지형과 여성인권 퇴행 흐름을 되돌리기 위한 국제 에드보커시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아태지역,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페미니스트운동과의 연대를 더욱 넓혀 집단적 한국여성운동의 경험을 세계에 공유하고, 과거 그리고 현재의 다양한 국제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한 상호배움을 기반으로 국경을 넘는 페미니스트운동의 세력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웹사이트에서 1,2,3일차 전체세션(plenary session) 발표자들의 발표원고 전문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https://apff4.apwld.org/- 제4차 아시아태평양 페미니스트 포럼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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