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행동강령 도입 30주년, 성과와 도전과제 살펴보기
- 제69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 참가기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부센터장)
“이 글은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 2025년 4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클릭)
제69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CSW)가 2025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CSW는 유엔 회원국, 유엔기구 및 NGO들이 함께 모여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관한 글로벌 기준과 규범,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 상황을 평가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회의는 매년 3월 초 2주간 뉴욕 유엔본부와 그 일대에서 개최되며, 유엔에서 열리는 모든 회의 중 유엔 연례총회 다음으로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모이는, 단일 의제로는 유엔 내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로 알려져 있다.
<사진1: CSW69차 회의 광경>
회의 프로그램은 공식회의(official meetings), 사이드이벤트(side events), NGO포럼의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공식회의는 유엔본부에서 주로 정부 대표단이 모여 진행하는 회의이며, 고위급 회의(high-level segment), 일반토의(general discussion), 상호대화(interactive dialogue), 합의결론(Agreed Conclusion) 내용을 협상하는 비공개회의 등으로 구성된다. 사이드이벤트(side events)는 공식회의와 별개로 국제기구, 정부대표부 등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회의 메인 주제 및 다른 성평등 의제에 관해 유엔기구, 멤버국가, 시민사회가 논의하는 장이다. NGO포럼(NGO Forum Parallel events)은 각국 다양한 여성인권NGO가 직접 행사를 주최하며, 전체 진행은 ‘NGO CSW N/Y’라는 뉴욕 주재 NGO에서 총괄한다.
올해 회의에서는 베이징행동강령(Beijing Platform for Action, 1995) 3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의 이행성과와 도전과제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였다. 베이징행동강령(Beijing Platform for Action, BPfA)은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189개국 정부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으로, 현재까지 가장 진보적이고 체계적인 국제 여성인권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베이징행동강령은 그 자체로도 지역과 국가, 국제사회에 걸친 수십 년간의 페미니스트 운동의 빛나는 성과물이기도 하다. 베이징행동강령 이행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CSW는 1995년 이후 매 5년마다 국가별 이행 성과와 도전과제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진전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며, 그 논의 결과를 담은 정치선언문(Political Declaration)을 발표한다.
필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약 260여 개 여성인권단체들의 연합체인 아시아·태평양 여성과 법, 개발 포럼(Asia Pacific Forum on Women, Law and Development, APWLD)의 글로벌메커니즘대응 프로그램 조직위원회(Organizing committee of the Grounding the Global Program)의 포컬포인트이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대표하여 이번 회의에 참여하였다. 유엔 회의장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공식회의는 유엔 웹티비(https://webtv.un.org/en)로도 생중계되고 추후에도 시청할 수 있기에, 필자는 이번 회의 기간 중 주로 각국의 여성단체들이 진행하는 NGO포럼과 NGO활동가·국제기구 관계자 등과의 네트워킹과 간담회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참여하였다. 2주간 열린 회의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글로벌 남반구 지역 여성인권 침해에 관한 구조적 분석 없이 글로벌 성평등 진전을 이룰 수 없다”
“글로벌 남반구의 여성인권과 발전정의를 위한 구조적 변혁과 대륙별 리더십(Structural Transformations and Regional Leadership for Women's Human Rights and Development Justice in the Global South)”이라는 제목의 사이드이벤트가 3월 19일 유엔본부에서 열렸다. 1995년 베이징행동강령 도입 당시의 포부와 현재 글로벌 남반구의 여성현실 간의 괴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글로벌 남반구의 성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구조적 원인을 살펴보며, 향후 성평등 진전을 위한 글로벌 남반구의 대륙별 리더십을 증진시키기 위한 과제를 살펴보았다. 네팔 정부, 말레이시아 정부, 아시아태평양 여성과 법, 개발 포럼(APWLD), 아프리카 여성의 개발과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FEMNET), 저개발국가시민사회연합(LDC Watch)가 공동으로 주최하였으며, 필자는 APWLD를 대표하여 패널로 참여하였다.
필자는 전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연대의 위대한 성과인 베이징행동강령이 도입될 1995년 당시에도 여성인권 진전에 대한 많은 희망과 포부가 있었으나 아태지역의 여성인권은 현재까지도 고착화된 다층적인 억압으로 인해 진전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가부장제, 권위주의, 군사주의, 신자유주의, 근본주의 등 서로 교차하는 글로벌 억압의 구조가 글로벌 남반구 여성들에게 어떻게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종합적인 정치경제적 분석이 CSW 회의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베이징행동강령,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 수많은 글로벌 규범이 만들어지고 후속 논의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실질적인 이행 메커니즘이 없다면 기술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 등 여성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소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이 진행될 수 있도록 CSW를 더욱 강하고 진보적인 글로벌 플랫폼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를 위해서는 각 국가와 지역, 풀뿌리에서 변화를 만들고 있는 진보적인 여성단체들이 CSW회의 의제를 주도적으로 형성하고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이들의 의미 있고 광범위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함을 덧붙였다.
<사진2-1, 2-2: 사이드이벤트 광경>
페미니스트 외교정책: “페미니스트 가치는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의 표본이다”
베이징행동강령의 12개 주요 관심 분야 영역에는 ‘여성의 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과 무력분쟁’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로만 치부되며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인권’의 문제로 포함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무력분쟁과 군사주의는 여성과 여아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끈질기게 외친 페미니스트 운동의 결과로, 베이징행동강령에는 ‘여성의 권리가 주요한 인권 문제로 다루어져야 하며, 전쟁과 무력분쟁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심각한 전쟁범죄’라는 내용이 중요하게 담겨 있다. 2014년 스웨덴이 전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외교정책(feminist foreign policy)을 도입한 이후 몇몇 국가들이 뒤따르며 외교·군사·국방 등 국제정치 영역에서 성평등 관점을 도입하는 것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무력 분쟁과 군사주의가 확산되고 있고, 외교·국방 영역에서 헤게모니 남성성의 정치가 더욱 세를 떨치고 있는 2025년 현 상황에서,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을 기념하여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의 현 상황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하는 것은 중요한 영역이다.
필자는 3월 20일 “페미니즘을 통하여 외교정책의 한도를 재정의하기(Redrawing the Lines of Foreign Policy Through Feminism)”라는 NGO포럼에 참여하였다. 유럽진보연구재단(Foundation for European Progressive Studies),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을 위한 진보적 목소리 연대체(Feminist Foreign Policy Progressive Voices Collective),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본 포럼에서는 복잡한 현 국제 정세 속에서 세계 각국의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의 성과와 새로운 위기, 도전과제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스페인의 여성정치인이자 유럽의회의 성평등위원장인 Lina Gálvez Muñoz은 2024년 유럽의회 선거 결과 여성의원 수가 처음으로 감소하였음을 공유하며, 이는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점점 더 세력을 얻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였다. 성평등 관점이 포함된 외교정책을 유럽의회 차원에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우파 출신 여성의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이 특정 정파에 관계되지 않은, 외교정책에 보편적인 성평등 가치를 녹여내는 것임을 설득시켜야 하는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페미니스트 외교정책 협력네트워크(Feminist Foreign Policy Collaborative)의 선임정책자문관 Spogmay Ahmed는 지난 몇 년간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의 여정을 짧은 키워드로 요약한다면, ‘격변을 거쳐오며 끊임없는 압력에 시달려 왔으나, 끈질기고 완강히 낙관적이었다(persistent and stubbornly optimistic)’고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유럽 내 극우정치의 급속한 부상 및 백래시 세력의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에 대한 거센 공격이 있었고, 그에 따라 스웨덴,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세 정부는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을 철회하였다. 또한 국제 시민사회는 수단,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등 많은 지역에서 심화되는 무력 분쟁 속 외교에서 인권과 성평등의 가치가 선별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에 대한 깊은 좌절을 느끼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이 그동안 실제 외교정책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틀을 1) 프로세스(process), 2) 정책의 혁신(policy innovation), 3) 구조적 분석(structural analysis)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첫째,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스페인과 콜롬비아는 시민사회 출신의 페미니스트 외교정책 평가 자문관을 두었고, 스코틀랜드 독일, 프랑스 등은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을 개발함에 있어서 여성시민사회와 다양한 자문회의를 거치고 있다. 즉,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은 시민사회의 참여를 높이고, 더욱 포괄적인 방식으로 정부 정책을 개발하고 이행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정책의 혁신과 관련하여, 많은 페미니스트 외교정책들은 단순히 여성과 여아에 관심을 두는 것에서 나아가, 불평등한 힘의 구조적 분석에 집중하며, 외교정책과 다른 정책 영역과의 연결고리 강화에 힘을 쓰고 있다. 칠레 정부는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외교정책과 거시경제정책과의 연결점을 강화하였고, 칠레 및 캐나다 정부는 그들이 맺는 무역협정에 ‘젠더에 관한 장(gender chapter)’을 추가하였으며, 라이베리아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 중 첫 번째로 아프리카 여성의 정치적 리더십을 위한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많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은 외교정책 도입에 있어서 남반구 간 삼각협력(triangular cooperation) 등을 통해 전통적으로 외교정책이 유럽·미국·글로벌 북반구 중심이었던 전통에 도전하고 있다. 셋째, 구조적인 분석과 관련하여,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은 외교정책의 영향을 시스템적 차원의 사고를 통해 평가할 수 있게 돕는 이론으로써 작용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국가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 여성과 여아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회복지 정책과 예산 수립 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신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기후위기 대응·노동권 보호·안전한 이민 등을 후순위에 두는 외교정책을 어떻게 추동하고 있는지, 초남성성·공포조장의 국제정치 속에서, 개별국가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어떤 정책과 예산을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 등을 다룬다.
참여자들은 페미니스트 외교정책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다자주의 국제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정부와 시민사회 대화의 플랫폼 확장을 더욱 강력하게 촉구하고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반민주주의·반인권 극우 세력들이 페미니스트 가치와 운동을 공격하는 것의 근본 배경은 ‘페미니스트 가치가 민주주의의 가장 완성된 표본’임을 그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앞으로 정치·경제·외교정책의 틀에서 민주주의 원리를 반영시키기 위한 가장 필수적 원칙은 페미니스트 관점의 반영이라는 점을 더욱 지속적으로 설득시키고 확산시켜야 함을 강조하였다.
<사진3: NGO포럼 광경>
CSW 재활성화(revitalization): 기술적 논의를 넘어서 강력한 이행 메커니즘이 뒷받침되어야
이번 회의에서는 ‘CSW 재활성화 전략(revitalization)’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CSW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쓰일 당시부터 선언문 초안에 여성인권과 성평등 관점이 도입되도록 기여하고, 여성차별철폐선언(1967)과 여성차별철폐협약(1979), 국제여성의 해(International Women's Year, 1975) 도입과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개최 및 베이징행동강령 도입을 이끌어내는 등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을 진전시키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논의에서 성평등이 주류화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복잡다단해진 글로벌 현 정세 속에서 앞으로 CSW 회의체가 여성인권과 성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호하고, CSW 회의결과가 각 국가와 지역에서 더욱 책임 있게 이행될 수 있게 하기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목적이다. 현재 이 CSW 재활성화 전략을 담당하는 공동의장은 아일랜드와 보츠와나 정부이며, 올해 3월까지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두 달간의 논의를 거쳐 6월에 전략문서를 발표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시민사회도 이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발표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APWLD를 비롯하여 전 세계 5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페미니스트 단체의 네트워크인 Women's Rights Caucus(WRC)에서 발표한 의견서이다 (관련 링크: https://www.wo-men.nl/kb-bestanden/1736155368.pdf)
. 3월 18일에 열린 고위급 상호대화에서 CSW 재활성화 전략이 중점적으로 논의되었고, APWLD는 WRC를 대표하여 다음의 의견을 발표하였다.
1) CSW회의에서 도입된 합의결론(Agreed Conclusion)에 대한 국가별 이행을 평가하기 위한 더욱 강력한 책무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회원국은 CSW 회의결과에 대한 이행 상황을 국가 정책·입법·예산 조치 등을 상세히 포괄하여 공개적이고 정기적인 방식으로 보고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이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Voluntary National Review(SDGs 국가별 이행 보고 메커니즘) 또는 Universal Periodic Review(유엔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 정례 검토) 등과 유사한 구조화된 보고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회원국은 이행 상황 보고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지키기 위하여 NGO 보고서 제출 프로세스 및 기타 참여 메커니즘 등을 통한 시민사회의 독립적인 모니터링과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2) CSW 시스템을 분권화(decentralize)하고, 대륙 및 국가 차원의 협의(consultation) 등을 CSW의 공식적인 구조로써 제도화하고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CSW회의를 위한 대륙별·국가별 연례 협의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하며, 이는 접근가능하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고 풀뿌리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을 의미 있게 참여시켜야 한다. 글로벌 북반구의 회원국들은 글로벌 남반구 국가들의 의미 있는 참여를 위한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3) 합의결론(Agreed Conclusion)은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위한 핵심적인 규범적 틀로써 계속 기능해야 한다. 합의결론은 퇴행적으로 진행되는 정치협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명확하고 측정 가능하며 야심차고 행동지향적(action-oriented)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여성과 소녀들의 실제 현실을 반영하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긴급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4) CSW회의 주제들은 협력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설정되어야 하며, 현재 및 새롭게 부상되는 글로벌 차원의 과제를 반영해야 한다. 이러한 주제들은 시민사회와 페미니스트 운동의 의미 있는 참여를 통해 만들어져야 하며, 여성과 소녀들의 현실과 경험의 교차점을 다뤄야 한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CSW가 그 권한을 강화하고 더욱 책임 있게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여성인권과 발전정의(development justice)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불평등, 식민잔재, 역사적 불의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CSW는 정치적 수사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책무 이행을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냉소를 넘어 글로벌 논의의 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페미니스트 가치의 주류화를 이끌어야
CSW는 1947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유엔 내 여성인권과 성평등을 독자적으로 매년 논의하는 글로벌 회의체로써 지금까지 수많은 글로벌 여성인권규범 논의를 이끌어내는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수많은 유엔 회의 중 유엔총회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이자, 1995년에는 베이징행동강령이라는 가장 진보적이고 체계적인 여성인권규범을 탄생시켰던 논의의 장이다.
한편, 최근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심해지는 극우 정치세력들과 이와 동맹관계를 맺은 극우 정부들의 부상, 이들의 여성인권과 페미니스트운동에 대한 공격, 또한 군사주의의 부상과 무력갈등의 심화에 따른 외교·정치적 교착상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여성인권, 성평등과 같은 보편가치가 타협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치부되거나 후순위 의제로 밀리고 있고, 그에 따라 CSW에서는 30년 전에 도출된 베이징행동강령을 넘어서는, 더욱 진보적인 글로벌 여성인권규범이나 정책문서에 대해 각국 정부들이 합의를 도출해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더 배제적이고 까다로워진 출입국 규정으로 인해 많은 개발도상국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CSW가 열리는 유엔본부가 위치한 미국의 비자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 심해진 고물가 등으로 인하여 글로벌 남반구 시민사회의 CSW 참여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베이징행동강령의 실질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글로벌 성불평등의 구조적 원인을 이루는 요소들인 자본주의, 군사주의, 식민주의, 권위주의 등에 대한 교차적 분석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논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시민사회의 포괄적이고 유의미한 CSW참여가 제한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CSW 회의의 결과물인 합의결론 협상이 여성인권을 공격하는 정부들의 방해로 인하여 교착상태로 빠져 결국 진전되지 못하고 매우 약한 언어 수준으로만 도출되는 상황들이 CSW에서 만들어낸 수십 년의 글로벌 여성인권 규범 발전의 역사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CSW가 다시 강력한 여성인권 규범의 발전과 회원국의 책임있는 이행을 추동해낼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으로써의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CSW 재활성화(revitalization) 전략 논의에서 유의미한 결론이 도출되기를 바란다.
올해 CSW회의에서는 세계 각 지역의 전쟁과 분쟁의 심화, 미국의 여성인권 정책 퇴행과 관련 예산의 대규모 삭감, 세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백래시와 극우세력의 부상 등 여러 산적한 도전과제에 대한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좌절을 많이 목격했다. 또한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 평가에 관한 각국 정부의 합의문인 정치선언문(Political Declaration)과 관련해서도, 이번에는 CSW회의가 시작되기 전 이미 국가 정부 간 합의가 완료되어 국제시민사회가 CSW회의에서 정부간 협상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도 다른 해에 비해 매우 적었다. 몇몇 활동가들은 많은 돈과 시간, 역량을 투여하여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CSW회의에서 이루어지는 글로벌 여성인권 논의 과정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성이 높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단단하고 널리 퍼져나가는 세계여성운동의 연대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세계 각국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변화를 만들고 있는 활동가들은 이러한 여러 한계와 도전과제에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더욱더 큰 목소리로 베이징행동강령의 완전한 달성을 위해서는 글로벌 논의의 장이 글로벌 남반구 사회의 성불평등의 근본적 요인을 더욱 명확하게 분석해야 함을, 백래시 공격에 휘말리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보편적 성평등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글로벌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함을 적극적으로 외치고, 지역과 국가, 대륙을 교차하는 페미니스트 운동의 어려움을 나누고 앞으로의 연대전략을 모색하는 네트워크 확장에 힘썼다. 베이징행동강령의 도입이 이루어진 1995년 당시 글로벌 여성인권의 진전에 대한 열망과 포부, 희망에 비하면, 30년이 지난 현재는 당시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도전과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냉소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글로벌 논의의 장에 개입하여, 더디더라도 지속적으로 국제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페미니스트 가치의 주류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사진4-1, 4-2: 국경과 대륙을 넘어선 페미니스트활동가들과의 만남과 연대>
참고문헌
CSW69차 회의 웹사이트: https://www.unwomen.org/en/how-we-work/commission-on-the-status-of-women/csw69-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