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보셨어요?"
내가 보았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대나무가 왜 높이 올라가는 줄 아세요?"
그 영화에서 대나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이 대숲의 바람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만났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떠나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그 때 내는 신비스러운 소리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마 내게 질문을 한 그 사람도 같은 인상을 받았기에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 대나무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에 처음에는 넌센스 퀴즈인가 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서 높이 올라간대요. 속을 빼곡이 채우노라면 위로 올라갈 힘이 어디서 나겠어요."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이가 진작부터 미술에 취미가 있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에서 무언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대나무를 부러워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실, 살림 사는 여자들의 시간은 조각시간이다. 진득하니 앉아서 무언가를 쌓아올릴 수가 없다. 자질구레한 일들이 계속 중단시키게 마련이다. 당장 우리 어머니의 생활리듬만 보아도 그렇다. 모처럼 집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좀 읽을라치면 나부터도 '진득하니'가 쉽지 않다. 어머니가 이런 저런 일로 계속 움직이시는 통에 분위기가 안정되지 않았다. 그게 다 우리식구 사는 일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나도 가끔 거기 끌려들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다 날아가 버리고 만다.
한번은 우리 집 수도가 얼었다. 지하수를 모터펌프로 끌어올려 쓰고 있었는데 날이 너무 추워서 모터를 녹이기가 쉽지 않았다. 옆집 목욕탕에서 물을 두통씩 길어 오는 것에 맞춰 씻는 것과 밥해 먹는 것이 최소화되었다. 설거지는 모았다가 하루에 한번만 했다. 속옷과 양말은 각자 세숫물로 빨고 큰 빨래는 미루어 뒀다. 청소는 걸레질 없이 쓸기만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온 가족이 나서서 물을 많이 길어올 수 있는 때에 하기로 한 것이다. 수세식 변소가 이럴 때는 제일 문제였다. 스스로 알아서들 물도 적게 먹고 밥도 적게 먹었다. 그러나 수도를 얼게 하는 마당 어딘가에는 우리의 오줌을 받아주는 곳도 있었다. 낮에는 눈 녹이는 재미로, 밤에는 별을 보는 운치로 오줌을 눴다. 하얀 눈으로 덮어놓았다가 꽁꽁 얼면 치우기가 쉬워 똥도 별 문제는 안 되었다.
뚜껑을 자주 열면 물이 끓지 않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못한다더니 이런 저런 일거리로 일어났다 앉았다를 안 하다보니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다. 의지만 있으면 일상적인 일들을 하면서 책도 읽고 하고싶은 일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신적 여유는 신체적인 안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시간을 내게 되자 우리 어머니가 책을 읽기 시작하셨다. 내 눈에는 그것이 거의 기적처럼 보였다.
우리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을 무척 좋아하시면서도 정작 책 한 줄을 읽지 않으시는 분이다. 책을 사다드리고 읽으셨냐고 하면 저녁밥 먹고 나서 읽을 거라 하시고 밥을 먹고 나서는 밝은 날 아침에 읽겠다고 미루시고 정작 아침에는 설거지만 하고 걸레질만 하고 하다가 어느새 그 밝음을 놓쳐버리고 마는 세월을 반복하고 계셨다.
책을 읽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참 좋았다. '그래, 이 말이 꼭 맞는 얘기다', '내가 생각하던 것을 누가 고대로 써놨구나'하면서 나에게 보여주시기도 하고 줄도 그어놓으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온전히 자신에게 향해 있는 순간은 아주 멋졌다.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다가 차 한 잔을 마시며 눈을 마주칠 때 나는 너무 행복했다. 평소에도 어머니는 순한 눈매에 편안한 표정이지만 그 순간의 어머니에게서는 아이 같은 천진함과 깊이가 느껴졌다.
집안일은 나날이 정교화되고 세분화된다. 가전제품이 늘어났지만 가사노동시간은 실제로 더 늘어났다는 것이 조사결과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도 기름진 음식과 다양한 그릇 종류는 설거지를 더 늘렸다. 수건도 김밥처럼 돌돌 말아 색색으로 목욕탕을 장식해야 한다. 가전제품만 믿고 자주 빨고 자주 쓸고 자주 닦게 된다. 가전제품을 관리하고 고장나면 수리를 받는 것도 새로 늘어난 일이다.
집안일은 집짓기로 말하면 기초공사이다. 그것 자체가 공사의 완료가 아니다. 기초의 의미는 그 위에 무엇을 쌓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기초공사만 하다 세월을 보낸다. 그 기초공사를 완벽하게 하느라고 다른 데 쓸 힘과 여유가 남아있질 않는다. 살림을 완벽하게 다 해놓고 뭘 하겠다 하면 평생 못하게 된다. 살림은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24시간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뱃속의 똥을 다 빼고 난 다음에 음식을 먹겠다고 하면 죽을 것이다. 똥이 배속에 남은 채로 죽을 것이다. 똥과 음식먹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순환고리이다. 어느 정도 똥을 놔둔 채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안일도 마찬가지이다. 살아있는 가족들은 끊임없이 의식주라는 기초적인 일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교화되고 세분화되다 보면 끝이 없다. 이것을 완벽하게 다 처리하고 다른 것을 하려 든다면 백날 그 타령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내는 '인생의 편집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새로운 자극과 변화 속에서 자신을 일깨우고 발전시키는 존재이다. 어린아이들이 친구들 속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만큼 사람에게 자극이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치매예방책에도 보면 열 명 이상으로 구성된 모임을 두 개 이상 가지라는 권고가 있다. 인간의 뇌는 적어도 이십명 정도와 교류하는 일쯤은 해야 쇠퇴하지 않고 제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살림 사는 여자들의 활동공간은 주로 집이다. 익숙하다못해 눈감고도 훤히 알 수 있는 틀에 박힌 공간이다. 그 일과는 반복적이고 만나는 사람도 정해진 가족이 대부분이다. 가족과 하는 대화도 매일매일 거의 비슷한 이야기뿐이다. 어디서 신선한 자극과 발전의 계기를 얻을 것인가.
대나무처럼 속을 비울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것들만 하고 자꾸 단순화시켜야 한다. 완벽하게 빼곡이 채우자면 길이 자람을 못한다. 제자리걸음만 할뿐이다. 속을 채우느라 기운을 빼지도 않고 중력의 끄달림을 훨씬 덜 받아서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아줌마들, 올 봄에 우리 대나무를 닮아 봅시다요, 예?
"영화 '봄날은 간다' 보셨어요?"
내가 보았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대나무가 왜 높이 올라가는 줄 아세요?"
그 영화에서 대나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이 대숲의 바람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만났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영화의 줄거리를 떠나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과 그 때 내는 신비스러운 소리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마 내게 질문을 한 그 사람도 같은 인상을 받았기에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 대나무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에 처음에는 넌센스 퀴즈인가 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사뭇 진지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서 높이 올라간대요. 속을 빼곡이 채우노라면 위로 올라갈 힘이 어디서 나겠어요."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이가 진작부터 미술에 취미가 있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에서 무언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대나무를 부러워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사실, 살림 사는 여자들의 시간은 조각시간이다. 진득하니 앉아서 무언가를 쌓아올릴 수가 없다. 자질구레한 일들이 계속 중단시키게 마련이다. 당장 우리 어머니의 생활리듬만 보아도 그렇다. 모처럼 집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좀 읽을라치면 나부터도 '진득하니'가 쉽지 않다. 어머니가 이런 저런 일로 계속 움직이시는 통에 분위기가 안정되지 않았다. 그게 다 우리식구 사는 일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나도 가끔 거기 끌려들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다 날아가 버리고 만다.
한번은 우리 집 수도가 얼었다. 지하수를 모터펌프로 끌어올려 쓰고 있었는데 날이 너무 추워서 모터를 녹이기가 쉽지 않았다. 옆집 목욕탕에서 물을 두통씩 길어 오는 것에 맞춰 씻는 것과 밥해 먹는 것이 최소화되었다. 설거지는 모았다가 하루에 한번만 했다. 속옷과 양말은 각자 세숫물로 빨고 큰 빨래는 미루어 뒀다. 청소는 걸레질 없이 쓸기만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온 가족이 나서서 물을 많이 길어올 수 있는 때에 하기로 한 것이다. 수세식 변소가 이럴 때는 제일 문제였다. 스스로 알아서들 물도 적게 먹고 밥도 적게 먹었다. 그러나 수도를 얼게 하는 마당 어딘가에는 우리의 오줌을 받아주는 곳도 있었다. 낮에는 눈 녹이는 재미로, 밤에는 별을 보는 운치로 오줌을 눴다. 하얀 눈으로 덮어놓았다가 꽁꽁 얼면 치우기가 쉬워 똥도 별 문제는 안 되었다.
뚜껑을 자주 열면 물이 끓지 않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못한다더니 이런 저런 일거리로 일어났다 앉았다를 안 하다보니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다. 의지만 있으면 일상적인 일들을 하면서 책도 읽고 하고싶은 일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신적 여유는 신체적인 안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시간을 내게 되자 우리 어머니가 책을 읽기 시작하셨다. 내 눈에는 그것이 거의 기적처럼 보였다.
우리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을 무척 좋아하시면서도 정작 책 한 줄을 읽지 않으시는 분이다. 책을 사다드리고 읽으셨냐고 하면 저녁밥 먹고 나서 읽을 거라 하시고 밥을 먹고 나서는 밝은 날 아침에 읽겠다고 미루시고 정작 아침에는 설거지만 하고 걸레질만 하고 하다가 어느새 그 밝음을 놓쳐버리고 마는 세월을 반복하고 계셨다.
책을 읽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참 좋았다. '그래, 이 말이 꼭 맞는 얘기다', '내가 생각하던 것을 누가 고대로 써놨구나'하면서 나에게 보여주시기도 하고 줄도 그어놓으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온전히 자신에게 향해 있는 순간은 아주 멋졌다.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다가 차 한 잔을 마시며 눈을 마주칠 때 나는 너무 행복했다. 평소에도 어머니는 순한 눈매에 편안한 표정이지만 그 순간의 어머니에게서는 아이 같은 천진함과 깊이가 느껴졌다.
집안일은 나날이 정교화되고 세분화된다. 가전제품이 늘어났지만 가사노동시간은 실제로 더 늘어났다는 것이 조사결과이다. 먹고 사는 문제만 해도 기름진 음식과 다양한 그릇 종류는 설거지를 더 늘렸다. 수건도 김밥처럼 돌돌 말아 색색으로 목욕탕을 장식해야 한다. 가전제품만 믿고 자주 빨고 자주 쓸고 자주 닦게 된다. 가전제품을 관리하고 고장나면 수리를 받는 것도 새로 늘어난 일이다.
집안일은 집짓기로 말하면 기초공사이다. 그것 자체가 공사의 완료가 아니다. 기초의 의미는 그 위에 무엇을 쌓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기초공사만 하다 세월을 보낸다. 그 기초공사를 완벽하게 하느라고 다른 데 쓸 힘과 여유가 남아있질 않는다. 살림을 완벽하게 다 해놓고 뭘 하겠다 하면 평생 못하게 된다. 살림은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24시간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뱃속의 똥을 다 빼고 난 다음에 음식을 먹겠다고 하면 죽을 것이다. 똥이 배속에 남은 채로 죽을 것이다. 똥과 음식먹기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순환고리이다. 어느 정도 똥을 놔둔 채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안일도 마찬가지이다. 살아있는 가족들은 끊임없이 의식주라는 기초적인 일을 요구하기 때문에 정교화되고 세분화되다 보면 끝이 없다. 이것을 완벽하게 다 처리하고 다른 것을 하려 든다면 백날 그 타령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내는 '인생의 편집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새로운 자극과 변화 속에서 자신을 일깨우고 발전시키는 존재이다. 어린아이들이 친구들 속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만큼 사람에게 자극이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치매예방책에도 보면 열 명 이상으로 구성된 모임을 두 개 이상 가지라는 권고가 있다. 인간의 뇌는 적어도 이십명 정도와 교류하는 일쯤은 해야 쇠퇴하지 않고 제 기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살림 사는 여자들의 활동공간은 주로 집이다. 익숙하다못해 눈감고도 훤히 알 수 있는 틀에 박힌 공간이다. 그 일과는 반복적이고 만나는 사람도 정해진 가족이 대부분이다. 가족과 하는 대화도 매일매일 거의 비슷한 이야기뿐이다. 어디서 신선한 자극과 발전의 계기를 얻을 것인가.
대나무처럼 속을 비울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것들만 하고 자꾸 단순화시켜야 한다. 완벽하게 빼곡이 채우자면 길이 자람을 못한다. 제자리걸음만 할뿐이다. 속을 채우느라 기운을 빼지도 않고 중력의 끄달림을 훨씬 덜 받아서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아줌마들, 올 봄에 우리 대나무를 닮아 봅시다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