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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기 있었던 드라마 중에 <아들과 딸>이라는 게 있었다. 귀남이라는 아들과 쌍둥이로 태어난 후남이라는 딸이 어머니에게 성차별을 당하며 자라나 결국 자립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였다. 대학입시에 붙은 후남이를 때리며 ‘귀남이 몫을 앗아갔다’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당시 2,30대였던 여성들에게는 극단적인 과장법처럼 비쳤었다.

"아이구, 어쩌면 우리 어머니랑 똑같을까. 너희들은 모를 거다. 저 때는 딸자식 공부시키면 바보라고 했어. 나도 공부만 좀 더 했더라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을 건데... 그래서 내가 너를 죽어라고 대학에 보낸 거야. 내가 당한 설움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20대의 대학생 딸과 드라마를 보던 40대 후반의 어머니는 이런 말로 모녀간의 여성연대를 북돋우며 티비 앞에 앉아있곤 했다. 딸도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선 어머니를 여성으로 이해하며 감사와 연민의 정을 보태는 가운데 은근히 부부사이에 남녀평등이 없는 것을 성토하며 어머니편으로 돌아서 아버지를 소외시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런 여성연대의 따끈한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갔던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한참 티비에 몰입해 있는 어머니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얘, 얼른 오빠 밥 차려줘라"
어머니의 채근을 받고 할 수없이 일어서는 딸이 볼멘 소리를 할 수 밖에.
"에이! 엄마도 어쩔 수 없는 귀남이 엄마야. 이게 바로 아들딸차별이지 뭐야."

부엌으로 향하는 딸의 뒤통수로 어머니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따라나간다.
"어쭈! 제 오빠 밥 좀 차려주는 게 차별이냐? 네가 정말 차별의 뜨거운 맛을 제대로 몰라서 그러는데, 나 살아온 얘기 들으면 아들딸 차별 안하는 나한테 아마 큰절을 하고도 부족할 거다. 에미 잘 만난 줄 알아, 이것아."

그로부터도 몇 년이 더 지난 지금 30대의 어머니들은 성차별에 더 민감해졌다. 초등학교에서는 여자반장이 더 많아지고 있고 자신의 아들이 여자아이들에게 매맞거나 시달린다고 하소연하는 어머니들도 적지 않다. 딸을 키우는 어머니들이 딸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주눅들지 않는 것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딸들의 어머니들은 대부분이 자신은 절대 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딸들, 가정 내에서 심한 성차별을 겪지 않고 자란 세대가 평등하게 또는 우월감을 가지고 키운 그 딸들의 입에서도 차별의 사례가 터져 나온다.

"동생하고 노느라고 어질러 놓았는데 엄마가 치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동생은 뺀질거리고 안 치우는 거예요. 엄마한테 일렀더니 동생을 혼내는 게 아니라 나보고 치우라고 했어요. 내가 누나니까 그래야 한다구요. 너무 속상했어요."
"오빠 방은 내 방보다 더 지저분한데 엄마는 오빠 방은 잘 치워주면서 나보고는 혼자 치우라고 해요. 여자애 방이 이렇게 지저분하면 남들이 욕한다고 하면서요."
"밥 먹을 때 엄마는 나한테만 물심부름 같은 걸 시켜요. 내가 왜 나만 시키냐고 했더니 남동생을 시키면 물을 쏟을 수 있고 내가 잘 하기 때문에 믿어서 그런데요. 못하는 애를 자꾸 시켜서 잘하게 해야지 잘한다고 자꾸 나만 시키는 건 억울해요."


어머니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청결은 인간의 미덕이고 여자가 남자보다 청결을 잘 유지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우월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여자들에게는 의무가 되고 남자들에게는 면제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화기애애한 직장이 있었다. 신입여사원이 닦아준 자기 책상을 놓고 깨끗하지 않다고 타박을 해놓고는 그 여사원이 어쩔 줄 몰라 우는 것을 보고도 나 몰라라 하는 남자사원을 보고 고참 여사원이 후배 여사원들을 불러모았다. 앞으로 절대 책상을 닦거나 커피 심부름을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부드럽던 직장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드디어 부서장이 고참 여사원을 불러 물었다.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해 봐"
"여사원들이 남자 책상 닦고 차심부름 안 하게 해주세요."
"그러지 말고, 원하는 걸 말로 해. 그래야 들어줄 건 들어주고 할 거 아냐"
"그게 정말 원하는 거예요."
"정말 이럴 거야. 나는 우리가 다 가족같이 지낸다고 여겨왔어. 사무실 분위기가 이대로 계속되어야겠어?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정말 다른 건 없어요. 지금까지는 저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남자들 책상을 닦아줬는데요, 남자들은 그게 아닌 거 같아요. 이제부터 자기 책상은 각자가 닦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에요."


그런데 그 부서장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좋아, 끝까지 불만사항을 말하지 않겠다 이거지. 알았어."

사회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바로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여자들에게 청소와 잔심부름 같은 서비스를 요구하면서 그것을 흔히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말하는 것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중학교 2학년인 내 딸아이의 방문에는 하얀 종이가 붙어있다. 그 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절대로 치우지 마시오. 내 방 치우면 벌금 만원."

그 방문을 열면 입었던 옷들이 허물처럼 널려있고 책상 위에는 연필과 종이들이 난무하고 있다. 심한 때는 발 디딜 틈도 없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 치운다해도 학교에서 일찍 오는 토요일쯤에는 좀 치워야 하지 않겠냐. 그래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또 늘어놓을 공간이 생기잖아."

내 앞에서 선뜻 제 방문을 열지 못하는 딸애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늘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 해야 하고 남의 것도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중에 커서 사회에 나가 다른 할 일이 많을 때는 치우는 것을 잠시 미뤄둘 수도 있는 배짱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딸의 방문 앞을 눈감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