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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대를 했었다. 단막극도 아니요, 특집극도 아닌 주말 연속극에서 호주제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으려 한다는 작가 인터뷰를 모 신문을 통해 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내 작가는 아니지만, 시청자로서 경건한 마음과 비장함을 미리 준비해두리라 마음 먹었었다.

많이 실망했다. 물론, 지난 주 시작한 드라마인 탓에 초장부터 실망했노라며 초장부터 딴지를 거는 이 마음,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속내를 이야기 해야겠다.

호주제는 이혼녀들만의 문제인가?

이 드라마는 두 번의 이혼으로 성이 각각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이혼한 여자의 삶과 사랑을 통해 호주제를 거론할 모양이다. 세계 최강의 가부장 공화국에서 너무나도 당연시 되어왔던 괴물 – 호주제 –는 1998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결성과 이후 문제의식을 같이 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반드시 폐지 되어야 하는 악법으로 대중적 인식을 얻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실생활에서 호주제로 인한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호주제로 인한 당장의 피해와 불평등을 감수하는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의 예가 호주제 폐지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여 왔었고,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사는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지기도 하였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호주제 폐지를 부각시키는데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일면 타당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우려의 마음이 든다. 자칫하면 호주제는 이혼가정이나 재혼가정만의 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당사자들을 향한 ‘누가 이혼하래? 누가 재혼하래? 애들만 불쌍하지…’라는 조소가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제의 근본적 모순과 문제점은 가부장을 공고히 하고 양성평등의 위배된다는데 있다. 호주제가 있음으로 해서, 남녀불평등이 조성되고 강화된다. 많은 여태아들이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한다. 대를 잇기 위한 현대판 씨받이가 암암리에 자행된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는 명절 때문에 한맺힌 며느리들의 흐느낌이 울려퍼진다. 결혼한 여자는 곧 출가외인이 되어 당연한 권리와 의무에서 배제된다. 아들, 남편, 가부장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들이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호주제는 이혼가정이나 재혼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와 남,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이 드라마를 끝으로 이혼가정과 재혼가정을 중심으로 한 호주제 관련 드라마가 막을 내리기를…

한부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엽기 이혼녀’

작가 인터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이혼녀라면 대부분 부정적이고 우울하거나, 기껏해야 신데렐라처럼 멋진 남자와 재혼하지 않으면 연하의 남자가 따라다니는 정도로 드라마에 나타나곤 했잖아요. 이혼이라는 멍에 때문에 여성은 늘 의존적이기만 했죠. 하지만 저는 이혼녀라는 말도 싫어서 ‘싱글 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요. 당당하게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거죠. 그 용감하고 씩씩한 싱글 맘을 그려갈 겁니다.”

참으로 기대되는 대목이었다. 나 또한 이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영~아니올시다’다. 당당하고 용감하고 씩씩한 싱글맘을 잔뜩 기대했는데, 극중 주인공은 철부지다. 세상에 저런 철부지도 없겠군~할 정도였다. 더구나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영리한 10살 딸을 배치시킴으로써 그녀의 철없음은 더욱 빛을 발한다. 이혼한 것이 무슨 금뺏지라도 단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꼴이 시험에서 꼴등하고도 자랑스럽게 말하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 정도의 정신연령자로 보인다. 물론, 요즘은 하도 많이 이혼을 하는 세상이라 이혼이 흠도 아니라고 하는 세상이지만 사실 이혼한 사람들, 그렇게 자랑스럽게 철딱서니 없이 이혼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떠벌리지 못한다고 하여 이혼을 실패로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과 왜곡된 시선 앞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사에 조심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당당한 이혼녀를 그려보고 싶었을 지는 몰라도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렇게 철딱서니 없으니 이혼을 했지’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당당하고 자신있다는 것과 신중치 못함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한부모 가정은 비정상 가정이다?

또한 그녀 주변에 두 남자를 포진하여 세 번째 사랑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보자니, ‘그래, 여자는 별 수 없이 남자가 있어야 돼’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음에 영 개운치 않은 마음이 든다.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안하고 살 수도 있다.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하고 살 수도 있다. 재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사회는 다양하고 그 안의 삶들 또한 그러하다. 그런 이유로 그녀가 사랑을 하든 결혼을 하든 그녀 마음이다. 하지만, 그녀는 두 번이나 이혼을 했다. 첫번째 결혼은 ‘사랑’만 믿었고, 두 번째 결혼은 ‘현실’을 고려했단다. 그리고 세 번째가 될 이번의 결혼은 ‘사랑과 현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녀가 세 번째 결혼을 하는 것은 그녀 마음이고 그녀를 창조한 작가 마음이다. 그리고 그녀가 누구와 결혼을 하게 될지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재미나게 지켜볼 것이다. 헌데, 이 부분은 자칫하면 새아빠라도 아빠가 있는 양부모 가정은 정상 가정이고 한부모 가정은 비정상 가정이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답습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녀 주변에 있는 두 남자의 면면을 보건데, 그녀의 세 번째 결혼 또한 이혼으로 매듭지어질 것이 뻔해 보인다. 그리고 작가도 원 제목을 ‘그녀의 세 번째 이혼’으로 하려고 했었다는데…이혼은 장난이 아니다. 결혼생활과 이혼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을 성찰하려 한다면, 제발 두 번으로 끝내주길 바란다. 두 번으로도 족하다. 세 번째까지 간다면 시청자들은 삶의 함정과 사랑의 늪에 너무도 쉽게 빠지는 그녀를 보면서 ‘이혼해도 싼 여자’라고 여길 것이다. 그것은 자칫하면 이혼한 여자들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될 수 있음을 작가는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두 번의 이혼과 그 뒤 만나게 되는 남자들 및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깨닫고 강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만들어야 한다. 그녀를 타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 말고도 몇 가지의 문제점들이 눈에 뜨였지만, 호주제와 한부모에 대한 집중적 딴지 걸기로 ‘맹가네 전성시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