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침묵했지만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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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8월 31일, 국회 역사상 최초로 성희롱 국회의원 제명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리고 30여분 만에 부결됐다. 이미 국회 내 윤리기구에서 제명안을 의결했고, 법원에서도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이라는 사실상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한 강용석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최종 부결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또한 당일 “너희 중에 죄없는자, 돌은 던지라”는 성경문을 인용하여 강 의원을 옹호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제 약간의 시간이 흘러 들끓었던 여론은 잠잠해져 가고 있다. 나는 강용석 의원 징계안이 윤리특위에 회부된 시점부터 본회의에서 최종적으로 부결되기까지 지난 1년 동안의과정을 돌아보며 비윤리적 행위를 한 동료의원을 끝까지 지켜준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본회의에 제명안이 상정되기까지, 그 쉽지 않았던 과정


 이번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59명 중 찬성 111명, 반대 134명으로 과반수 이상의 반대표로 부결됐다는 사실은 18대 국회의 인권의식이 매우 부끄러운 수준임을 보여준 사건이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강용석 의원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위에 회부된 시점부터 본회의에 상정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안건의 처리가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작년 8월부터
다. 강용석 의원은 여대생에게 “아나운서 되려면 다줘야하는데 그래도 하겠느냐”, “여성 로비스트 최후의 무기는 몸” 등의 심각한 성희롱 및 아나운서 직종에 대한 성적비하발언을 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이하 윤리특위)에 징계안이 회부됐다. 이때부터 국회는 절차상의 문제, 정족수 부족 등의 다양한 이유를 들며 징계안 처리를 지연시켰다.


 작년 8월, 국회 내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 운영에 관한 규칙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그 다음에는 자문위 위원 구성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처리를 미뤄 결국 자문위의 결과는 8개월만인 올해 4월에야 나왔다. 다행히 민간의 관련 학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는 만장일치로 ‘제명’을 발표했고, 그로부터 또 징계심사소위원회와 윤리특위에서 제명을 의결하기까지 위원회 위원들은 매번 안건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단체들과 아나운서연합회, 청년유권자연맹은 국회가 조속히 제명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윤리특위 각 위원들에게 보내는 수차례의 의견서 제출과 면담요청, 기자회견, 온·오프라인 서명운동, 그리고 전체 297명의 국회의원에게 본회의 출석여부와 제명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질의서 발송까지, 여성·시민단체들의 끈질긴 제명 촉구활동이 있었기에 본회의 상정이 가능했다. 지난 1년간의 과정은 여론의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들과의 지난한 ‘밀고 당기기’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침묵의 카르텔, 누가 침묵했는가?


 국회의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이다. 헌법 제46조는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제명안을 부결시킨 18대 국회의원들은 과연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가? 성희롱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국가 이익’을 우선했기 때문인가?


 18대 국회가 보여준 ‘동료의원 감싸기’는 분명한 침묵의 카르텔(cartel)이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각종 특혜는 현역의원 1인당 1억 1700만원에 가까운 연봉 외에도 대략 200여개에 이른다. 게다가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에 따라 임기가 끝난 전직의원들은 월 120만원의 ‘종신 연금’을 받는다. 18대 국회는 이러한 국회의원의 엄청난 특권을 강용석 의원이 유지하도록 '담합(cartel)'한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문구를 인용하며 제명에 대한 반대논리를 펼 때, 그 자리에 있던 의원 중 어느 누구도 반박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한나라당 의석에서 “잘했어, 살신성인(殺身成仁)했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국회가 여전히 견고한 권력의 카르텔(cartel)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오랜 성희롱·성추행 전력을 가진 ‘구제불능’ 정당이라고 치고, 100명의 시민방청단을 밖으로 내보내고 안건을 비공개로 처리한 것에 대해서
는 모든 국회의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의 합의하에 징계에 관한 건을 공개로 진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야당의 미온적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한 이 날 본회의장에서 여성의원들 조차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강용석 의원이 "여성의원의 외모는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 낫다. 000 의원은 얼굴은 예쁘지만, 키가 작아 볼품이 없다"는 등
의 여성의원을 비하하는 성차별적 발언까지 했는데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조차 애써 외면하면서 남성의원들과 함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실망을 넘어 그들이 과연 무엇하는 사람들인지, 여성시민을 대표하는 의원을 할 자격을 논할 만한 사람들인지, 최소한의 신뢰마저 무너지게 만든다.


그들은 침묵했지만,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대한민국의 ‘정의(Justice)’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국가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설문조사 참여자 중 단 5%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나는 이번 18대 국회의 성희롱 국회의원 제명안 부결을 보면서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됐다. 그것은 바로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힘, 즉 ‘부정(不正)에 대해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용기있는 발화(發話)가 많아지는 것이 점차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가는 것이라 믿는다. 2011년, 그들은 침묵했지만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김현아 (한국여성단체연합 부장)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2011.10)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