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시대적 과제를 저버린 국회, 정당의 책무를 내팽개친 국민의힘은 주권자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39년 만의 개헌이 결국 무산되었다. 이는 그동안 모든 정당들이 시민들에게 약속해온 개헌을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한 국회의 직무유기와 ‘졸속 개헌’이라며 당론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개헌을 방해한 국민의힘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책임을 방기하는 정당은 무용하다. 국민의힘과 당론 반대라는 단어 뒤에 숨어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내던진 국민의힘 의원들은 주권자들에게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이번 개헌안은 비상계엄 통제 강화,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지방 분권 강화 등 이견이 없는 최소한의 내용만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개헌안에 포함되지도 않은 대통령 임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이번 개헌은 지방선거를 위한 졸속 개헌이라며 당론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5/7(목)에는 표결을 거부하며 본회의장에 입장조차 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투표를 불성립시켰고, 다음 날에는 개헌안 의결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예고하며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내팽개쳐 사실상 개헌을 위한 절차가 무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론 반대라는 명분하에 국회의원의 자율투표마저 보장하지 않으며 표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한 국민의힘의 이러한 행태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자 공당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한 행위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9년간 한국사회의 헌법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사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경제, 사회문화 전반에서 큰 변화를 겪었으나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은 그 변화를 외면한 채 한 자리에 멈춰 있다. 변화한 사회를 담지 못하는 헌법은 시민의 삶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한다. 또한 헌법이 이렇게 오래 정체되어 있다면 국가 운영의 원리로서도 실효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헌안은 그 39년의 공백을 처음으로 메우려는 시도였다.
시민들은 개헌 논의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기억한다. 2024년 겨울, 시민들은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파괴 현장을 통해 헌법의 취약함을 직접 확인했고, 더 강하고 더 정의로운 헌법을 열망했다. 윤석열 퇴진 광장이 열리자 그곳에서 시민들은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며, 차별 없이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가는 성평등 사회를 향한 열망을 구호가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천을 헌법으로 담아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단단한 민주주의와 성평등을 비롯해 디지털 환경으로의 전환, 기후위기, 돌봄과 노동 환경의 전환, 다양해진 가족 형태 등 변화된 사회에 맞는 헌법을 만들기 위해 개헌 운동을 이어갈 것이다.
2026년 5월 9일
한국여성단체연합